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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Aug 18. 2024

연재를 마치며: 못다 한 이야기, 그 후

22. 감사드립니다

지난 3월 17일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매주 일요일 인사드렸《나는 자랑스러운 컨벤션기획사》5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애정이 컸던 만큼 그립기도 한 일이었는데 작가라는 타이틀을 준 브런치 덕분에 첫 번째 연재작으로 남기게 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흔히 말하는 흙수저로 태어난 제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던  컨벤션기획사로 살았던 11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동안 총 59개의 행사를 하며 네 번의 정부 표창과 세 번의 감사서한을 받았습니다. 캐나다에 온 후 영주권을 받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울기도 했지만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의 독한 말들이 저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컨벤션 일을 하는 동안 저는 늘 복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갖게 된 것도, 정석을 밟아가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굵직한 행사에 여러 번 참여한 것도, 유의미한 공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요. 인연의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회사를 떠난 후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며 오랫동안 함께 해 준 클라이언트들과 직원들을 만났고 경력에 꽃을 피웠습니다. 두 번째 회사를 나온 후에는 대규모 국가적 행사의 일원이라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그때의 영광과 감동이 있었어요. 기억 속에 그리고 외장하드에 남아있던 행사기록을 꺼내 브런치북에 담는 지난 몇 달간 다시 자랑스러운 컨벤션기획사가 되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자랑스러운 컨벤션기획사》를 함께 해 주신 많은 작가님들, 브런치마을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연재를 마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셨어요. 생소한 컨벤션 이야기에 함께 하며 응원과 격려의 말씀 나눠주신 많은 분, 아픈 시간들을 들춰냈을 때 공감해 주고 주저 없이 지혜와 위안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당분간은 《랜딩 1년 후, 캐나다 공무원에 랜딩하다》 연재단풍국 이야기 계속 찾아뵙겠습니다.

감사드려요♡




못다 한 이야기, 그 후



2002 월드컵 영웅들

내가 축구광이 된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다. 우리나라와 아무 관계도 없는 유로 2000을 밤새워 보면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손꼽아 기다렸다. 2002 월드컵은 주최국인 이유도 있지만 한국이 4강까지 오르며 어느 때보다 뜨거운 월드컵이었다.

월드컵 기간, 나는 정보통신부와 시리즈 행사를 하고 있었다. 실무회의를 거쳐 장관회의로 이어지는 행사였다. 덕분에 월드컵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당시 사무실이 서대문에 있었는데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붉은 악마의 행렬이 충정로를 관통해 광화문까지 빼곡히 이어졌다. 야근을 하는 중에 밖에서 경적이 울리고 붉은 악마의 함성과 팡파르 소리가 들릴 때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참기가 어려웠다. 이런 아쉬움을 알았는지 월드컵 영웅들을 만나게 되었다.

2005년 호텔에서 일주일간 행사를 하고 있던 중 A매치가 있었다. 월드컵 영웅들이 다시 모였고 그 호텔에서 투숙을 했다. 행사 사무국 옆 연회장이 선수들의 식사 장소이자 메인 집결지였다. 문을 열어둔 사무국 앞에 박지성, 안정환, 이동국, 이영표, 차두리, 김남일, 설기현,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선수 등 월드컵 영웅들이 매일 진을 치고 있었다. 일에 집중하기가 참으로 힘든 행복한 순간이었다.


대통령 행사 중 일화

대통령 행사에서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특히 보안유지는 철저해야 한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VIP의 위치가 노출될 정보들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사 자료들도 모두 대외비로 관리한다.

