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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Jun 05. 2024

요가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아

Day 59


괴롭다.


아침부터 마음이 괴로웠다.


지난 주말 2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났고 그간 못 만난 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었다. 서로 좋은 일 힘든 일 이야기하다 나를 조금 힘들게 했던, 하지만 꼭 겪어야 할 진통과도 같았던 이야기를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친구들에 대한 따스함 반, 무거운 이야기를 했던 나에 관한 후회 반으로 뒤섞였다.


오랜만에 만나서는 괜히 무거운 이야길 했나. 너무 간추려 이야기해서 어떤 부분에선 아이들이 오해를 가지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 마음이 눅눅해지려 하기에 엉덩이를 떼고,


요가를 갔다.


요가원에 가는 길에 나를 괴롭게 하는 이 감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슬픔’이었다.

나는 사람이 슬펐더랬다.





하타요가 시간이다. 하타요가는 기존의 빈야사, 아쉬탕가와 다르게 골반이나 기타 관절등의 가동 범위를 좀 더 넓게 쓰기를 요구하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끌고 간다. 처음 시작은 가볍게 가볍게, 기존에 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으로 이루어졌다.


‘요가하면서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하자. 슬픔을 가볍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했던 말들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내가 그것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아니다. 아예 다음부턴 나의 힘듦은 이렇게 요가를 하며 혼자 소화시키고 아끼는 사람들에겐 즐거운 이야기만 하는 게 좋겠다.’ 따위의 생각으로 오늘의 요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짐을 안고 살았다. 말할 곳이 없었고, 스스로가 다 소화를 시키며 살 수 있다 믿다가 결국엔 토해냈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친구라면. 친구 혼자 힘듦을 감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있을까? 친구가 힘든 얘기 하는 것을 만류하며 탓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나는 친구들이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같이 생각하고 궁리하고 답이 없을 땐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여행 가고 힘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더라. 아마, 그렇다면,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게 친구니까…


부끄러웠다. 나는 내 친구들을 믿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해 아직까지도 박하게 구는 건 아닌 건지.


부끄러웠다.


‘어라. 요가를 하면 괴로운 마음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진 않네. 하긴 애초에 그럴 리 없잖아. 설사 이곳에서 다 털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요가를 할 때뿐이지 내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고.’


맞다. 사실 요가원에 나설 때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요가가 나의 상황을 바꾸어주진 않을 거라고. 요가가 내 마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순 없다고. 요가를 가는 내 마음에게 달린 일이지 요가에게 달린 일은 아니라고.


그러다 별안간, 어처구니없게도 너무나도 쉬운 동작에서 뒤뚱거리며 고꾸라졌다.

갑자기 스스로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잠시 딴생각하느라 몸에 힘이 풀려 스르륵 고꾸라지는 자신에게 맥 빠지게도 웃음이 났다.


에고. 한두 번이냐. 다시 바로 잡아하면 되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



어?

… 괜찮아?


그래.. 괜찮아.


잠시 못나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고 잠시 무거워져도 괜찮아.

다시 웃는 얘기 하면 되니까. 즐거울 수 있으니까 괜찮아. 다시 또 어깨 펴고 씩씩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괜찮아.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아.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고 현명하게 살리란 건 욕심과도 같아. 나는 계속 어리석을 거고 실수할 거야. 누구나가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것에서 또 무언가를 배울 거고 실수해도 그뿐. 나는 계속해 나갈 거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다른 날 같으면 쉽게 좌절했을 텐데 요가를 하며 마음근육도 조금씩 탄력을 가지나 보다. 고꾸라져 낙담하는 게 아닌 한번 탁 풀리듯 웃으며 바로 자세를 가다듬는 내 모습에서 무언가를 배운 느낌이다. 그래. 나는 앞에서도 계속 기록을 했지만,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요가를 해오고 있다. 이 마음 그대로 인생에 대입하니 낙담할 이유가 없다. 그냥 내 실수에 한 번 웃고 다시 고쳐 앉아 또 나아가면 그만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인생. 지금 내가 요가를 대하는 마음처럼 실수해도 괜찮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 괜찮다는 마음으로. 잠시 그럴 수 있으니 천천히 다시 일어나 그냥 계속 나아가보자는 마음으로 살아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가가 모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다만, 요가를 하며 조금씩 몸으로 배우는 것들이 마음까지 뿌리 뻗어 나아가 나를 일으킨다. 나를 다독이고 처연하게 한다.


요가 선생님의

“다시, 제자리로.

테이블 자세로 돌아올게요.”


하는 말처럼.


인생 역시 고꾸라지고 못나 보이더라도 한 번 탁 웃고, 다시 나만의 안정된 낮은 자세를 찾아 거기서부터 또 차근차근 해 나아가면 되는, 그뿐인 일들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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