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까지는 12.3 주간이라 치고, 오늘은 관련 책들을 가져왔어.
적지 않은 기록이 쏟아졌는데, 일단 우원식 국회의장의 기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어. 최전방에서 비상계엄을 막은 주역. 그날의 긴박했던 국회 상황을 가장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분.
12.3 그날밤 기록이 93쪽까지 이어져.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게 특징이야. 퇴근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김민기 국회사무총장이 전화하지. “의장님, 계엄이랍니다. 계엄.” TV를 켜고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화면에 숨이 멎는듯한 기분이었다고.
공관 주변에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 출발하는데, 부인이 평소와 달리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쁜 사람들! 절대 지면 안 돼요. 그리고 몸 조심해!” .. 정문을 빠져나가면서 시계를 봐.. 22시37분. 역사로 남을 것을 알고 계셨으니까 그랬겠지만 시시콜콜 분 단위로 기록했어.
겸공 이 자리에도 잠깐 나오셨던 김성록 경호대장과 움직이는데, 이분은 서울경찰청 지휘를 받잖아. 혹시 경찰이나 계엄군에 넘기려 든다면? 살짝 불안하셨던듯. 그러나 이동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지.. 그리고 끝내 이분이 저 월담 사진 찍으셨잖아. 이 대목은 거의 영화지.
공관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국회 담장 넘고, 집무실에서 작전을 세우는 긴박한 여정을 소상하게 그려내. 계엄 해제를 위한 법적 근거와 작전을 결단하는 장면, 국회의장 동선을 숨기기 위해 전 층의 불을 켜고 이동하던 모습, 권총을 든 경호대가 자동화기로 무장한 계엄군으로부터 국회의장을 보호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모습..대한민국 헌정사가 위협받던 그날 밤, 국회가 어떻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됐는지 직접적으로 와닿아.
윤석열은 국회가 움직이는데 3~4일 걸릴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정명호 의사국장이 우의장에게 낡고 바랜 기록철을 내미는 장면도 드라마틱해. 지난번에 우 의장님이 언급하셨지만, 이분이 자타공인 국회법 도사였는데 없는 줄로만 알았던 전례 하나를 찾아낸거지. 조사 빼고 모두 한자로 된 문서. 1964년 6.3 사태 당시 국회가 계엄령 해제를 결의안 형식으로 처리한 전례.
그날 새벽 5시53분. 한덕수 국무총리와 통화하는데 첫 마디가 “의장님,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말고,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했습니까, 안했습니까”.. 4시30분에 의결했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5시54분 본회의장에 대기중인 의원들에게 정회를 선포하지.. 긴 밤이었어. “동트기 전에, 이 밤에 끝낸다”는 간밤의 다짐을 지켜냈지.
집무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자고 12월4일. 늦은 점심으로 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연녹색 넥타이에 국물 튈까 풀어놓는 에피소드. 고 김근태 의원님의 넥타이인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착용하신다고.
책은 탄핵을 거쳐 파면까지 국회의장의 고뇌와 막중한 책임감을 통해 그 시간을 다시 돌아보도록 해.
그 많은 12.3 책 중 두번째로 소개할 책은 <다시 만날 세계에서>. ‘빛의 혁명을 이끄는 여성들의 이야기’, 부제가 ‘내란 사태에 맞서고 사유하는 여성들’이야. 응원봉을 들고 광장의 주축이 된 여성들 이야기가 지난 1년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생각해. 어른 남성들의 단독 저서가 엄청 쏟아졌는데, 여성들 이야기가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더 귀한 책이지. 겸공에서 짧게 소개됐었지만, 그 다시 한번 꺼내든 이유야.
그 강유정 대변인님, 그 소설가 정보라. 요즘 핫한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유선혜 시인, 집필노동자 이하나님 등이 의기투합했어. 광장, 남태령, 한강진 등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사회의 현실을 목도한 이들의 경험담이지.
집필노동자이자 청년 여성 농부 김후주씨가 누군가 했더니 엑스(트위터)의 ‘향연’님이더라고. 남태령 집회를 세상에 알린 분이지. 트랙터 행진 당시 투명하게 진행 상황을 포스팅, 관련 글이 최고 조회수 400만을 찍었던 바로 그분, 남태령 소식이 궁금할 때 등대가 되어줬던 바로 그분이더라고. 본명보다 닉네임을 말하면 “아! 남태령!” 한다고 적었어.
이분 글도 잘 써. 아주 생생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시작하는 자유 발언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됐다고. 농민 뿐 아니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도시빈민, 청년, 청소년, 전세 사기 피해자, 노동자, 성폭력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국가폭력 피해자, 지방민, 장애인… 자신의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 속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자는 염원이 담긴 간절한 소망을 나눈거지. 그리고 난방버스 등 ‘돌봄의 광장’ 풍경이 등장하게 된 과정도 자세히 나와.. 남태령을 겪으며, 연대는 무조건적이고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야기가 감동 포인트야.
