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했다. "사람과 산이 서로 만날 때 위대한 일이 벌어진다. 도시의 평범한 삶 속에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후 평화적 회담을 제안하며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말한다. "정상(summit)에서 만납시다."
이로부터 'Summit'이 '정상회담'을 뜻하는 외교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프라하 연설을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핵무기감축,' '핵확산방지'와 함께 '핵안보'를 3대 전략 목표로 제시하며 핵안보정상회의를 제안했다. 이어 2010년 4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1차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게 2차 대회의 의장국이 되어줄 것을 제안했다. 47개 국가 정상이 참여한 자리에서 이루어진 이 영광스러운 제안은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이끄는중심 국가의 하나로한국도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또 한 번 바꾼 행사가 2012년 서울에서 열렸다.
2012 핵안보정상회의
2012 Seoul Nuclear Security Summit
2012년 3월, 53개국(아시아 14개국, 유럽 23개국, 중동 7개국, 아메리카 6개국, 아프리카 3개국) 정상 및 4개 국제기구(UN, IAEA, EU, INTERPOL) 대표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 참가국 및 국제기구 대표 이외 수행원 6천 명, 경호원 7백 명, 외신 기자단 3천 명 등 행사에 직접 관련된 인원만 만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53개국은 유엔 회원국 182개국의 30%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제규모는 전 세계 GDP의 94%, 전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한다.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는 참가국 규모가 G20 정상회의의 두배로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상회의로 남아있다.
각국 정상들의 특별기 수십대가 인천공항, 김포공항, 서울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 정상을 포함한 회의 참가자의 편의를 위해 인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에는 전용출입국심사대 30대가 별도 운영되었다.
각국 정상과 배우자, 수행원들이 이용할 의전차량만369대가 제공됐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정상들의 의전과 경호를 위해 에쿠스 리무진을 비롯해 에쿠스 세단, 스타렉스, 모하비 등 총 260대를 의전차량으로 지원했다. BMW코리아 역시 정상 배우자와 각료용 의전차량 109대를 제공했다. 각국 정상과 수행원들이 탑승하는 차량을 운행하는 운전요원만 400여 명으로 사상 최대규모였다.
대학생, 공무원, 교직원, 회사원, 자영업자, 군인, 외국인 등 750여 명이 민간외교관이 되었다. 이 자원봉사자들은 회의 지원, 국별 의전연락관 지원, 미디어 지원, 명예 e리포터 등으로 활동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3만 6천여 명의 경찰병력이 경호안전, 대테러, 집회시위, 교통관리 등에 투입되었다. 회의장 주변을 포함해 백화점, 지하철, 영화관 등 테러 취약시설에도 군과 경찰 5천여 명이 배치되었다. 행사장인 서울 코엑스 주변에는 3중 경호벽이 설치되었고 행사일인 3월 26일 0시부터 27일 오후 10시까지 일반인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G20 정상회의 개최 경험이 생생히 남아있던 시기에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우리는 보다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었다. G20과 마찬가지로 나는'미디어센터' 운영과 '국가정상 브리핑'을 맡았다. 이미 경험했던 업무라 큰 어려움 없이 준비가 이루어졌고 오히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보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볼거리도 많은 행사'가되었다. 행사 직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아 회의장을 비롯한 정상 공간과 미디어센터 등의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기자단 업무공간
G20 미디어센터 때보다 기자단 업무공간의 조도를 낮췄다. 전체적으로 어두워진 기사작성공간에는 한지로 제작한 테이블 스탠드를 일정하게 배치해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행사 종료 후 희망자에게는 한지 스탠드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기자단에게 제공된 지원서비스 역시 다양해졌다. 참가국이 많아진만큼 보다 다양한 언어 서비스가 제공됐다. 현장 기술지원을 위해 컴퓨터, 통신, 장비, 전기 등의 전문기술지원팀이 현장에 배치됐다. 테이블마다 테크니션을 호출할 수 있는 버튼을 설치해 기자단 개인 노트북 및 전기, 통신에 이상이 발생하였을 때 즉각적인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브리핑존
기자단 업무공간에 조성된 브리핑존에서는 핵안보에 대한 정책과 노력뿐만 아니라 한류, 녹색정책, 남북관계 등 한국의 현황과 문화 콘텐츠를 보다 폭넓게 알리기 위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정상회의에 대한 질의응답 세션을 비롯해 회의 중간 대변인의 경과 브리핑,정상 브리핑을 제외한 국가 간 공동성명 발표 등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국제방송센터
미디어센터 한편에는 본국에 송출할 뉴스 편집과 사무를 위해 방송사별로 배정된 부스가 세워진 국제방송센터가 조성됐다.
