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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6. 2023

<걸리 드링크>여자가 술 마시던 인류 역사, 이럴수가

인류 역사에서 여자들은 항상 술과 함께 했다. 술을 빚고 마시고 팔았다. 우리는 ‘술꾼 도시 여자들’의 술맛 나는 인생에 웃고, ‘섹스앤더시티’의 캐리가 마시는 칵테일 코스모폴리탄, 브리짓 존스의 와인 샤도네이를 새삼 발견한다. 그러나 여성은 종종 술집에서 쫓겨났고, 싸늘한 시선에 시달렸다. ‘인류사 뒤편에 존재했던 위대한 여성 술꾼들의 연대기’라는 <걸리 드링크>. 새삼 자유로운 술꾼으로 사는 21세기 서울 여자라는 것이 벅차고, 반년 이상 금주를 이어가는 이로서 술이 절절이 고파지는 이야기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그녀가 종종 퍼마시는 술은 화이트와인 샤도네이다.


5000년 전 성평등 사회 메소포타미아의 맥주

책을 딱 두 챕터 읽고 반해서 주절주절 기록도 남겼었는데, 다시 조금 가져와본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여성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사업과 장사에도 종사했다.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되기도 했다.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도 없었다. 귀족이나 부유층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다녔다. 5000년 전 성평등 사회라니.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남신이 아니라 여신에게 술잔을 바쳤다. 수메르의 여신 난카시는 맥주를 관장했다. 수메르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여사제의 급여는 맥주 2리터. 기독교인들이 포도주를 마시기 수천 년 전에, 수메르 여자들은 맥주를 만들고 마시고 난카시를 숭배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술을 빚고 마셨다.

이 자유로운 성평등 문명에서 어쩌다 가부장제를 확립한 것은 한참 뒤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이다. 보호라는 명목 하에 여성의 수많은 권리를 빼앗고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로 만들었다. 기원전 1754년 함무라비 법전은 여성의 경제적, 성적 자유에 대한 치명타였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건전한 여성은 술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의 여성 술꾼 배척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 취급도 안했던 그리스 여자들도 술마실 권리가 제한됐다. 그리스 남자들은 현재 이탈리아 중부의 이웃 에트루리아 여자들이 자유롭게 술마시는 걸 흉봤다. 그러나 한 그리스 여행자는 에트루리아 여성들을 두고 "엄청난 주당이며 놀랍도록 아름답다"고 기록을 남겼다고.

한때 로마의 이상적 여성상과 정반대라 미움 받은 여자가 클레오파트라다. 그는 시리아나 이오니아산 달콤한 와인을 즐겼고, 꿀이나 석류즙을 섞어 마시곤 했다.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밝히는 강한 여성? 권력을 가진데다 술까지 좋아한다고? 로마인들 눈에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였다. 클레오파트라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연인이 된 것은 카이사르에게 암살의 한가지 명분이 됐다. 이후 안토니우스 역시 클레오파트라의 연인, 정치적 파트너가 됐는데 둘은 '흉내 낼 수 없는 간'이란 음주 모임을 만들어 와인, 도박, 사냥을 즐겼다. (그때도 간의 기능을 알았다고?) 클레오파트라는 과음을 하진 않았고, 안토니우스는 고주망태 쪽. 로마는 이 소문을 듣고 안토니우스가 아닌 클레오파트라를 비난했다. 여성의 음주는 용서할 수 없던 분위기였다나. 옥타비아누스가 주도한 가짜뉴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사악한 유혹자이자 음탕한 술꾼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여왕이었고, 뛰어난 철학자이자 실리적 군사 지도자였다.


맥주를 혁신한 수녀님과 마녀로 몰린 에일와이프


책은 메소포타미아부터 2000년대까지 역사를 따라 가면서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당대의 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걸출한 여성들은 언제나 이야기를 남긴다. 에일이라 불리는 맥주를 처음 만든 것도, 홉을 대중화한 것도 여성이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수녀는 12세기 예언가이자 작곡가, 잘나가던 수녀원장으로서 당시 권위와 자율성을 누린 흔치 않은 여자였다. 그의 수도원 수녀들의 하루 8시간 노동은 대부분 맥주 양조였다. 커피나 차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에 물 마시는 것은 위험했고, 남녀노소 모두 알콜을 마셨다. 귀족들은 와인을, 대중들은 영양가도 풍부한 맥주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셨다. 빻은 귀리나 보리, 밀로 맥아를 만들어 뜨거운 물을 붓고 하룻밤을 숙성시킨 뒤 자신만의 레시피에 따라 효모와 허브를 첨가했다. 24시간 발효하고 마셨는데 유통기한이 5일 정도로 짧았다. 힐데가르트는 홉을 첨가하면 그 쓴맛이 음료의 변질을 방지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주 양조의 혁신이었다.

