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캐나다 입국


공항 입국심사의 대기 줄

다양한 인종, 가족의 형태가 그곳에 있었다.

각자가 지닌 사연이나, 국가,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곳, 어떤 사연이든 묘하게 하나의 키워드를 향해 있었다.


새로움. 처음이라는 관문을 통과 한 우리는

다시 5시간의 낯선 풍경을 달려 캐나다의 최남단 도시에 안전하게 도착되었다.


며칠간은 에어비엔비 숙소에 머물며 관공서 행정처리등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출동하는 일이 잦았다.

역시 여긴 한국이 아니야. 느릿느릿한 프로세스 앞에 긴장된 채로 무한대기 내가 정말 이곳에 이사를 온 거구나 이건 여행의 범위를 크게 넘어선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자동차, 핸드폰, 은행 계좌개설, 헬스카드,

운전면허증 같은 것들이 하나씩 손에 만져지며

조금씩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5월 1일. 남편이 출국 전 미리 출장을 가서 계약해둔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살림이라곤 비행기로 함께 날아온 이민가방 2개와 캐리어 3개 안에 들어있던 게 전부였고,

지하, 1층, 2층 꽤 넓어진 공간 이었지만, 우리는 방 한 칸을 골라 얻어온 에어매트리스를 깔고 누우며 하우스 캠핑 같다며 함께 웃었다 ^^


나무 바닥이긴 하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아직 차가운 날씨였다.

지하 한켠에 주인 가족이 두고 가신 소파를 발견, 무거워서 옮기지는 못하고

결국 안장만 여러 개 뜯어와 방석 겸 깔아 두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거실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물건이 없으니 저절로 심플하다.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오고 있는 그 많은 박스들이 과연 정말 다 필요한 걸까? 그렇게 버리고 나누고 줄인 짐들인데도 컨테이너를 꽉 채워 오고 있는 살림들이 버거운 짐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나는 이때를 은근히 즐긴 사람 ㅎ


그래도 그 짐들 오면 그렇게 또 반가워요~

이 참에 심플한 삶에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남편 회사 선배가 해준 말인데,

과연, 선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2달 반 만에 다시 만난 살림들이 다시 누울 곳을 찾아 배정되었다. 침대가 있는 침실. 소파가 있는 거실,

책상이 있는 아이방, 식탁이 있는 주방의 편리함까지 모두 찾고 보니 잠시나마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던 이는백기를 든다. 아 이건 다시 잃고 싶지 않은 편안함이야~ ^^


동시에 계속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채워나가기 바빴던시간이기도 하다.

당장 끼니를 챙기며 밥을 해야 하기에 샀던 만능찜솥부터 어두운 실내에 놓아 둘 스탠드, 110 볼트용 헤어드라이기, 무선청소기, 커피머신, 식기, 도시락통, 물통, 침구류 아이들 신발, 정원용 슬리퍼, 주방 조리기구등

퇴근하는 남편이 오는 시간에 맞춰 다 같이 마트

도장 깨기가 몇주동안 아니 몇달 동안 이어졌다.ㅋ


사실, 브런치를 개설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불편할 수 있었던 시간이였지만 그랬기에 또한 누릴 수 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6개월이 흘러 어느새 이 집이 익숙해져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돌아가자면,


그때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새 집이라 숨바꼭질 놀이를 진심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나도 그때 함께 숨으면서 이 공간 저공 간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공간의 크기를 더 자세히 가늠 할 수 있게 되기도 ㅎ

이런저런 물건이 들어있던 큰 박스 상자들이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어 키즈룸으로 변신하기도 했고

큰아이는 상자에 주사위 보드게임을 멋지게 만들어 5살 동생에게 보드게임을 입문시켜 주었다.


한국 음악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는 아이들과 같이 바운스를 맞추며 집을 빙빙 뛰어다니던 시간도 잊지 못한다.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로 시작된 장난감 놀이 같던 주방, 하루 세끼 나란히 앉아 맛있게 먹어주던 남매샷을 매일매일 볼 수 있었던 시간,

마당이 생겼으니 물감놀이는 야외에서 언제든 환영이었다.


적다 보니 하루 종일 붙어 있어 토닥거리며 진땀 나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지 ㅎ

적응하느라 뭉치 뭉치 뭉쳐두기만 했던 실뭉치를 건들리자 행복한 순간들이 술술 풀어져 나온다.


오랜 시간 붙어 있게 되자 아이들의 어긋남 앞에 바로바로 다그치기 바빴던 날도,

적응한다고 분주한 마음만큼이나 나 조차도 선을 넘고 마음이 곤두박질치던 날도 수 없이 많았는데

기억과 글쓰기는 다르게 펼쳐지는 게 신기하다.

사랑이라는 포근한 햇살 아래 그 정도는 고개를 숙여지는 걸까

쓰는 일이 이런 거구나 이렇게 온전히 사랑만 남아서 내 마음에 가벼이 다시 넣어두게 하는 힘.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랑은 오래 남아 줄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써볼 일이다.


ps. 다음 편은 해외살이 [캐나다에서 만난 이웃 이야기] 제목 정해두고 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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