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자자한 전시회 다녀왔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시절의 일상 물건들. 수천년 유물도 아닌데 걸음마다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일단 인디언들은 왜 다 시인인가. 겸허해지는 말들.
대지가 네 말을 듣고 있고
하늘과 숲과 우거진 산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너는 온전한 어른이 될 것이다.
- 루이세뇨족이 아이들에게
우리는 인디언을 그냥 서부영화의 악역 혹은 조연으로 봤지만 북미에만 570개 부족이 있었단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는 43개 부족의 삶을 보여준다. 어디서 본듯한 저 천막은 '티피'. 물소 가죽 쉽게 얻던 대평원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동시에 9분 만에 설치했다니 민첩하고 솜씨 좋은 기술도 보여준다.
하지만 천막으로만 이해하면 큰 오해다. 원주민은 이글루부터 진흙집까지 기후와 환경에 따라 현명하게 대응한 건축법이 다 달랐다. 미국 남동부의 진흙집 '어도비'는 나름 층층이 대주택을 이뤘고 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구나.
인상적인 요람. 아이를 데리고 말을 타고 다녔구나.
일상의 미적 감각이 수준급이다. 대체 왜 우리는 원주민에게 미개한 이미지를 덧씌운 것인가. 왼쪽 사진 앞 항아리는 얼추 100년 된 것, 그 뒤의 것은 호피족 도예가 남페요의 후손이 현대에 만든 공예품이다. 오리 모양 주전자(오른쪽)를 보면 이분들 일상에 멋내는데 진심이었다.
직조 방식도 문양도 각 부족마다 특징 다르다. 나바호족 덮개는 방수가 될만큼 촘촘하고 튼튼하게 짰다.
캐나다 동부 퀘벡 부근 웬다트족은 무스 털로 수를 놓았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수를 보면, 저기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이 어느 정도인제 짐작도 안된다.
알래스카의 이누피액족이 오호츠크뿔쇠오리 깃털로 만든 옷이나 대평원 큰 사슴 엘프의 이빨로 장식한 크로족 옷을 보면, 이들이 매사에 지극정성이란게 실감난다.
패션의 정점은 존경받는 지도자의 깃털 머리 장식.
인디언 모카신. (신이 신발인줄 알았더니 그냥 모카신이 이름이다..) 부족마다 문양도, 재료도 다 다른데 하나같이 온 정성이다.
온갖 정성의 바구니들을 보면, 동서고금 어디나 시간과 정성이 예술품을 남기는구나 싶다. 바구니에 깃털 장식이 웬말이냐고..
숲의 야인 '바크와스'는 유령의 나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주인공. 여행자에게 권하는 연어가 알고보면 썩은 나무나 구더기, 뱀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보면 함부로 주워먹지 말라는 규범을 저런 식으로 했나 싶고ㅎㅎ 까마귀와 범고래 탈 등 동물과 연결된 신화가 줄줄이 이어진다.
인디언의 알록달록 어여쁜 삶에만 감탄할 수는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전시에는 몇가지 작품이 소개되는데 미군이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수족 300명을 한꺼번에 몰살시킨 1890년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 그림은 숨이 막힌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림. 눈밭 한가운데 무덤은 선연한 핏빛으로 가득찻고, 주인 잃은 말이 멀리 있다.
원주민 부족을 학살하고, 문명을 말살하고, 보호구역이라 부르지만 실상 작은 땅에 몰아넣고 가둬버린 것이 미국의 역사다.
보호구역의 원주민들은 어떻게 됐을까. 술에 쩌든 모습, 카지노 자본주의에 삼켜진 모습이 원주민 작가들의 작품으로 등장했다.
나는 땅의 끝까지 가보았네.
나는 물의 끝까지 가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도 가보았네.
나는 산맥 끝까지도 가보았네.
하지만 내 친구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네.
- 나바호족 노래
원주민은 물건너 온 이주민들에게 농사 짓는 법부터 새로운 땅에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며 환대했으나 그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몰락하거나, 사냥당하는 처지가 되어 자기 땅에서 쫓겨났다.
맑은 하늘은 어여쁘다.
푸른 들은 어여쁘다.
하지만 더 어여쁜 것은 사람들 사이의 평화다.
- 오마하족 잠언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는가?
- 시애틀 족장의 말
미타쿠예 오야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북미 원주민 인사다. 살아있는 모든 것, 사물까지도 다 연결된 존재로 존중하던 이들이다.
내 뒤에서 걷지 마라.
내가 이끌 수 없을지도 몰라.
내 앞에서 걷지 마라.
나는 따를 수 없을지도 몰라.
내 옆에서 걸어라.
우린 하나가 될 수 있을 테니.
- 유트족 잠언
프리츠 숄더의 '인디언의 힘'.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의 상징이 된 그림이다. 요즘은 북미 인디언을 수동적 학살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구 문명과 상호관계를 맺고 발전해온 측면에서 역사를 재해석한다고 친구가 말해줬다.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 보상도 없이 지나갈 일은 아니지. 과거 만행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식민지 정벌에 나선 제국들은 늘 원주민에 대해 열등하다느니, 미개하다느니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그들은 멋을 아는 패션부자들이었고, 평화와 공존 철학이 뚜렷한 이들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