술집이나 펍이 없던 시절, 여자들은 집에서 마시기 위해 에일을 양조했고, 남으면 팔았다. 이른바 ‘에일와이프’들이 판매할 에일이 있다는 표시로 집 앞에 빗자루를 내걸었던 에일하우스다. 여자들은 장터에서도 뾰족한 모자로 시선을 끌면서 에일을 팔았다. 하지만 홉 덕분에 유통기간이 늘어난 에일이 사업이 되면서 여성들을 밀어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여자들이 바지를 입거나, 흡연이나 과음을 하는 것, 사업을 하는 것도 모두 범죄였다. 남자들이 만취하면 사람 좋다고 했으나 여성이 취한 건 혐오 대상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양조업을 미혼 여성에게 금지하고 기혼 여성에게만 허용했다. 여성이 독립적 생계를 유지하기 보다 가부장제에 도움이 되는 것만 허락한다는 얘기다. 외설과 방탕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술집 근무도 금지됐다. 당시 성장산업이던 교회는 주일 예배 참석을 방해하는 경쟁자로 에일하우스를 지목했다. 에일을 만들어 팔던 에일와이프들은 알량한 경제적 권한을 가진 불복종 시민이었고, 어느새 빗자루와 모자로 상징되는 마녀가 됐다. 해박한 약초 지식으로 부엌에서 술에다 민간 요법 약물까지 만드는게 문제가 됐다. 술에 취해 음란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리기도 했다.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세일럼 마녀사냥의 첫 희생자는 세라 오스본.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던 술집의 주인이었다. 수익을 둘러싸고 시댁 식구들과 갈등 중이었다.


대륙 마다 다른 술과 여자들


아시아에서 쌀로 빚은 술은 기원전 4800년 전 양쯔강 계곡에서 등장했다. 서기 300년 일본에서는 10대 소녀들이 주먹밥을 턱이 아프도록 씹어 나무통에 뱉은 걸로 ‘미인주’를 빚었다. 중국에서 당나라(618~907)는 여성 애주가의 황금기. 당시 여자들은 정부 관리, 장군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음주가 매력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양귀비는 포도주를 좋아했다. 송나라는 여성의 음주를 배척됐다. 와중에 최초의 여류 ‘주류’ 시인 이청조가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살아생전 시인으로 존경받았던 그는 남편을 앗아간 전쟁에 대한 분노로 조정을 비판하고, 욕망과 슬픔, 외로움에 대해 글을 썼다. 모두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던 주제였다.

동쪽 울타리에서 황혼이 지도록 술을 마시니 국화의 그윽한 향기 소매에 가득하구나 님 생각에 타는 심정 사라진다 하지 마오 주렴은 서풍에 날리고 사람이 국화보다 더 시들어가네. (취화음)

아메리카 원주민은 선인장으로 술을 담구고 툴라파라는 독한 옥수수 맥주를 빚었다. 잉카 원주민들은 스페인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밀주를 생산했다. 식민지 주민들은 사과를 으깨어 발효시켰고, 복숭아와 감도 술로 빚었다. 옥수수, 당밀,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를 활용한 맥주도 만들었다. 몽골에서는 여자들이 말젖을 거품이 일때까지 휘저어서 버터를 만들고 나머지는 발효시켜 마유주를 만들었다. 아프리카 여성은 단맛이 나는 수수 맥주 움콤보티를 빚었고, 마룰라 열매로 남성용 독주 오마옹고를 만들면서 물을 더해 도수가 낮은 오신와이라는 여성용 술도 함께 만들었다. 킬리만자로 기슭에서는 바나나 맥주 음베게를 빚었고,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름야자로 우운무무라는 술을 빚었다. 양조는 가부장 질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여성들이 주도하는 영역이었다.

