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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by 마냐 정혜승

사실 지난주 몹시 소개하고 싶었던 책이야. 이재명 대통령님이 SPC 방문해서 노동자의 시선으로 말씀하는데 짜릿했어. SPC 불매하는 소비자로서, 한때 불매했으나 지금은 쿠팡 애용하는 자영업자로서 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뭐가 문제인지 좀 봐야하지 않겠어?

작년 여름에도 여러 분이 목숨을 잃었던 회사가 쿠팡이야. 물류센터에서, 심야배송하다가, 쿠팡은 늘 상관 없는 일이라 하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원래 그 무렵에 소개하려 했다가 지나가버렸는데, 이렇게 또 계기가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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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세이야. 노동에 대해 쓰는 글 마다 화제였던 한승태 작가님. 필명이야, 이분은 3년여 닭, 돼지, 개 농장에서 일하고 <고기로 태어나서>란 전작이 화제였는데, 이번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라고 본인이 일했던 현장 이야기를 풀어냈어. 없어질 직업이라고, 그래서 그 노동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고 했어. 직업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거니까.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동사가 사라질거라고. 즉 콜센터 상담, 택배 상하차 작업, 뷔페식당 주방 일, 빌딩 청소. 우리 주변에 흔한 일이지만 AI 등 기술 발달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


이중 가장 끔찍한 건 ‘전화받다’. 신입도 하루 60콜 이상, 보통 하루 75통 받아야 한다는데 첫 통화 끝나자마자 신경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해. 이건 감정노동이야. 매일매일 헫셋을 통해 쏟아지는 모욕과 무시를 참아내느니 차라리 온종일 돼지 똥을 치우는 일이 더 편할 것 같았다고 토로해.


“그래도 이 아저씨는 점잖네요. ‘새끼’ 소리는 안 하잖아요.”
‘씨발’ 소리를 들었는데 점잖다니 정말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구나!

산재 천국 쿠팡 얘기는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직접 해본 사람 이야기는 달라. 택배 상하차 노동은 “남은 수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라고. 자신의 육체 안에 품고 있던 생명력을 레몬즙 짜듯이 쥐어짜 내서 그 대가로 먹고 사는 일이라고. 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에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대신, 무릎 연골 조직의 탄력성과 물류센터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실제 작업 묘사가 리얼해.. 예컨대 조선시대 ‘도모지’라는 형벌. 젖은 종이를 얼굴에 여러장 덧씌워 질식사시키는 건데, 칠팔월에 까대기를 하면 도모지 경험. 그런데도 먼지가 너무 많아서 마스크를 벗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해. 까대기를 할 때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 몸에서 물이 줄줄 샌다고.. 수분손실.. 쉬는 시간은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지나가 버리고.. 새벽3시 지나가면 피로와 졸음이 몰려오는데..근육을 움직이는 힘은 눈치가 50%, 돈 걱정이 50%이고..

아침에 퇴근하고 나니.. 너무 지쳐서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간신히 씻고 잠들었는데.. 해질 무렵 깼고. 그렇게 간신히 하루 일하곤, 일주일 내내 앓아누웠다고. 허리에 주사 맞고 물리치료 받고.. 물류센터가 자동화되면 전국의 정형외과들이 타격을 입을거라고..

물류센터는 이 시대의 ‘막장’. 한여름의 컨테이너는 그 자체로 굴. 내부엔 바람도 빛도 들지 않고 레일 끝에 달린 희미한 전등 빛에 기대 작업..

이 일은 더는 못해.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다가도 다음날 오후 입금된거 보면.. 편의점 도시락을 저녁으로 챙겨먹고 다시 나간다. 그런데.. 일당은 힘이 없는 돈이야. 훅하면 날아가 버린다고. 월급이 돼야 힘이 돼지.. 어느 형의 말씀. 1년 일하면 퇴직금 줘야 하니까, 딱 열한달 채우면 업체에서 그만 나오라고.. 20일 쉬다 오라고.

책은 노동의 기쁨과 슬픔, 보람, 이 모든게 과연 사라질 것인지.. 아주 재기발랄하게 썼어. 아재 개그의 끝판왕 느낌이지. 읽는 재미가 있고, 그 험한 노동에도 불구,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도 언급해.


