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호 Jun 23. 2024

내향인의 사정

Day 66


내가 다니는 동네 요가원엔 요가뿐만 아니라 줌바, 필라테스도 함께 수업 구성이 되어있다. 일주일에 오고 싶을 때 마이솔이나 기타 어려운 수련이 포함된 수업을 제외하고는 원하는 타임에 아무 때나 가도 된다. 하루에 두 번을 와도 되고 연달아 수업을 들어도 되는 시스템이다. 자신에게 맞는 수업을 찾아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애초에 요가가 배우고 싶어 등록을 했기에 아쉬탕가나 빈야사 수업 위주로 골라 가고 있고 오전시간과 저녁시간을 비교했을 때 오전이 좀 더 체력적인 여유가 있어 오전으로 가고 있다. 저녁시간에도 몇 번 가보았는데 초반부터 체력적으로 많이 무리가 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낮시간동안 많은 에너지를 쓰나 보다. 주로 오전 첫 타임이 내 하루 스케줄에 부담이 없기에 이 시간대로 가고 있고 다행히도 오전 첫 타임 대부분이 요가와 관련된 수업이다. 이렇게 첫 수업 한 달여 동안 이 시간, 저 시간을 다녀보며 나에게 적합한 시간대를 정했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시간에 의심 없이 다니고 있다. 나에게 맞는 루틴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요가원에 다니는 모든 회원님들이 나와 같진 않은가 보다. 아니면 내가 별종일까?

요가를 다닌 지 한 달 여가 되는 시점이었다. 여느 때처럼 요가 매트를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강사님으로부터 '다음 수업. 줌바는 안 들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말의 뉘앙스에서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연달아 수업을 듣는 분위기라는걸 느낄 수 있었고 고개를 들어 요가원 내부를 돌아보니 나와 몇몇 소수의 회원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남아 다음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

“아… 저는 아직 체력이 안되어서 연달아 듣기는 무리예요...”

무리다. 그땐 여전히 체력도 부족했고 요가도 벌벌대며 겨우 했던지라 나는 다음 수업까지 들으면 하루치 체력을 모조리 다 쓰고 오는 셈이 된다. 아무튼 이것이 내가 들었던 “줌바는 안 하세요?”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원장님께서 에둘러하셨다(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니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평소처럼 요가원에 들어서려고 주섬주섬 신발을 벗어 정리하고 있었다.

“혹시 이번에 바뀐 시간표 괜찮으세요?”

기존의 빈야사 요가가 오후시간대로 빠지고 그 시간대에 비트요가가 들어섰던 때였다.

"네네. 좋아요!"

“오전 첫 수업 빼고는 시간이 잘 안 나시죠?”

“아… 네.”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이 시간대에 오는 루틴이 저와 맞아서요. 하지만 스케줄 조정을 조금씩 하면 되니까 바꿀 여유는 있어요.라고 말하기가 너무 장황해서 그냥 저렇게만 대답해 버렸다.

“혹시 다음 시간표에 줌바가 오전 첫 타임에 오고 그다음에 아쉬탕가나 다른 요가를 넣는 거 괜찮으세요?”

“아… 네, 상관없어요! 제가 유도리있게 시간 조절해서 오면 되니까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시간표 편한 대로 짜세요!"

"그래요~^^ 저도 그냥 물어본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셔요!"


요가 매트를 펴고 앉았는데, 가만. 이거 약간 서로 배려가 지나치게 묻 대화들이 아닌가 싶어 괜히 멋쩍은 웃음이 났다. 질문의 이유가 어찌 되었건, ‘당신은 요가만 주로 듣는 사람이고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것 같아 보이는데, 혹시 줌바가 그 오전시간대를 차지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원장님은 그 많은 회원분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구나. 난 바뀐 시간표는 무리되는 스케줄만 아니면 그때그때 따라갈 수 있는 정도니까 너무 나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면 요 근래 나 같은 회원분들이 좀 계신가? 이래나 저래나 원장님도 신경 쓸게 많으시겠다. 차라리 시간표가 고정이 되어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나 내 일이 아니니 깊게 생각은 못 미쳤다.


나는 지금이 너무 좋다. 줌바가 싫은 게 아니다. 아예 내 관심 밖일 뿐... 예전에 직장 선배가 일을 때려치우고 줌바강사로 직업을 바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처음 줌바라는 단어를 들어 잠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검색으로 알아본 줌바는 매우 활기차고 신나는 춤과도 같은 운동이었던 것 같다. 적응만 잘하면 재밌어 보인다. 다만, 나 같은 극 I의 내향인들은 줌바처럼 활기찬 운동에 진입장벽이 높다. 파이팅 넘치게 외치며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어설픈 춤사위로 진땀을 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에너지가 털려나가는 기분이다. 심지어 나는 몸치라 삐걱거리며 이상한 몸짓을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하다. 물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진짜 시간이 안 난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요가인데 요가를 듣고 다음 수업 때 줌바까지 들으면 하루가 너무 빡빡하다. 해야 할 일과 벌여놓은 일은 산더미인데 이것들을 팽개치고 오전 시간 내내 운동을 할 순 없다… 또한 워낙 저질체력이라 하루의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오전 연달아 두 타임을 뛴다는 건 내겐 운동이 끝난 순간 오늘 하루를 마감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후를 살아갈 체력이 방전되었으므로 오늘 일정 모두 셔터 내립니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


요가원에 다닌 지 6개월 정도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또 다른 강사님께서 여쭈어 보신다.

“줌바 수업은 안 들으세요?”

“아… 네 시간이 안되어서요...”

“아… 시간이 안되셔서…”

“네…”


흐으아아. 이 정도 되니 결혼은 안 하세요? 둘째는 안 낳으세요? 와 동급의 질문이 될 것 같다… 저는 그냥 조용히 요가가 듣고 싶어요…

그냥 제가 듣고 싶은 거 들을게요… 제발 이 질문이 마지막이 되길 바라며… 흑흑.


다행인 건 아무도 다른 수업들을 들으라고 강요하지는 않는 단거다. 아마 이렇게 다들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며 자유롭게 누리고 있으니 너도 좋은 거 같이 하자는 의미였을 거다. 이런 형식이 이곳의 문화이기도 하고. 그러나… 저는 그저 지금은 겨우 찾은 이 루틴이 좋답니다.


그냥 이런 인간도 있구나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다음 요가시간에 뵙겠습니다!


나마스테……흑.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와 실패가 내 전부는 아니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