한국도 “김치나 간장과 마찬가지로 가내 양조는 여성 몫”이었다. 장계향의 ‘음식디미방’(1670)은 여성이 쓴 동아시아 최초의 요리책인데 각종 술 담는 법을 상세히 담았다고. 쌀을 씻고 불리고 찌는 술 막걸리 얘기가 나온다. 톡쏘는 탄산에 시큼한 맛, 크리미한 부드러움이 멕시코의 오르차타를 연상시킨다는데 과연. 한국은 일제 시대 가정 내 양조와 증류를 탄압하면서 아예 가정 술 제조를 법으로 금지했다. 이게 완전히 풀린 건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보드카와 진의 유행에 기여한 여왕들


러시아는 국영 술집으로 술의 유통과 생산을 독점했고, 18세기 무렵엔 국민의 엄청난 음주로 막대한 수익을 남기고 있었다. 열다섯살에 육촌인 표트르 3세와 결혼한 예카테리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파탄이었다. 첫 잠자리를 9년만에 가졌던 부부는 각자 정부를 뒀다. 정치력이 뛰어났던 예카테리나는 결국 남편을 몰아냈는데, 폐위에 성공하면 병사들에게 보드카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즉위 직후 모든 술집을 개방했을 뿐 아니라 술 독점을 풀었다. 보드카가 저렴해졌다. 네덜란드가 해양대국으로 잘 나갈때 노간주 나무 풍미를 더한 예네버르(jenever)가 국민 증류주였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때 이 술을 들여오면서 ‘진’이 됐다. 정부는 새로운 세수가 필요했고, 지주들은 잉여 곡물을 처분해야 했다. 18세기 초 앤 여왕은 증류업체 조합의 독점권을 취소했다. 수백 개의 작은 증류소가 생겼고,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로 몰려온 여자들은 gin shop을 드나들었다. 다만 알콜 함량이 57%나 되던 무렵, 알콜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아이도 낳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진이나 마신다는 비난이 들끓기 시작했다.

18세기 술 마시는 여자들에 대한 시선이 드러나는 삽화들. Samples of Sweethearts and Wives - Richard Newton


술 비즈니스에 나선 여자들


19세기 혁신은 샴페인이었다. 양조장 집안의 딸 바르브 니콜 클리코라는 여성은 27세에 사별한 뒤 시아버지 투자를 받아 본격 사업에 나섰다. 뵈브 클리코 샴페인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외국 군인들에게 풀렸고, 몇년 뒤 러시아에만 한해 20만 병을 수출하는 샴페인이 됐다. 평균 수명이 50세이던 그 시절 클리코 여사는 89세까지 샴페인 파티를 즐겼다. 단맛 없는 브뤼 와인을 발명한 것은 또다른 과부 사업가 루이즈 포므리였다.

아일랜드의 과부였던 앨런 제인 코리건은 동네 과부들에게 보리를 구매하고 부시밀즈 위스키 브랜드를 만들면서 여자라는 것을 숨기고 E.J 라는 이름을 썼다. 스코틀랜드의 헬렌 커밍이 만들어 팔던 위스키 증류소는 며느리가 존 워커 앤드 선스에 매각했다. 조니 워커의 시작이다. 버번 위스키 판도를 바꾼 것은 마지 새뮤얼스다. 당시 똑같은 병 일색이던 20세기 중반 코르크가 아닌 빨간 왁스를 녹여 밀봉하는 방식으로 ‘메이커스 마크’를 히트시켰다. ’라벨’의 힘을 알고, 다른 양조장 사케를 술통 째 사들여 자사 상표를 붙여 판매한 19세기 일본 여성 다츠우마 기요도 과부였다. 남자 직원을 앞세워 양조장을 배후 경영했다. 연간 2만2000석(1석은 180리터)을 팔면서 승승장구했는데, 사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을 가족의 수치로 여기는 일본 전통에 따라 묻혀있었다고 한다. 이거 정말일까?


서로 다른 대륙에서, 다른 시대에 과부들이 사업에 성공하는 얘기에 나만 치이는가? 사업하는 여자들을 용납하지 않던 시기에 남편 뒤에 숨거나, 과부가 되어서야 해방일기를 만들어간 여자들 같으니라고.