대통령 행사가 진행되던 중 경호관이 나에게 자료를 맡겨두고 경호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적이 있다. 마침 나도 행사 식순이 넘어가는 시기라 확인해 줄 것이 있어 정말 잠깐 일어났다 돌아온 사이 누군가 나와 경호관이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 행사 중에는 이동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경호관의 자료가 사라졌다. 자료에는 행사 계획뿐 아니라 청와대 내부 구조, VIP의 이동 동선과 경호계획이 담겨있었다. 자료를 놔두고 자리를 비운건 나였기 때문에 분실에 대한 자책으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경호관이 그 사람에게 자료를 보지 못했는지 물으니 '모른다'라고 답했다. 뭔가 불편했는지 그 사람은 자세를 고쳐 잡았고 그 순간 무릎 위에 놓여있던 책 사이에서 살짝 삐져나온 무언가가 보였다. 경호 자료임을 확신한 내가 귀띔을 하자 경호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고 조용하고 날렵하게 그 사람을 제압했다.

"당신 누구야?"

"기자..입니다."

"어느 소속"

다행히 자료는 회수되었고 늘 젠틀한 모습만 보던 경호관이 짧은 순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대통령 경호의 무게감을 느꼈다. 기자정신은 이해하지만 국가원수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자료를 취하려 했던 그 기자님! 다시는 그러지 마시기를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선물도 외교

행사를 준비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수많은 일 중 하나가 선물이다. 선물이 고위급 인사를 위한 것일 때는 더욱 신중하다. 개인의 취향을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정서나 역사적 배경, 국가 주력산업까지 고려해 선물을 정한다.

세계검찰총장회의』를 할 당시 어느 나라 대표단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왔다. 우리 측 초청레터를 갖고 입국했는데 출입국관리소에서 신원확인을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유는 '장도'를 선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문 이름이 새겨진 장도를 고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다 적발된 것이다.



일본에는 무사계급인 사무라이에게 내려지던 사형제로 할복이 있었다. 명예로운 죽음을 명하며 칼을 하사했다. 이런 배경으로 일본인에게 하다못해 작은 은장도라도 '칼'을 선물하는 것은 을 의미하거나 할복문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비쳐 굉장한 외교적 결례다. 실제 사례가 있다.


위치가 주는 사람의 아우라

사람은 위치에 따라 소위 '아우라'가 달라진다.

서울시를 책임지던 이명박 시장과 대한민국을 지휘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우라가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던 문재인 비서실장을 대통령이 된 후 만났다면 그때 느끼지 못한 아우리를 느꼈을 것이다. 호텔 행사 중 마주친  클린턴이 현역 대통령이었다면 아무리 빨간 양말에 체크무늬 반바지를 입고 있더라도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행사를 하며 본 유명인사 중 가장 강력한 아우라를 풍긴 건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었다. 그 작은 키에서 품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하면서 만난 헌재소장(삼부요인으로 대통령에 버금가는 경호대상)은 대통령과는 다른 종류의 아우라였다. 권력자의 힘보다는 법령의 합헌성을 심판하는 기관 수장으로서의 근엄한 카리스마였다. 왠지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될 것 같은 공경심이 절로 들었다.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사진찍는 손마저 흔들렸다


내가 만난 가장 오만한 사람

모 대학 교수와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이 교수의 형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다. 형의 유명세를 등에 업은 자만함인지 아니면 형만큼 유명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밟아야 하는 인격을 가졌다. 이유가 없다. 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짓밟는 게 일이고 전화 통화도 소리만 지르다 혼자 끊어버리는 매너조차 좋지 않은 사람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 행사를 왜 한다고 했나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 다.

이 교수는 예산을 아끼려고 제자들을 행사에 투입했다. 현장 운영요원도 모두 제자들이었다. 논문심사에 묶여 이 교수 아래에 있던 학부생을 포함한 대학원생들 모두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번 욕설을 퍼부었다. 나와 우리 직원들도 똑같이 당하니 제자들과 동지애가 생겼다. 교수가 난리를 치고 나면 학생들이 와서 매번 뒷수습을 하고 우리를 달래줬다.