“노오오오란 해가 떠있는 걸 딱 보고 있는데… 그걸 뭐라고 할까, 아…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 살 수 있겠다… 충분히 살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하여간에 쿠팡에서 계속 쓰러지는 분들이 등장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야. 그런데 과로사를 부르는 근면성실이 노동자들의 선택이라고 쿠팡은 말하지. 하지만 불안을 활용하는 고용헝태가 있었고, 계약 갱신하려면 스스로를 갈아넣어야 해. 다들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일하려고 하잖아? 대통령님이 언급했듯, 야근, 특근 더 해야 간신히 먹고 살 만큼 버는게 문제잖아. 이런걸 ‘불안정 노동’이라고 해. 옛날에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라고 했는데, 불안정 노동자는 ‘프레카리아트’라고. 각잡고 소개할 책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이 쓴 노동 보고서야.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라는 의미야. 지난 몇십 년간 노동의 형태가 변하면서 기존 제도나 설명에 잘 안맞는 이들이 등장했지. 외주화된 청소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아픈 노동자, 해고 노동자, 불안정한 청년노동자, 하청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새벽배달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가짜 자영업자 등인데..비정규직이나 일일 노동자 뿐 아니라, 유튜버, 크리에이터도 사실 이 범주에 들어가.

자유롭고 창의적 방식으로 노동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쉼없이 일하지. 그런데도 기본 노동권이나 사회적 보호에 접근할 기회가 제한되고 적절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불안정노동자에게 유일한 선택은 장시간 노동이야. 2022년 기준 한국 임금 근로자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네번째로 긴데, 이들은 시간빈곤과 소득빈곤 이중고에 시달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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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논문 쓴 걸 엮었으면 읽기 힘들었을텐데, 이 책의 미덕은 문제의식은 그대로 남기고 비교적 쉽게 썼어. 잘 읽혀. 그래도 중요한 데이터들을 보게 되지.

새벽배달 노동자들의 일일 배송 물량은 2015년 56.6개에서 2017년에 이미 210.4개로 증가했어. 일주일 내내 휴식시간 갖지 못한 야간 배달 노동자가 68%에 달한다거나. 2024년 기준 쿠팡 택배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4.6씨간이라거나.

하청근로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이 원청 보다 약 8배 높다는 걸 보면, 고용 형태에 따른 안전 관리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어.

K조선업 부심 있지만, 한국 조선업 생산직 10명 중 8명은 사내하청 인력이야. 하청의 하청으로 엮였지.

내부 노동시장의 안정된 노동자들 말고, 고용불안정, 저임금에 시달리는 외부 노동시장으로 이중 노동시장 구조가 문제야. 어디나 불안정 노동자가 많이 늘었어. 학교조차 비정규직이 20만명, 43%에 달해. 급식노동자, 보조교사, 특별활동 강사, 돌봄교사 등등.

가짜 자영업자라고 있어. 맘대로 일하는게 아니라 마치 고용주가 있는 사람처럼 일하면서 지휘와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야. 종속적 자영업자라는 건데, 예컨대 화물차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요즘 특고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들이 노동자냐, 자영업자냐, 개인사업자냐가 쟁점이었어. 근로기준법 상 고용 계약은 없거든.

세계적 추세는 ‘1인 자영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주는 쪽이야. 아일랜드는 이들에게 단체교섭권도 보장했고, 2022년 발효된 ILO 핵심협약도 고용 여부와 상관 없이 폭넓은 단체행동권을 인정하는데 우리는 아니지..

복잡한 다단계 방식의 하도급과 아웃소싱 구조에서 맨 밑단의 노동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지 모호해. 가장 쉬운게 '노동자의 부주의’ 탓이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여전히 기존 노동 방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일단 불안정 노동자들은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지. 정규직들은 4대 보험 당연하잖아. 하지만 종속적 자영업자는 국민연금 미가입이 45%. 고용보험은 순수 자영업자 경우 미가입자가 99.5%야.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득 보장은 제도 간 유기적 연결을 통해 가능한데, 근본적 사회보장 개혁 원칙이 필요해.

그리고 아픈 노동자들 소득은 어쩌지?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상병수당’이란게 있어. 장단기 요양시 소득 상실분을 보장해주는 거지. 이거 이재명 대통령님이 대선 직전 페북에 함 올리셨더라고. “아프면 쉴 권리인 상병수당 시범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모두에게 두터운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겠다”고. 상병수당 없는 나라가 OECD 38개국 중 한국, 미국 두 나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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