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학자의 조목조목 제안, 불평등 해소는 가능하다
나는 영국 케임브리지와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며 경제와 정책이 바뀔때 "누가 얻고 누가 잃는가"에 대해 묻는 것을 배웠다. 오늘날 미디어의 논의와 정책토론에서 흔히 실종되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경제학만 있지않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나 한다고 솔깃할 리 없다. 하지만 토마 피케티의 멘토이자, 해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석학. 런던정경대LSE 센테니얼 교수와 옥스퍼드 너필드 칼리지 특임연구원이고, 지금까지 꾸준히 부와 소득의 분배, 빈곤과 복지국가를 연구한 학자. Sir Anthony Barnes "Tony" Atkinson
저자의 무게가 대단하다보니, 그가 열렬하게 '불평등을 넘어' 대안을 이야기하는게 어쩐지 낯설기도 하고, 괜히 고맙기도 하다. 그는 정통 경제학자. 책은 '수식'을 쓰지 않았노라 친절한 척 서두에 밝힌 것과 달리 어렵다. 경제학 책이다. 요즘 소셜임팩트를 고민하는 동료들과 스터디 책으로 고르지 않았다면, 앞 부분을 보다 덮었을 책이다. 예상과 달리 어렵다는 걸 알게 된 우리는 책을 3차례에 걸쳐 읽고 스터디 하기로 했다. 매주 강의에 가깝게 설명해준 May와 Noah의 도움으로 이 책을 완독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불평등을 줄이는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원제 'What can be done?'을 비롯해 모든 주장은 실질적이다. 제안들이 어찌나 구체적인지. 참여소득(기본소득) 비롯해 핵심 화두까지. 경제학자란 이런 거구나, 감동했다. 기회의 평등이 매력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 결과의 불평등은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현 세대가 마주한 결과의 불평등은 다음 세대에게 기회의 불평등이니, 해결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단호하다.
19세기 말 독점금지 셔먼법 만든 셔먼 상원의원은 "사회질서 어지럽힐 문제중 부의 조건의 불평등보다 더 위협적인건 없다"며 분배에 대한 염려를 분명히 밝혔다. 조세와 소득이전이란 차선책에는 한계가 있고. 분배에 대한 어떤 개입도 이상적 수준에 못미친다고.
불평등을 나타내는 미국 지니계수는 1929년 정점. 20세기 중반 소득은 더 고르게 분배되는 듯 보였다. 자료가 있는 17개국 중에 15개국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불평등이 줄어들었다. 사회 연대의식은 강해졌고, 미국 노동조합도 세졌다. 정부 개입과 단체 교섭으로 근로소득 격차가 줄었다. 전후 유럽에서 1970년대까지 복지국가가 주목받았고, 사회적 급여가 확대됐다.
그러나 1980년 불평등으로 돌아선다. 맞다. 레이건과 대처의 정책이 세상의 흐름을 바꿨다. 영국은 국가연금 보험요율을 올리고 실업보험 혜택을 줄였다. 실업률은 높아졌다. 미국이 지니계수 7.5%포인트를 줄인다면, 프랑스 수준이 된다.
불평등의 증가 요인으로 앳킨슨은 세계화, 기술변화, 금융서비스 성장, 노조 역할 축소, 달라지는 보상 규칙, 재분배 위한 세금과 이전 정책 후퇴 등을 꼽는다. "결국 힘의 균형이 바뀐 탓"으로 "대항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지적한다. 노조 가입자는 80년 임금근로자 20.1%에서 2010년 11.9%로 줄었고, 경제적 힘의 불균형과 정치적 공백을 낳았다고. 1950년대 영국에선 노조가 60여 정부 위원회 참여했다. 균형은 심각하게 깨진 상태다.
책은 총 3부. 저자는 1부에서 불평등을 진단한 뒤, 제2부 <불평등,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논하고, 제3부에서 <근본적인 질문 : 할 수 있는가?>를 따져본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얘기란 거다.
예컨대 제안2> 공공정책은 이해관계자간 적절한 힘의 균형을 목표로 해야. 이를 위해 a)경쟁정책에 분배적 측면을 도입하고 b)노조가 대등한 조건으로 근로자를 대변할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c)사회적 동반자와 다른 비정부기구들이 참여하는 협의회 구성해야 단계적 구상까지 디테일하다.
제안3> 정부는 실업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명시적 목표를 채택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공공부문 고용을 보장해줌으로써 이 목표를 뒷받침해야 한다..약 800만 일자리 만든 미국 뉴딜정책 처럼
20세기 OECD 국가들 고용은 대체로 정규직 중심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비표준 고용, 시간제 일과 기간제 근로계약, 파견근로, 자영업이 증가하고 있다. 비자발적 실업을 최소화하는 면에서 노동시장 목표를 제시해야 하고, 인플레처럼 실업률 정책 목표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 대체 일자리보다 더 우선순위에 들어갈 정부 경제 정책의 목표가 있을까 싶은 시대이기도 하다.
정책이 고민할 영역도 다양해진다. 스위스는 경영자 보수를 해당 기업 최저임금의 열두 배를 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하느냐를 놓고 2013년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비록 부결됐으나 스위스 유권자 35%가 지지했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경영자가 최저임금 근로자의 6.5배 이상 받지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카카오로 합병된 다음도 비슷한 룰을 갖고 있었다. 상위 10% 평균 임금이 하위 10% 평균 임금의 3배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제도는 충분히 검토 가능할만 하다. 법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정책 목표로 제시해줄 수 있는 건 아닐까.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저자는 임금정책을 법으로 제한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대신..필요한 건 소득 분배에 관한 '국민적 논의'라고 지적한다. 경제성장으로 얻는 것을 분배하는 문제, 그리고 중간과 아래층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하는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검토하는 논의다. 그래서 현재 상황을 점검해보면...
