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란 무엇인가, 탐색하다가 이 드라마를 만났다. <정부가 없다> 6장의 한 챕터다.
<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The G Word with Adam Conover]>(존 울프 연출, 2022)는 코미디언 애덤 코노버가 정부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묻고 다닐 무렵 주변에서 추천해줬는데, 거의 모든 장면에서 감탄을 거듭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과 답이로구나!’ ‘정부란 무엇인지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어야 하는 거구나!’
알고 보니 원작자가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다. 믿고 보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 영화로도 만들어진 《빅 숏[The big short]》, 《머니볼[Moneyball]》을 쓴 그 작가다. 게다가 제작자는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심지어 출연도 해서 중간중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원래 정부는 국민을 지킨다. 쥐의 사체가 함께 썩어가는 고기로 소시지를 만들던 이들을 규제로 막은 건 100년 전 미국 정부다. 불결하고 부패한 도축장을 그린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소설 《정글[The Jungle]》 출간 이후 도축 관련 위생규제가 강화됐다. 도축 시설에 농무부 직원들이 파견되어 검수한다. 100년 전 대공황 무렵 미국인 4명 중 1명이 농부이던 시절에는 그들이 망하지 않게 보조금으로 직접 지원했다. 은행이 파산할 때 연방예금보험공사라는 기구를 통해 저축한 이들을 지키는 것도, 허리케인 기상 정보를 예보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지키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인터넷을 발명한 미국 국방고등연구사업국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는 50여 년에 걸쳐 GPS를 개발했고, 기술 개발 지원 후 라이선스를 애플에 팔았는데 그것이 시리[siri]다. 이처럼 정부는 ‘실리콘밸리 하루살이들’이 못하는 것을 해낸다.
그러나 정부는 종종 로비에 밀려 국민 보호를 뒷전으로 미룬다. 1992년 미국 정부는 특정 업계 편을 들어주면서 식품영양 기준을 변경, 신선한 과일과 채소 권장량은 절반으로 줄이고, 곡물은 2배로 늘렸다. 2019년에는 돼지고기 검사관을 40%까지 감축하도록 했다. 정부 농업 보조금은 오늘날 농부 인구 비중이 1%인 상황에도 유지되는데 그나마 보조금 절반이 농업 대기업들 몫이다. 국민 세금으로 구축한 기상정보를 민간 기업이 유료화해서 정부를 밀어내는 과정도 적나라하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던 허리케인 대비 필수정보를 돈 낸 사람들에게만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비즈니스가 되어 혁신으로 둔갑했다.
DARPA의 발명품 중에 그 유명한 ‘에이전트 오렌지'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예쁜 이름과 달리 베트남전에서 사용되어 40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기형아를 남긴 악마의 고엽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사용했겠지만 미국 병사들뿐만 아니라 동맹인 한국 군인들까지 백혈병 등 고엽제 후유증이 지독했다. 정부가 하는 일이 때로 이렇게 무섭다.
드론 출격은 지난 20년간 50대에서 1만 대 넘게 늘었고, 전쟁 중이 아닌 국가에서도 드론 공습을 가해 2010~2020년 2,2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오바마 정부 때부터 크게 늘었는데, 오바마 제작 다큐에서 이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 다큐는 2022년에 나왔다. 코로나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것도 당연하다. 대통령은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휘봉을 잡자마자 말한다. 악기가 이렇게 많아? 다 필요해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부 부처와 인력을 줄이겠다고 선거운동을 했다. 전염병 위협에 대응하는 국토안보부 자문위원도 자르고, 전염병 초기 경보도 없앴다. 2020년 고위공직자 80%가 정부를 떠났다. 연주자를 충분히 고용하지도 않았고, 지휘자가 음악에 관심도 없으니 남는 건 불협화음뿐이다.
미국이 코로나 대응에 실패한 것도, 정부가 일을 못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고, 전국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공중보건 필수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오히려 줄였다. 30만 명이 부족한 와중에 5만 6,000명이 2008년 이후 감축됐다. 자격을 갖춘 유능한 공무원들이 시의적절하게 일하도록 지휘했어야 하는 대통령은 코로나 앞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허풍만 떨었다.
