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오며
“내년에 캐나다로 발령이 날 것 같아 “
24년 달력이 두장 남아 있을 때였고 때마침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해 둔 연말 미국가족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리가 그 근처로 여행을 간다는 걸 아셨나? 이 가족은 준비가 되어 있으니 바로 보내도 되겠습니다.
누군가 남편의 이름을 두고 흐뭇하게 결제를 맞고 있는 것만 같다며 농담처럼 아직은 현실감이 없이 들었던 기억이다.
회사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최종 결재가 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므로
우선 봄까지는 이 사실은 우리 부부만 알고 있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어떠한 언급 없이 여행은 시작되었다.
* 예고편이 되어준 미국여행
사실 이 여행은 남편의 추억여행이기도 했다.
첫아이가 5~6학년쯤 되면 아빠 다니던 학교도 가보고 아빠 다니던 교회, 일하던 곳, 커피 리필이 가능해서 하루 종일 앉아 공부하던 카페, 아빠와 친구들이 함께 청춘의 회오리로부터 서로를 지키던 작은 아파트 등
20대였던 그 시절 아빠의 경로를 따라 걸어보는
일정. :)
내게도 이 여행은 특별했다. 연애시절부터 수 없이 듣던 공간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또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이들을 만나 저녁을 먹는 날들이 많았다. 우리 남편 낯선 땅에서 학비 벌어 다니던 어려운 시절 옆을 지켜주신 한 분 한 분이 그저 은인 같았다.
(이 사람 힘들 때 일으켜 주시고 응원해 주고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자세히 전하지는 못 했지만
그 마음으로 한분 한분에게 진심의 눈빛으로
감사를 드렸다.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오랜 추억과 일상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대화. 저 이야기가 가까운 미래에 내게도 비슷한 형체의 무엇을 만들어 준다는 건가
더 이상 설렘도 두려움도 아닌 가까이 닿으면 흩어져 버릴 것 같은 구름 같은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지는 여행이었다.
떠나오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가족인 줄만 알았는데 먼 나라까지 떠난 이들을 만나니
그들에게는 한국, 우리나라였다 ㅜ
내게는 40년을 넘게 공기와 같던 그 존재가 더욱 선명해진 채로 우리의 여행은 마침표를 찍었고,
그렇게 돌아온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회사에서 정식으로 발령장 소식을 접했다.
새해 다짐 새해 목표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시간은 이미 2025년 안에 놓여 있었다.
해외이사의 목록을 찾아 노트에 적어두고, 부동산에 집 내놓기 한 줄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겼다.
예상외로 집이 빨리 나가자 출국날짜를 가늠해 보고, 해외이사업체를 선정하고
무수히 쌓인 추억들이 정리 명단에 올랐다.
신혼 때부터 함께 해오던 가구 몇 개도 이때 정리했다.
아이들 옷과 책, 장난감등을 지인들에게 나누며
내가 먼 나라로 떠난다는 주제 안에서 몽글몽글 해 지는 시간들 아쉬운 마음을 쓸어 담기도 전에
집에 오면 다시 현실이라
아이들 저녁을 차리고 빨래를 돌렸다.
어떤 날은 정신이 번쩍 들어 대담하게 정리를 하고선 버려지는 짐들 보며 후련했지만 또 어떤 날에는 아쉬워서 마음이 동동 거리던 날들도 지나갔다
틈나는 대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아쉬운 마음은 마주하고 앉아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자리로 계속 나를 이끌었다.
“그때 그랬지.. 그래었지.. 아 그랬었다..”
새록새록 기억이 한 움큼 쌓이다 보니
추억이 단단하게 나를 지탱 해 주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잘 해낼 거야!
비로소 그 말이 쿠션처럼 포근히 안겨지던 날.
따. 뜻. 해 봄이 되었다.
4월 말이었고, 5학년이던 아들과
어린이집을 다니던 6살 딸과 함께
우리 가족. 얼마 전 다녀온 미국여행을 가듯
또 그렇게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먼 곳으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옮겨심기. 그 이유는 또렷이 하나다.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시키기 위해.
식물 키우며 익숙하던 그 말을 나 자신과
가족들을 바라보며
그래! 이제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