주택 자산은 세대 간에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예컨대 65세 이상은 45세 이하보다 열 배 넘게 많은 주택 자산을, 45~65세 이들은 45세 미만보다 여덟 배 가까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2010년 보고서
이런 트렌드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분명. 젊은 세대를 위한 집은 없다..
2007년 미국 가구 18.6%가 순자산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 순자산 총액 하위 40% 가구 몫이 사실상 제로(0.2%). 지난 10년 미국 학자금 빚 급증..젊은층 가구 학자금 빚 가운데 약 24%는 3만 달러 이하 소득 가구가 부담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순자산이 마이너스란 건데.. 저게 미국의 금융위기 2008년 이전 데이터다.
무려 18세기에 토마스 페인은 이런 제안을 했다.
모든 성인에게 배분되는 기초자본(최소한의 상속)이 있어야 한다. 세대 간 불균형 바로잡는 수단으로서 활용. 평생에 걸쳐 자본취득세를 걷는 체제로 가면서 그 세수를 기초자본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회적 보호를 위한 제도, 유럽에서는 논의가 100년 넘었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따라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한가. 공공과 민간의 사회적 지출이 주요 OECD 국가 중 끝에서 3등. 갈 길 멀다.
상속세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재산세를 현대화하며, 연간 부유세 구상을 되살리고, 글로벌 과세를 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소득과 자본, 부의 이전에 대해 걷는 세금을 늘리자는 것으로, 소비(부가가치세), 근로소득 세금을 늘리는 최근의 경향과 반대다. (이건 얼마전 빌 게이츠도 같은 제안을 했다. Bill Gates calls for higher capital gains taxes 자본소득 과세를 노동소득에 대한 세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우리는 미국에 비해서도 자본소득 과세율이 더 낮다)
'마이너스 소득세'로 제안된 현금공제는 일종의 기본소득. 상반된 정치적 견해로 레이건과 케네디에게 조언한 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과 제임스 토빈이 각각 제안했다. 경제학 거장들의 제안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걸까. 과세 기준선 이하는 세금내는 대신 급여를 받는 셈이라 마이너스 소득세라 한다.
저자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이미 탄탄한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기본소득, 또는 시민소득 대신 '참여소득'이라는 개념으로 제안한다. 전일제 또는 시간제 임금노동, 자영업, 교육훈련 등 적극적 구직활동은 물론, 집에서 노약자 돌보거나 정기적 자원봉사 등 뭐든 기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급하자는 구상. 시민권은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인데..(이건, 공부를 더 해봐야ㅠ)
빈곤층 세제 혜택 등 복지제도의 복잡성과 '시간빈곤층'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예컨대 영국 자녀세액공제엔 서류가 10쪽, 유의사항 18쪽. 적합한 정보를 모으고 서류 작성에 시간이 걸리는데 하루 벌어 먹고 살기 바쁜 빈곤층에게 시간은 희소 자원이란 게다. '시간 빈곤층'은 그 혜택을 신청않는게 합리적이라는데.. 우리도 역시 온갖 복잡한 증명이 필요하지 않던가. 사실 지원 대상을 차별, 차등하는 것 역시 때로 비용의 이슈다. 쉽게 다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나로서는 알아듣기도 힘든 지경의 온갖 이론을 다 가져와서) 불평등 해소, 가능하다고 수퍼울트라전문가가 계속 강조하는 점이다. 그는 파이가 줄어든다며 재분배에 반대하는 고전적 후생경제학에 대해 "그 전제는 1)가계와 기업들이 완전 경쟁적으로 행동해야 하며 2)현재와 미래 모든 상품과 서비스 수요 공급 균형 이룬 시장이 있고 3)완전한 정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경제학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져주는데 멋지심.
공평성과 효율성은 충돌한다는 이론에 대해서도 (엄청 근거를 끌어대어) 명백한 증거 없다고 결론내린다. 오히려 최저임금 올리면 노동시장 참여와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릴수 있고, 기초자본을 나눠주면 젊은이들의 기회가 확대되고..유인 효과가 적지 않다고 한다. 또 더 나은 보수를 대가로 더 많은 노력을 자발적으로 기울이는 규범이 확산되면..감시를 통해 일터의 규율을 유지하는 '나쁜 일자리' 대신, 최저임금 도입으로 사회적 규범을 지킴으로써 열심히 일하도록 보장하는'좋은 일자리' 쪽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른다는 석학의 15가지 제안, 불평등을 줄이는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조목조목 설명하는데, 다 알아듣지 못해도 간혹 뭉클해진다. 경제학자에 대한 불신이 줄어들었다면 이 분 덕이 크겠다.
무엇보다 저자는 "긍정적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한다. 1980년 이후 '불평등 회귀'는 사실이지만, 해법은 우리 손 안에 있고, 거대해진 부를 이러한 도전을 맞서는데 기꺼이 쓴다면, 덜 불평등하게 나눠야 하는걸 받아들인다면... 이것이야말로 낙관할 근거라고.
상아탑에 갖힌 학자들끼리의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한다고, 이 방향으로 가면 괜찮다는 친절한 제안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은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만의 몫도 아니고, 학자들만 해야할 일도 아니다. 개인도, 기업도, 누구라도 가능한 목표를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인상적인 종업원 공동체 기업 '스콧베이더 코먼웰스'의 정관을 덧붙여 소개한다.
"오로지 경제적 성과만 기준으로 삼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과 타인에 대한 봉사에 궁극적 기준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상호 책임성이 직장 공동체 전체에 스며들어야 하며 민주적 참여에 따라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