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이 더 귀하다> 슈퍼맨 소방관을 응원하려면

by 마냐 정혜승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소방관님이 끝내 세상을 등졌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로 고통받는 소방관님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그런데 개인 문제로 보면 안된다. 지난 10년 140명 넘는 소방관이 자살했다. 순직보다 자살이 두배란다.


소방관 백경님은 트위터에서 본 기억이 있다. 글빨 끝내주는 소방관님. 글빨의 힘은 현장을 뛰는 이의 성찰에서 나왔다. 찐이었다는 얘기다. 요즘도 트위터와 스레드에서 활약중이신듯.


백경님의 책 [당신이 더 귀하다]를 보고서야, 그가 글을 쓴 이유를 알았다. 오래 구급차를 탔지만 현장의 아픔과 죽음에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소방관이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구급차를 타며 마주한 삶과 죽음의 단상을 기록하셨다고.


온갖 죽음을 보다 보면 마음이 괜찮을 리 없다. 불현듯 애들이 사고 당하는 상상을 하고, 아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자살 전조 아닌가 불안해하고, 고속도로에서 구조활동 하다가 차에 치거나, 정신질환자의 칼에 맞거나, 또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마음이 무너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지. 그래서 틈날때마다 유서를 썼단다. 잡힐듯 말 듯한 죽음의 먼저 손을 내민 것. "죽음을 준비하는 글은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잘 살았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내려놓아야 할 것과 붙들어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사람은 붙들어야 할 것이었고 그 외엔 내려놓아도 좋은 것들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이라도 가치 있기 때문에 나의 삶 또한 가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러나히게도 죽음을 떠올리며 시작한 글쓰기가 삶의 위로가 되어준 것이었다."


그가 만난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의 기록 하나하나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가온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소방관을 다시 보게 된다.

컵라면 먹는 소방관은 불쌍해 뵈려는 ‘쑈방관'이라는 말이 있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먹는 장면에서 울컥했다가, 훈훈한 에피소드에 마음이 풀린다.
한밤중 골목에서 덩치 있는 사람이 갑자기 불러세워서 놀라는 장면. 소방관들은 ‘만나면 좋지 않은 친구’라 뭔가 긴장하는데, “어묵 먹고 가세요~” 남자의 아내가 어묵과 붕어빵을 가득 담아줬다. "119 마크를 등짝에 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베푸는 호의. 그래도 소방관 마음이 마냥 좋지 않다.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구한 사람 못지 않게 많은 탓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15등급으로 고객을 분류하는데 소방관은 14급이라는데 담담해지려면 얼마나 도를 닦아야 하는걸까. 하지만 그는 보통사람이라 다행이라 여기는 부류다.

“화려한 연출 없이 약자를 돕는 우리를 두고 세상은 고귀한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말로만 한다. 약자를 돕는 일을 정말 고귀하게 여기는 세상이라면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내일을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단어에는 명품시계나 고급승용차 같은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차라리 필요한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게 좋다. “필요한 일을 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
“사실 나는 보통 사람이고 싶다. 보통 사람은 달에 로켓을 띄울 수 없다. 대신 세상에서 보통 사람이 가지는 역할이 하나 있다. 그건 가장 보통의 역할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보통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는 것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데 공장장은 소방관을 우리 공동체의 슈퍼맨으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솔직히 미국이 좀 그렇지. PTSD로 고통받는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은 정부 몫.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일. 언론이 먼저 해야 할 일이지만 일단 열심히 떠들고 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동사의 멸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