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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7. 2023

<전주 1박2일>, 이자람 공연에다 언니의 추억여행까지

전주에는 연못 한가운데 도서관이 있다. 전북대 옆 덕진공원 자체가 좋다는데 그중에서도 덕진연못 중앙에 #연화정도서관. 연꽃으로 꽉찬 전경이 창밖 너머 펼쳐진다.

격자무늬 한옥 창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본채 건너편 큰 방에서는 방석 위에 다리를 쭉 펴든지, 널부러질 수 있다. 엄마와 함께 와서 몸을 이리저리 굴리는 꼬마 아가씨, 예쁜 기억 쌓기를. 전통 문양 커튼에도, 천정의 나무 배열에도, 가야금으로 연주한 익숙한 선율들에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비오는 날의 풍경도 좋지 아니한가.

책이 많지는 않다. 박완서쌤 전집을 비롯, 박경리, 조정래쌤 전집이 벽 서가에. 전북 지역 여성작가 양귀자 은희경 신경숙님이 또 한 코너. 와중에 김탁환쌤을 비롯해 한강, 김애란, 김영하님 코너.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표지를 그려주시는 이수지 작가님 그림책이 문득 반갑다. 서점언니를 위해 전주 명소 중 이곳을 고른 L님의 세심함이 그중 최고다.


이번 전주여행은 소리꾼 이자람님의 '노인과 바다' 때문이었다. 7월에 '이방인의 노래' 공연 갔다가 홀딱 반했는데, 언니들이 '노인과 바다'를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 했고..19년부터 해온 서울 공연이 드문 와중에 전주 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에 그 공연이 있었다. 여기에 전주 출신 L언니와 의기투합했으니 이것은 로또 여행.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에서는 빗속에 천막 치고 중국에서 오신 분들이 장국영 스타일?로 소리를 선보이고 있었고... '노인과 바다'는 말해 뭐해. 사진을 못 찍어서 퍼왔다. 이자람이 소리를 하면, 내가 마치 쿠바의 노인 산티아고가 되어 700kg 나가는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기분이고, 항구로 돌아오는 길, 상어 떼를 만나 청새치 살점이 뜯어먹히는 가운데 고군분투한 마냥 숨가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무대를 이끄는 그녀는 관객을 쥐락펴락 들었다놨다 강약중강약 호흡 고르는 게 신의 경지다. 널리 알려진 퓰리쳐상, 노벨상 수상작이 그녀가 작곡작사한 소리로 완전 다른 작품이 된다. 황홀했다...  


전주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식당은 #마살라. 인도 분들이 찾는다는 소문 그대로 손님 절반은 그쪽 분들. 뜨끈하게 갓 구워낸 난이 끝내준다. 시금치 커리에 옥수수 들어간 것 빼고 대만족. 공연 후 저녁은 전주 언니 K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해 동네 맛집으로 인도해주셨다. 양념 없이 담백하게 삶고 구워낸 누드족발이 메인이었던 #미각만족. L언니가 족발 못드시는 바람에, 나는 기꺼이 2인분 이상 달렸다ㅠ 호박무침, 배추무침, 오이무침, 가지나물, 반찬 마다 내공이 느껴졌고, 시래기국과 왕푸짐 계란찜도 기막힌 집이다.

한옥마을에서 당초 가려던 집은 못갔지만 대신 #누이단팥빵. 기본 팥빙수라고 했는데 과일을 아낌없이 깔아준 울트라 팥빙수나 계란 띄워준 쌍화차나 한 끝 있는 집. 7080 노래가 호객이 도움이 될지 여부가 우리 수다의 한 주제였다. 고양이 그림판 잊지 못할 것 같고요.

K님과 나의 뒷모습... 맘에 들어 올려둔다. 그리고 이 여행은 순식간에 장르가 바뀌었다. 공연 보러 왔는데, L언니의 추억을 제대로 저격했다. 내가 무심코 에어비앤비로 고른 숙소가 언니 어릴적 집 바로 옆이었다. 숙소 창문을 통해 언니가 살던 방의 창문이 보였다. 저마다 드라마 같은 사연이 있겠지만, 언니네 이야기가 파란만장한 것은, 언니의 기억이 유달리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더이상 지도를 펼칠 일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어젯밤 걸어온 길을 다시.. 담장 너머 경기전의 기와지붕이 날렵했다.