20세기 미국에서는 여성 바텐더들이 등장했다. 에이다 콜먼이라는 인플루언서 바텐더의 주요 고객은 찰리 채플린, 마를레네 디트리히. 세계대전으로 바텐더들이 전장에 나간 사이 여성 바텐더들이 늘어났으나 전후 귀국한 남자 바텐더들은 여성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자는 술집 싸움을 감당 못하고 복잡한 칵테일 제조법을 제대로 외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 미시간주는 여성 바텐딩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술집 가는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술집들은 성별, 계급, 인종을 넘어선 어울림을 허락하는 몹쓸 장소다.” 
1920년 미국의 금주법 통과를 지지한 단체 중 하나는 극단적 인종차별 단체 KKK인데, 그 이유에 실소가 난다. 어울리면 안된다니. 금주법은 음주를 막지 못했다. 안전한 음주만 막았다. 비싼 불법 음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이 무렵 불법 술집 스피크이지(speakeasy)바는 세계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과거 스코틀랜드의 작은 무허가 술집 쉬빈(shebean)은 불법 위스키 ‘문샤인’을 팔았고, 한때 프랑스 여자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던 술집은 도심을 벗어난 도시 외곽의 갱게트였다. 멕시코에서는 시큼한 발효주 풀케를 스페인제국이 단속하자 불법 술집인 풀케리아가 전역에 생겼다. 금주법 시대 ‘바하마의 여왕’ 클레오는 플로리다와 가까운 바하마에 불법 주류 밀매를 이끌며 세계 최대 위스키 사업가가 됐다. 많은 여성들은 풍성한 치마 밑이나 유모차 아래 술병을 대량 숨기면서 밀수의 달인이 됐다.

술 마시는 여자를 탕아 취급하던 20세기 멕시코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킨 이는 가수 루차 례에스다. 남자들이 하던 마리아치 밴드의 란체 장르를 노래했다. 단발머리에 바지 차림도 파격이었고, 마초의 상징 테킬라를 마셨다. 대표곡 ‘라 테킬레라’는 “내 영혼은 항상, 테킬라에 취해 있어, 나는 착한 멕시코 여자답게, 이 고통을 고요히 겪어내겠지, 취하고 싶은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목부터 가사까지 끝내줬다.

미국 술집의 여성 금지는 1960년대 페미니즘 물결 속에 흔들렸다. 언론학도 조앤 케네디가 술집 출입 거부에 반발, 연좌 시위를 조직했다. 여성이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자유로운 술집 출입도 중요했다. 뉴욕시가 술집을 비롯해 모든 공공장소의 성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1970년이다. 술집들은 여자 출입을 허용하면 남자 손님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GIF 뉴욕지점이 ‘레이디스 나이트’ 마케팅으로 여성에겐 무료나 저렴하게 술을 팔기 시작했다.


취해서 당하면 여자 책임?


여자들이 기껏 술집 출입을 뚫었더니 데이트 강간 약물이란게 등장했다. 루피(roofie)라고도 불렸던 rohypnol 약물은 ‘루피당하다’라는 동사까지 만들어냈다. 제조사 호프만 라 로슈는 ‘ 내 잔 지키기(Watch Your Drink)’ 캠페인으로 맞섰다. 술이 가장 나쁜 데이트 강간 약물이라고 주장하며 누군가 술에 약물을 타지 못하게 지킬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겼다. 폭력의 책임을 남자에게 묻지 않고, 폭력을 피할 책임을 여성에게 물었다. ‘그러게 왜 술을 계속 보고 있지 않았어’, ‘그러게 왜 나가서 술을 마셨어’. 여성이 취해도 강간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던 미국 얘기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피고인>(1988)이다.


알콜분해효소가 여성에게 적은 건 사실이지만, 술 못마시는 남자도 있고, 주당 여자도 있다. 여자라고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술을 마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주망태 주사에 대한 손가락질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즐겁게 술 마실 자유와 권리를 위해 여자들이 이 고생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5000년 전 성평등 사회 메소포타미아에서 퇴행한 이후, 너무 오랫동안 참고 살았다.


이 책을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8월호에서 소개하는데, 진행자 김혜리 기자에 따르면 저자인 맬러리 오마라는 이 책을 쓰기 위해 500권 이상 책을 보고 정리했다고. 어쩐지 방대하고 깊고 현란하더라. 정보를 정리하느라 고전했고, 이 기록도 정리용이지 차마 리뷰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500쪽 가득 깨알 정보가 재미있고, 유쾌한 시선으로 술꾼 연대기를 정리해준 덕분에 진정 술 땡기는 책이다. 저자는 버번 위스키 애호가였다는데, 나는 향 좋은 샤도네이 와인이 가장 고프다.


팟캐스트에서 <걸리 드링크>와 함께 소개한 책은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이다. MBC 조승원 기자가 유튜브 ‘주락이월드’도 만들면서 스코틀랜드 증류소 26곳을 탐험했다. 이미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라는 책을 써온 그는 스카치 위스키의 제조 공정과 역사, 맛을 알아가는 과정부터 그 가치와 철학까지 술술 엮었다. 챕터 제목이 각각 글렌피딕, 발베니, 맥켈란… 26개 위스키를 마실 때 한 챕터 씩 골라보면 좋을 책이다. 아, 이래저래 진심 술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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