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살되, 관계만큼은 무겁게
쿤데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고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쿤데라 본인은 이 저작을 연애 소설이라고 규정했지만, 앞서 말한 시대적 배경이 무겁기도 하고 작가의 철학이 꽤 많이 투영되어 있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단순한 통속물로 여겨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공산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점이 재밌다. 그들은 작가의 말마따나 키치적이다. (똥 따위를 배척하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게 하는 점, 그렇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보편적 감동을 주는 방법으로 선동하게 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에 반하는 사람들을 극도로 억압하기 때문에, 그들이 군림하는 시대는 그저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던 낙원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서 '이럴 줄 몰랐지' 하며 뒤꽁무니를 내빼는 한심한 태도를 작가는 지적한다. 말하자면 극도의 무거움을 추구하는 주제에 한없이 얄팍한 존재들이란 것이다. 작중에 인용되는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공산주의 자체는 죄가 없다는 듯한 사비나의 대사가 그들에 대한 비판을 더 맵게 한다.
기본적으로 가벼움을 추구하면서도 연인 간에 있어서 만큼은 무거움을 쫓자는 작가의 생각이 제법 흥미롭다. 주인공 토마시는 시대의 무거움에 싫증을 내고 의사직을 내려놓게 된다. 그마저도 모자라, 자신의 호색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시골로 내려가서는 'Es muss sein'을 부정함으로써 완전히 가벼워지기에 이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테레자와 춤추며 했던 말들은 읽는 우리도 홀가분해지게 하는 듯하다. 이것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하지만 토마시가 테레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겁게 느껴진다. 토마시는 기고문을 쓴 시점부터 그녀를 더 애틋하게 여기게 되는데, 아무래도 오이디푸스의 태도를 보고 느낀 바가 있지는 않았을까? 테레자의 마음이라는 무거운 것을 떠안은 이상 이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처럼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와는 달리 그녀의 곁에 계속 있었던 것은 이 때문 아닐까? 작가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우리네 인생의 모순점에 있다. 덧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건 자유로움과 사랑이고, 가벼움을 통해 자유로움을 추구하되 사랑에 있어서는 무거움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인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이었던 YOLO(You Only Live Once)를 여러 번 강조하는 것 또한 재밌다. 다만 그 이름 속 함의가 조금 다른데, 보통 우리가 아는 YOLO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즐기자'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YOLO는 '리허설 없이 본공연만 있는 것이 꼭 우리 인생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 중요한 선택을 하다가 되돌이킬 수 없이 후회하는 우리의 나약함'을 나타내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으로 불안에 떨어본 적이 있어서인지 이 대목에 굉장히 공감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YOLO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있는데, 보통 우리는 인생이 한 번뿐이라서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온 반면 작가는 그렇기에 인생이 무용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볍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삼십여 년 전에 출판된 책임에도 이 대목의 신선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해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소설로써의 흡인력과 입체적인 캐릭터성 등이 훌륭하므로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굉장히 관념적인 소설이지만 설명이 친절한 편이어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다만 소설적이지 못한 부분이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배경 묘사를 최대한 자제했고, 사상을 대놓고 말하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없앴으며,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가 받았던 비판, 즉 문학 작품이라기보단 철학서 같은 느낌을 준다는 비판을 그대로 답습할 법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