정보라 작가님은 “한국은 여성 혐오 사회라고. 신상 털기, 지인능욕이 놀이문화라고. ‘예쁜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 여성들’을 연일 내려다보듯 감상하며 ‘예뻐하고’, ‘기특해하고’ 분석하는 아재들에게 일침. 여성은 젊고 예뻐야 하고, 데모도 예쁘게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 발상이 징글징글하다”고 지적해.
정보라 작가님은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는데 386이 원하는 방식의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한명의 우두머리 아래 수직 서열 체계로 모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연대는 넓고 느슨하고 유연하다고 일침을 놓아. 그는 오십대 이상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이 절대 다수인 한국 정치계에서는 2030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는 고사하고 듣는 척이라도 하는 권력자는 찾기 힘들다고, 그러니까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거라고.
강유정님, “2030 여성의 문화 소비는 ‘가치 소비’. 가치 있다 생각된다면 그 소비재가 무엇이든 진심으로 전력을 투자한다. 지금껏 청년 세대 주류 가치로 여겨졌던 ‘가성비’와 대조된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아깝지 않다. 돈도, 시간도 열정도. 그리고 지금 2030 여성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선택의 대상, 자유의 표상, 문화적 대상이 되었다고.
박근혜 탄핵 때 교복 입고 촛불을 들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축제로 만들었고, 여성 혐오 범죄에 반대하며, 검찰 개혁을 촉구하며, 장애인에 차별에 반댛,며.. 광장을 지켜온 젊은 여성들의 역사, 그 부심을 다시 보는 것도 두근거림.
12.3 충격 이후 각계에서 저마다 고민을 많이 했겠지? 이 책은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필요한 경제적 처방에 관해 경제학자들이 고민한 결과물이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한 결정이라 해도, 탄핵 과정에서 벌어진 정치 상황은 개인이나 일부 세력의 일시적 일탈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고. 우리의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분석했어. 정체된 성장, 경제적 기회의 축소, 격차 확대가 민주주의 위기의 바탕이 되는데 극우 급성장이라는 세계적 현상과 맥을 같이 한 와중에 저성장과 불평등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거지.
그런데, 경제적 불평등 뿐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사회적 흐름에 대한 불만도 간과할 수 없다고 해. 한국갤럽 조사에서 보수층이 윤 탄핵에 25%가 찬성한 반면 72%가 반대했지. (중도와 진보는 각각 60, 96% 찬성) 저성장 시대에 분배는 더 복잡해. 성장률이 5%와 2%일 때 갈등은 다른 차원 문제야. 소득이 5% 증가할 때 1%를 재분배 몫으로 사회에 환원하면 증가한 소득의 20%를 양보한 셈이지만.. 소득이 2% 증가할 때 1% 환원하면 절반이잖아.. 고소득층과 기득권층이 재분배정책 불만이 커질 수 밖에.. 문재인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이들은 거칠게 반응했고, 좌파 정부가 시장을 무시한다는 식의 이념전쟁으로 몰아갔지. 분배 친화적인, 최소한 중립적인 성장 정책을 발굴하는 동시에, 보수 지지층의 소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지.
내란이 경제에 미친 여파는 학자들 분석을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윤정부가 성장도 망가트린 건 분명. OECD 잠재성장률 평가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2020년 코로나 와중에도 2.6%였는데 윤 정부 2024년 2.0%로 떨어졌지. 저성장 시대를 직시해야 해. 올해부터 2030년까지 KDI 연간 성장률은 1.5%, 2030년대에는 0.7%, 2040년대에는 0.1%로 전망해.
인공지능, 바이오, 우주산업 등 다양한 혁신기술이 쏟아지는 시대에, 정작 한국의 주력 산업은 20년간 그대로이고, 상위 대기업도 거의 그대로인거. 혁신과 변화의 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부터 이것저것 총 망라한 정책 제언이야. 미래 성장 동력 고민하다보면 과거와 같은 국가가 산업 발전을 주도하는 접근은 우려하지만 민간이 나서기 어려운 모험적이고 대규모 자금이 드는 R&D 정책과 벤처 활성화, 기후위기 대응과 인공지능과 로봇 등 기술 인프라 투자, 전략산업 정책금융 등 정부가 더 애써야 하지.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공공투자 역할을 확대하든지.
동시에 재정 보수주의를 극복하고 누진적 보편 증세 얘기도 중요하고(조세부담률이 문재인 정부 막판에 22.1%까지 올렸다가 윤석열 첫해 19.0%ㅠ) 주택정책, 연금정책, 지방균형발전까지 당면 과제 일목요엲,게 보기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