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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호랑이>세월호 아이들과 포옹, 혼자가 아니리

by 마냐 정혜승

"잘 들어! 여러분이 도착한 오늘까지,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이승을 떠난 실종자가 잠수사를 붙잡거나 안을 순 없으니, 이 포옹을 시작하는 것도 여러분이요 유지하는 것도 여러분이며 무사히 마치는 것도 여러분이다. 포옹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공간, 그곳으로 가서 여러분은 사망한 실종자를 안고 나오는 거지…." - 김탁환 작가님 [거짓말이다]에서



2016년 온힘을 다해 한달음에 읽고 엉엉 울었던 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 [바다호랑이]. 그 기억을 되살리는데 긴장했지만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지막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바다로 들어간 잠수사들. 그중에서도 고 김관홍님의 이야기에 어떻게든 응원 보태고픈 마음이 당연하지 않은가.


영화 연출이 작심하고 미쳤다. 잠수사가 바닷속 세월호 안에서 희생자를 찾아 헤매는 장면을 물기 하나 없이 구현했다.

영화는 “이제 여러분들은 이 세트장에서 한편의 영화를 같이 작업하게 될 것“이라고 시작해 한 편의 무대 연극처럼 찍었다. 소품도 미술장치도 없다. 벽과 의자, 책상이 전부다. 조명과 사운드에 더해 오로지 배우의 대사와 표정, 몸짓이 다했다. 김관홍님을 모델로 한 나경수 잠수사 역 이지훈 배우님이 이 무거운 도전을 해냈다.


소설에서 상상만으로 눈물이 쏟아졌던 포옹 장면을 슬로모션 마임처럼 움직이며 맨몸으로 보여줬다. 슬프고 비통한데 반갑고 고마운 순간을 이보다 더 잘 살려내기 어렵겠다. 헐리웃 식으로 돈들여 찍었으면 오히려 보기 힘들었겠다.


민간 잠수사들은 세월호 희생자만 생각하며 그곳으로 갔지만 정부는 훼방만 놓았다. 유족에게 정보를 차단했고 잠수사들 구조현황을 속였다. 턱없이 부족했던 잠수사들은 무리했다. 작업 도중 희생자가 나온 것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일. 그걸 또 잠수사 리더에게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한 검찰은 잔인했다. 2년 넘게 시달리고서야 무죄가 나왔고, 그새 누군가는 자살하고, 누군가는 잠수병으로 숨졌다.


"형 우린 죽으면 천국 갈거야. 살아서 지옥을 봤으니"


뼈가 썪고 근육이 찢어지고 신경이 눌리는 잠수병보다 마음이 지옥이었다. 아이들을 끌어안고 물밖으로 나오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누군가 살이 닿기만 해도 소스라친다. 가족 잃은 이들과 자기 몸 갈아넣어 헌신한 사람들이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던 시절이다.


영화는 그때 그 순간을 되살려내지만, 고통보다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You’ll Never Walk Alone) 노랫말이 반복된다. 공감과 연대 외에 우리 삶에 뭣이 중할까. 손수건을 준비하고 갔지만 눈물을 절제하는 연기에 따라갔는지 나도 별로 울지 않았다. 겁내지 마시고 많이들 보셔도 좋겠다.
투자 등 난항을 겪으며 9년 만에 끝내 개봉한 정윤철 감독님과 윤순환 제작자님의 끈기와 의지에 감사. 무엇보다 원작 [거짓말이다] 김탁환 작가님께 다시 마음 포갠다. 세월호 별들을 잊지 않도록,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이들이 이렇게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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