언니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종종 달려와 300원 내고 먹었다는 #베테랑칼국수. 추억여행 아침으로 딱이지. 오전 일정은 한옥마을 무료 라커에 짐을 넣고 그 옆 공예품전시관부터 시작했다. 보는 눈 없어도 예쁘고 시원하고.  


하늘과 구름이 열일하는 날. 비 예보와 달리 맑았다. 공예품전시관 마당엔 플래카드 여러장을 겹쳐 산을 그려낸 작품이 있었다.


언니가 너도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척척 찾아간 곳은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 태리네 집! 뷰가 끝내준다더니 한옥마을 뷰에 일단 감탄.

뒤로 올라가면 작은 숲도 나온다. 막판 대나무숲까지 이 코스는 정말 모든 즐거움을 다 갖췄다.


스물다섯스물하나 그들이 뛰어가던 그 터널이다. 아아. 이것은 내게도 추억. 그들은 대체 왜 헤어진거야. 9.11 테러 이후 일에 미쳐서 관계를 돌보지 않은 그가 나빴다. 근데 흔한 사연인가.


터널에서 길을 건너면 이번엔 천변 산책로. 저 멀리 언니네 집이란다. 비가 적게 오면 물이 줄어서 신발 벗고 첨벙첨벙 걸어간 길이었다고.


그냥 지나가다 들린 동의보감 기념관. 잠깐 봤지만 내 취향이다. 1613년 허준 선생이 25권 25책으로 정리한 의학서 동의보감은 초판 발간 후 중국판이 30여종, 일본판 2종, 대만판도 5종 이상 간행됐고, 베트남과 몽골에서도 흔적이 발견된 당대의 베스트셀러다. "백성을 위해 의술이나 약으로 요절하는 것을 구제하는 것은 실로 제왕이 어진 정치를 베푸는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서문부터 쫌 감동...


동의보감은 어쩌다 구경했지만 원래 목적지는 향교다. 원래 조선시대의 학교였겠지만, 언니는 어릴적 향교 대청마루에 앉아 친구들과 숙제를 하곤 했단다. 경기전에 입장권도 없던 시절, 전주의 옛 유적들은 별 관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고 언니와 친구들에게는 그저 놀이터였다고 한다. 전주 어린이들 뭐냐. 저런 곳에서 놀다가 숙제하다가 그랬다고?

가을에 오면 노란 은행잎으로 덮여 또 절경이라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디든 앉아서 노닥노닥 멍때리기에 무척 좋다.


전주 한옥마을은 메인스트리트는 온통 한복대여점에 주전부리 집들이지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진짜 흥미로운 집들이 나온다. 고무신 공예 하는 가게에 들렸다가 감탄만 하는데, 언니는 과감하게 쇼핑. 결국 저들 중 하나는 내 목에 걸렸다.


여행은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라한호텔 2층 카페는 역시 뷰맛집. 잊지 말자. 한층 더 올라가면 루프탑 뷰도 가능하다. 언니가 찍어준 사진 맘에 든다.  


점심은 전주에 계시는 언니의 어머님 모시고, #여자만민물장어. 쫄깃하고 부드럽고 담백하고 장어의 퀄리티도 좋았지만, 나는 상추, 깻잎, 부추 채소 한판을 혼자 해치웠다. 후후후.


경기전에서 오후에 공연이 있다고 했는데.. 재즈 공연 더 좋은 건 전날, 그리고 다음주말에.. 공연 구경 좀 하다가 경기전 산책하고..

언니 사진


라커에 짐 찾으러 갔다가 베트남 자라이 분들의 민속춤과 음악을 가볍게 구경. 세계소리축제란, 진짜 잼난 기획이 많았다. 제대로 알아보고 올걸ㅎㅎ


이 공간은.. 비밀로 남겨두련다. 전주 1박2일, 꽉 채운 일정이었다. 언니의 추억을 따라다니며 골목 곳곳을 누빈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언니 말로는 다음에 와서 가볼 곳이 더 많다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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