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Sep 26. 2023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죽음의 질을 따져본다면


책이 주는 정보도, 여운도 좋아서 기어이 이 책을 팟캐스트에서 소개할 때​, 책 한 권을 추가했다. 이번에는 한국의 의사가 쓴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잘 죽는다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은 의료조력사망의 철학과 통한다. 삶만큼 죽음도 존중되어야 하는데, 저자가 분개하는 것은 한국의 임종 풍경이다. 죽음과 싸우는 중환자실은 있어도,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는 임종실이 없다는 것을 저자 덕분에 처음 깨달았다. 2004년부터 병원 내 임종실 설치 요구가 있었으나 장례식장 비즈니스에 밀렸다고 한다.


“병원 사망보다 더 나쁜 죽음은 없다. 잘 죽는다는 것은 집에서 죽는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은 주삿바늘이 쉴 새 없이 몸을 찌르고, 종일 시끄럽고, 밝은 불빛으로 잠들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 채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롭게 죽기 때문이다.”(앨런 프랜시스. 듀크대 학장. 정신과 의사)


저자가 인용한 저 마지막 풍경은 캐나다의 의료조력사망 상황과 사뭇 다르다.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품위있게 마무리하는 그림을 상상하다가, 중환자실의 사투를 떠올리니 기분이 달라진다. 한국 대다수 의사들은 환자의 회복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락사이고 살인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0년 품위있게 죽음을 맞는지 여부를 놓고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를 분석한 결과, 영국과 호주가 7.9점으로 공동 1위, 한국은 3.7점으로 40개국 중 32위였단다. 말기환자에 대한 마약성 진통제 접근성이 평가항목 중 하나인데 저 당시 한국은 그게 어려웠다. 대신 2014년에는 같은 평가에서 80개국 중 18위로 올라갔다. 2013년 기준 모르핀 진통제 91%가 잘사는 나라에서 쓰인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불평등은 죽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2015년 조사에서 한국은 18위로 순위가 많이 올랐다. qualityofdeath.org 제공.

스테파니 그린의 책이 차분한 에세이라면, 이 책은 사화과학 쪽이다. 각종 데이터가 내게는 유용했다. 예컨대 한국 자살자는 10만 명당 25.7명으로 OECD 10.9명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독보적 1위를 10년 넘게 유지한다는 사실, 90년대 이후 주요국 중 인구 10만 명당 30명 넘은 나라도, 2012년 이후 20명 이상 유지하는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97년 보라매병원에서 부인 요청에 따라 중증환자를 퇴원시켰던 의료진이 형사처벌 받은 사건 이후 연명치료가 뜨거운 감자였으며, 2016년에야 연명치료결정법이 소송 끝에 제정됐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더는 적극치료가 무의미할 때 통증,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조절하고 인간적 돌봄을 제공해 존엄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 기관이 더 필요한 이유도 생각하게 됐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 그러나 이 중에서 건강한 시간은 66년이고, 17년, 즉 인생의 5분의 1은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는 통계도 서늘하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건강한 일상이 가능한지 여부가 관건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를 이렇게 책으로 만났다. 실패와 노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아름다운 죽음 대신 의료를 동원해 죽음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곱씹게 된다. 의사들에게 죽음은 마주하기 싫은 불쾌한 사건이라, 최종 죽음 선언은 레지던트나 인턴에게 떠넘긴다는데, 이것은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사실 믿기지 않는다. 예외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경험이 적은 의사는 가족들을 위로할 여유 없이 기계적으로 임종을 선언한다는데, 역시 꼭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의사 저자가 동료들에게 깐깐하고 엄격한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평온한 죽음, 담담하게 작별하는 순간을 상상하니, 결국 삶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만 선명한 과제로 남는다. 죽음을 떠올리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니, 또 하나의 교훈이다. 천방지축 무례하고 세상 겁 없는 인간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분명하다. 죽음을 멀리하고 피할 게 아니라, 삶의 핵심이라니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