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소설로 읽는 경제학>, 신현호 박사님을 모시고 진행한 오티움 북클럽 4개월 장정이 마무리됐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그 시절 영국의 상속 제도를 들여다봤지만 나는 결혼 경제학에 꽂혔고
연금이 등장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채권 시장이 슬쩍 배경인 스콧 F. 핏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서는 사랑과 연애를 생각했던 나.
북클럽 4회차, 이광수의 [재생]은 채만식 [탁류]와 더불어 1920년대 미곡 선물 거래가 이뤄진 조선의 경제를 들여다본 건데, 나는 또 여자들에게 집착중이다.
[재생]의 주인공은 순영. 배운 여자로 교양 있고 피아노도 잘 치는 미모의 여학생이다.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그냥 '1등 신붓감'이고, 장안 남학생들의 우상이다. 문제는 눈에 차는 남자가 없었다. 이 조건, 저 조건 다 따지는데 특히 자신에게 걸맞는 우아한 생활을 보장해줄 재력이 문제였다. 급기야 중년 부자의 몇번째 첩이 되느냐, 3.1운동으로 감옥 갔다가 돌아온 남학생의 구애에 응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다. 왜 이딴 고민인지 어이 없지만, 순영의 마음은 팔랑개비. 여동생을 부잣집 첩으로 보내고 한몫 챙길 욕심의 오빠까지 난리쳤지만 결국 부자로 살기로 결심한 건 그녀 자신이다. 소설은 그녀에게 버림받은 뒤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남학생 봉구가 인천의 미두취인소에서 선물 거래를 배우면서 본격 스릴러로 간다. 다만 이광수 옹이나 [탁류]의 채만식 옹이나 멋쟁이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수일과 심순애' 풍으로 돈에 팔려가는 여자의 비극을 그리는데 심취한 건 그 시대 유행인갑다. 몸을 더럽힌다는 표현도 심난하고, 더럽힌 주체보다 더럽혀진(!) 피해자를 몹쓸년으로 만드는 것도 유난하다.
그런데 실화가 있네?
그 시절 선물로 졸부가 된 슈퍼개미 반복창과 최고 미녀 김후동이 결혼한 얘기는 전설 같다. 얼마나 부자였는지, 경성 자동차 200여대 중 3분의 1이 몰려든 결혼식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그러다 쫄딱 망했는지, 김후동이 애들 데리고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고. 이광수의 봉구도 반복창이 되고 싶다더니...
더 놀라운 것은 김후동보다 더 예뻤다는 여동생 김화동이다. 딱 이광수의 순영처럼 미모로 유명했고, 이 남자, 저 남자 고르다가 일본의 부자 박석규에게 갔는데 결혼 못하고 아이를 임신한채 버림받았다나? 이게 '김화동의 애사'랍시고 조선일보에 12회나 연재됐다는게 나를 기막히게 했다. 여학생의 개인사가 기삿거리라니. 그 시절엔 김후동, 김화동 같은 어여쁜 여학생이 이효리. 아이돌이었다고.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지 경성 모두가 관심을 두니 더더더 최고의 남자를 고르느라 애썼을 법 하고, 두 자매 모두 비극으로 끝나다니. 좀 배운 여자, 여학생들도 사는게 고난이었겠다.
이광수의 [재생]은 1924~1925년 동아일보에 연재됐는데, 소설 속 순영이나 현실의 김 자매들이나 대중의 관심이 독이 된 듯 하다. 집안이 정해준 혼처가 아니라, 연애가 본격 등장한 신여성들 사이에서 전통적 결혼관은 무너지고 자본주의 태동에 따른 배금주의가 힘을 발휘한 것도 아이러니다. 조선 독립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무너진 것도 주인공들의 방황에 한몫했다.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들은 대부분 망명하고, 돈이 먼저였던 경성 멋쟁이들 시절이다. 근데 반포 아파트 단지 내 소개팅이 유행이라는 오늘날, 사랑과 연애가 자본의 조건을 기반으로 끼리끼리 이뤄지는 건 100년 전과 다른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든 개인과 개인의 인연이든, 사랑과 연애, 결혼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건가?
"오라비들이 미두를 하고 술을 먹고 기생집에서 밤을 세우니 그들의 누이들은 돈 있는 남편을 따라 헤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조선의 아들과 딸들은 나날이 조선을 잊어버리고 오직 돈과 쾌락만 구하는 자들이 되었다 교단에서 분필을 드는 교사도 신문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도 모두 돈과 쾌락만 따르는 이기적 개인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 이광수의 [재생]에서
돈과 쾌락이 인생의 로망이 되어버린 건 인류 역사 내내 별로 다르지 않은 듯. 우리는 그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순수하다'고 칭송하곤 하지만 속내도 그런걸까? 인간은 동서고금 바뀐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재생] 소개 링크 남겨놓는다. 우리 클럽장 신현호님의 글이다. 이번 북클럽 진짜 재미있었다ㅎㅎ 다음 시즌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