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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25. 2023

<MBC를 날리면> 이런 리뷰? 결코 쉽지 않다


슬로우뉴스로도 발행했다. 독일 히틀러 시대의 시까지 다 찾아내 편집해주신 풀 버전은 여기



기어이 그가 사장에 도전하게 될지 몰랐다. 우리는 기자로 만났다. 기자들 중에 에이스가 보도국장(편집국장)이 되기도 하지만, 사장은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기자 출신들은 오히려 경영에 서툰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기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업을 5년여 꾸려본 경험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고된 경험 덕분이었다. 인생 알 수 없다더니, 그렇게 내가 사장 사모님이 됐다. 그렇다. 남편 얘기다. MBC 사장이었던 남편 책 <MBC를 날리면> 리뷰를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해서 그냥 솔직하게 가본다.


그가 뭐든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은 처음부터 굳건했다. 그는 상황 판단력, 추진력, 실행력이 좋은 남자다. 그래서 나와 결혼한 것이 아니겠냐고 가끔 놀린다. 그는 이미 성공한 보도국장이었다. 미안하지만 당시 한물 간 취급을 받던 팀을 이끌고 역전극을 벌였다. 뉴스 시청률은 3%에서 7%로 올랐고,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 것 마냥 승승장구하던 경쟁사를 눌렀다. 성과를 만들어낸 경험은 자산이다. 그런데 경영을 그 정도로 잘 해낼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적자가 예상됐던 첫해를 흑자로 돌려놓더니 3년 간 약 2000억원의 흑자를 냈다. MBC 뉴스는 마침내 신뢰도 1위로 올라섰고, 보도나 시사 뿐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에서도 저마다 성과를 냈다. 회사 울타리를 넘어선 콘텐츠 기업으로서 넷플릭스 등 OTT에서도 활약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성공한 경영인의 경영서적을 냈어야 하는데, <MBC를 날리면>은 프롤로그부터 전운이 감돈다. 2022년 9월22일 오전 회의 시간에 그가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전화 두 통을 받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이다. 둘은 MBC 기자 동기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공영방송 사장과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라는 입장에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데 무슨 일이었을까? 문제의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발언이 터진 날이었다. 뉴욕순방 취재에 나선 각 언론사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함께 이같이 듣고 뒤집어졌던 상황. 이것은 MBC 특종이 결코 아니다. 16시간 만에 김은혜 수석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해명하기 전까지 모든 언론사가 각자 판단에 따라 바이든으로 보도했다. 이후 MBC만 콕 찍어 대통령실의 보복이 진행되면서 사실 이 에피소드는 대하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책 제목까지 날릴 줄이야.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지록위마 고사는 남편과 둘이 차를 타고 가면서 들은 적 있다. 중국 진나라 때 권력에 눈이 먼 환관 조고가 어리석은 황제를 꼬드겨 승상이 된 후 사슴을 말이라고 부른 이야기. 나는 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남편은 핵심이 그게 아니라고 했다. 이 고사는 권력에 굴종해 함께 말이라 부르지 않고,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사건을 다룬다. 진실을 왜곡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고집한 이들을 처단하는 공포 정치로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만든 권력의 이야기다.


그래서 공영방송 사장의 덕목이 불현듯 ‘맷집’이 되어버린 시대다. 책에도 나오지만 보도국 후배들은 알아서 펄펄 날았다. 사장은 뉴스 내용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외압에 맞 서는 수문장이었을 뿐이다. MBC 기자들을 대통령실 전용기에 태우지 않겠다는 대통령실 결정에 대해 읍소와 타협 대신 그는 헌법소원으로 맞섰다. 언론자유라는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예전 같으면 보도본부장이 청와대 홍보수석과 만나서 ‘적당히 유감을 표하고 선처를 바라는 식’으로 갈등 봉합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의 미봉책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대통령이 명백히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지시한 만큼 MBC도 법과 원칙에 맞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자들도 경영진이 정정당당하게 맞서주기를 원하고 있었다.”(178쪽)


온 국민을 실망시킨 올림픽 개막방송 중계에 대해서는 곧바로 대국민 사과를 결정해도 권력의 압박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MBC를 상대로 국세청과 고용노동부, 검찰이 총출동해 없던 혐의도 만들어낼 지경이었다. ‘바이든, 날리면’으로 사장부터 기자까지 모조리 법정에 섰다. 그는 사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고, 법원에 재판받으러 다닌다. 암만 봐도 죄가 없어보이지만 번거롭게 괴롭히는게 목적이라면 어쩔 수 없다. 사장 연임에 도전했던 그를 배임 횡령에 탈세범으로 몰아붙여 날마다 기자회견을 벌였던 박성중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참 염치가 없다. 그래도 그들은 박성제의 연임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고 할테니 입맛이 쓰다.


공영방송을 길들이고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언론인들을 사찰하고 해고하는 사태가 2010년대에 벌어졌던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 짓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이동관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복귀한 시대. 검찰을 동원해 탈탈 털리는 옆 사람을 보면서 알아서 기는 시절이라 대체로 조용하다. 친구가 두들겨 맞는 것을 방관하면, 그 다음에는 네 차례라는 독일 히틀러 시대의 시가 떠오르지만 그 시가 괜히 나왔겠나.


현실은 목불인견이지만, 책은 재미있게 술술 넘어간다는 주변 증언들이 쏟아졌다. 남편에게 글쓰는 재주까지 있는지 몰랐다. 감각적이고 화려한 문체가 결코 아닌데 펼쳐들면 중단하기 어렵다. 나 역시 지하철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병원 진료 대기중에 다 읽어버렸다. 같은 기자였지만 신문기자 출신인 내가 글재주는 좀 더 나은줄 알았는데 살짝 충격 받았다. 마침 내 새 책을 마감할 무렵에 봤는데 속으로 탄식했다. 내 책은 이렇게 쫄깃한 긴장감과 박진감을 더해 술술 넘어가지 않을까봐 쫄았다. 장르가 다르다고 자위하는 것과 별개로 참 잘 썼다. 글재주와 별개로 이야기 자체의 힘도 한몫한다. 다들 기대하지 못한 상황에서 뉴스에 이어 MBC의 구원투수가 되는 과정이 영화 같다.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저력을 발휘하도록 리더십을 보이는 과정이 생생하다. 그가 괜찮은 리더였다는 것도 새삼스럽다. 비록 그가 사장이던 시절, 맨 정신으로 얼굴 볼 시간도 부족해 남편의 쓸모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넘어가자. 내가 관대한 아내라서 여기까지 온 걸로 해두자. 부부 사이에 이렇게 오글거리는 리뷰까지 남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언론계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니, 이 정도로 아내가 칭찬하면 성공한 인생이지, 더 뭘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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