행사 예산을 아끼려고 현장에서 현수막을 돌려썼다. 이건 흔한 일이다. 세션이 끝나고 현수막을 다른 행사장에 달아야 는데 호텔 직원이 떼내는 과정에서 현수막이 흘러내렸다. 당시 그 자리에는 <3년간의 여정, 의미 있는 성취> 편에서 소개한 학술행사의 조직위원장이 있었다. 조직위원장과 친분이 있던 오만한 교수는 내가 그분과 행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수막이 흘러내린 걸 이유삼아 소리를 지르며 난리에 난리를 쳤다. 무슨 좋은 걸 먹길래 그리 소리를 지르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후 학술행사 정례회의에서 그 교수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조직위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다.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사람에 대한 평판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만난 교수님

나를 컨벤션업계에 추천해 준 교수님과 소식이 끊긴 후 수소문을 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생각지 못하게 교수님을 마주친 곳은 입찰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였다. 피티를 하던 중 귀에 익은 목소리의 여자분이 질문을 해왔다. 자세히 보니 교수님이었다. 나의 피티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되어 다시 만났다.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바라봐주시는 교수님 앞에서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내 마음과 달리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인자한 미소에는 그렇게 고집부리던 아이가 꿋꿋이 업계를 지키며 어느덧 행사 책임자로 피티를 한다는 대견함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 회사의 운명, 그들의 이야기

회사를 그렇게 나오게 된 후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도 잘못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건 속이 쓰릴 것이며 그래도 5년간 몸담은 회사인데 잘못된다면 그것 역시 씁쓸한 일이 될 것이었다.

회사는 무리하게 확장을 계속해 나갔다. 확장을 하며 다른 회사까지 흡수해 종합대행사로 도약하는 듯했다. 지방에 지사도 냈다. 이사는 지사장이 되었고 컨벤션사업부장은 이사가 되어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회사를 망하게 한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회사는 결국 폐업의 길을 걸었다.


세계검찰총장회의, 그 후

현장을 마무리하지 못한 세계검찰총장회의 내내 마음에 걸리는 행사로 남았지만 6개월간 이어진 장기전에 힘든 과정을 알고 있던 준비기획단은 미안해하며 회복을 걱정해 주었다.

행사가 끝나고 검찰총장은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를 저녁에 초대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식당이었다. 일을 하며 감사히도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회원제 식당은 처음이라 기대가 됐다. 하지만 저녁이 예정된 날 오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갈등을 빚던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발표를 했다.

저녁은 없던 일이 되었고 그해 청와대에서 추석 선물세트가 고향집으로 왔다. 대통령에게 명절 선물을 받다니.. 장손도 하지 못한 가문의 영광이었다.



『세계검찰총장회의』를 하며 지친 몸은 회복이 되지 않았다. 이후 핵안보정상회의를 포함해 6개의 프로젝트를 더 했다. 지방 행사를 하며 외부 회의와 출장이 잦았고 그 과정에서 번아웃은 악화되었다. 결국 11년을 가득 채우고 경력 12년 차에 나는 컨벤션기획사로서의 임무에 마침표를 찍었다.


천상 컨벤션기획사

캐나다에서 구직을 하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관한 세션을 들었다. 그때 MBTI와 직업적성검사를 했다.

MBTI 결과를 받은 나는 웃음이 났다. 인티제의 사랑법을 연재하고 계시는 류귀복 작가님에 의하면 인티제(INTJ) 인류의 2%밖에 되지 않는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인티제 여자는 0.8%라고 하는데 내가 그중 하나다. 인티제의 특성이 말하는 나는 컨벤션 일이 천직이었다.

직업적성검사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1순위로 나온 직업이 '컨벤션기획사'였기 때문이다. 컨벤션기획사가  알려진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천상 컨벤션기획사였다.


컨벤션기획사를 꿈꾸는 분들

국제행사는 외교의 장이다. 의전은 고위급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사소한 일이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참가자들에 대한 모든 요소가 의전이 된다. 따라서 국제회의를 담당하는 컨벤션기획사는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현장까지 외교관의 마인드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성격적 특성과 마인드가 컨벤션기획사와 맞고 이 직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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