‘작은 정부'의 원조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여러분을 도우려고 정부에서 나왔다"는 정부 개입이 가장 무시무시하다고 선전했다. 정부 도움은 번거롭고 귀찮고 나쁜 것이라 했다. 주택개발부 70%를 축소하고, 담보대출 규제는 없애면서 자유시장이 주택 대란을 막아줄 것이라고 했다. 자유시장이 정부보다 낫다고 했다. 기업들도 정부가 무능하다는 말을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이 ‘반정부 신념'을 퍼뜨리자 자연스럽게 정부는 약해졌고, 효율성은 떨어졌고, 필요한 일은 하지 않게 됐다.
실종자가 1만 명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공식 사망자 1,392명을 기록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역시 정부가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나 무기력했던 참사다. 1년 전인 2004년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시뮬레이션 실험을 거쳐 재해 대응 설비 부족을 지적했다. 당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전쟁에 집중하는 덕에 ‘가상의' 허리케인에 투자할 자금과 인력이 부족했다고 애덤 코노버는 전한다. 1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파괴된 주택이 30만 채가 넘었으며 경제적 손실이 1,250억 달러로 추산된 카트리나 사태에서 대응은 총체적 부실이었다. 9·11 이후 FEMA 조직과 권한이 축소된데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협력체계가 무너지면서 피해를 키운 사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때 구조되지 못했고, 피난처는 수용능력을 초과해 제구실을 못 했다. 특히 사회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흑인과 빈곤층에 피해가 집중됐다. 피해가 막심했던 뉴올리언스 지역의 경우, 빈곤율은 28%로 미국 전체 평균인 12%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흑인 비율은 68%로 미국 평균 13%에 비해 매우 높았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들이 신경 쓰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국민은 보호받지 못한다. 대공황 시절 은행 파산 때 소비자를 구제하던 미국 정부는 2008년 소비자 대신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만 구제했다. 중요한 순간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에 관해 알게 될수록, 더 나은 정부를 만들고 싶어진다.
애덤 코노버는 연방정부 외에 주 정부, 시 정부로 눈을 돌린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어마어마하게 좌우하는 것이 정부인데 지방자치단체 정부의 힘이 만만치 않다. 우리로 치면 시나 구청이 생각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니 무소불위 치외법권이 되어버렸다고 할까? 애덤의 말마따나 레드삭스 야구선수는 알지만 그 존재도 모르는 지역 공직자들이 많은 문제의 원인이자 잠재적 해결사다.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에서 4%를 차지하는데 전 세계 재소자 중 20%가 미국인이란다. 과하게 감옥에 갔다는 얘기다. 누구를 어떤 혐의로 기소할지 결정하는 이는 미국의 지방검사다. 그들은 당선 혹은 재선을 위해 성과가 눈에 보이는 엄벌주의로 쏠렸다. 미국인들은 그런 검사를 뽑았고, 사실 제대로 투표도 하지 않는단다.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대선 이후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캠프 출신 몇 명이 지역으로 갔다. 이들 중 ‘리클레임 필라델피아'라는 운동을 통해 지역정치에 나선 이들이 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지나친 경찰활동을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돈만 있으면 풀려나는 보석 제도도 규제해달라고 했다. 이 일을 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언론인이 끝내 정치인이 됐다.
실상 미국의 제도가 망가진 게 아니다. 현 제도를, 그것을 악용하는 이들을 밀어내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달라진다. 정부는 쾌속정이 아니라 원양 정기선 같다고 애덤은 말한다. 어느 쪽이든 방향을 바꿀 때 시간이 걸린다.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에 냉소주의에 빠지는 대신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을 뽑으라는 얘기에 도달하는 순간, ‘아, 이 다큐 제작자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지’ 실감난다.
기업 로비에 밀려 국민 보호를 뒷전으로 미루는 정부, 예산을 아낀답시고 정부의 필수적 역할을 축소하는 정부도 모두 국민들이 투표로 선택했다. 정부가 바뀌면 일상의 먹고 사는 문제부터 시시콜콜하고 소소한 일들까지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정치인들에게 분노하고 냉소하며 끝내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부가 더 무능해지도록 방치하는 길이다.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