국별 정상 브리핑
의장국인 한국과 미국 정상 브리핑은 오디토리움에서 진행됐다. 이 두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정상 브리핑을 위한 별도의 6개 브리핑룸이있었다. G20과 다르게 이번엔 브리핑 국가로 생중계가 가능하도록 했다.
뜨거운 취재 현장
기자들의 역할은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크다. 누군가는 묻히길 바랐던 감춰진 진실이 수십 년이 지나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전쟁터의 참상이 기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지구촌 곳곳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것도 기자의 역할이다. 미디어센터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치열한 취재 열기를 보았다.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리포팅과 인터뷰 모습뿐만 아니라 영상 편집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뜨거운 열기가 행사 기간 내내 이어졌다.
다양해진 한국체험행사
핵안보 행사에서는 홍보관 운영뿐 아니라 체험행사가 강화되었다. 한국의 IT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시설이 미디어센터 내 곳곳에 설치되었고 미디어 휴게공간, 식사공간 주변으로 한글로 이름써주기,K-POP, 전통춤, 전통의상, 의료서비스, 한식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기관의 참여로 알차게 들어섰다.
미디어 라운지
다양해진 콘텐츠와 미디어센터 기능의 확대로 보다 많은 공간이 필요했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디어 식사 공간은 코엑스 1층 로비에 가벽을 두르고 마련되었다. 점심과 저녁은 채식 메뉴를 포함한 뷔페로 제공되었고 고구마케이크나 식혜, 수정과, 오미자차를 디저트에 포함했다. 아침과 야식으로는 세 종류의 샌드위치가 제공됐다.
기자업무공간과 가까운 곳에는 상시 이용할 수 있는 스낵코너와 무인다과대를 두었다. 커피, 마카롱, 쿠키, 빵을 비롯해 한국의 다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방차, 약과, 떡이 기업의 지원으로 상시 준비되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국가행사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해 다양한 사전, 사후 행사가 열렸다. 기업과 국민의 지원으로 치러낸 G20정상회의가 있었다면 핵안보정상회의는 국민이 함께하는 '참여형' 행사였다.
행사 전 '로고 공모'와 '슬로건 공모'가 있었다. 로고 공모에 총 533개, 슬로건에는 2,025작이 접수되었고 3차에 걸친 심사를 거쳐 각 8개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의 로고는 Seoul(서울), Security(안보), Summit(정상회의)의 영어 알파벳 ‘에스(S)'자 형상을 태극느낌으로살리고 원자핵의 운동을 물의 흐름처럼 순화시켜 핵의 안전과 평화적 이용 의지를 반영한 작품이 선정되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2012 핵안보정상회의 로고
전 세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평화 미술전'도 열렸다. 국내와 50여 개 정상회의 참가국 어린이들에게 핵테러 없는 안전한 세계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국내 공모전에 출품된 총 5,474개 작품 중 138명의 입상자에 대한 시상이 행사 전 진행됐다. 국내 수상작은 해외 어린이 작품과 함께 정상회의 현장에전시되었고 이후 지하철 역사 등 전국 다중이용시설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어린이 평화 미술전 수상작 (사진 출처: 에너지경제)
이외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 공모전,' 대학생 '논문공모전'이 있었고'모의 핵안보정상회의'가 대학 캠퍼스에서 열리기도 했다. 홍보대사였던 가수 박정현과 함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피스송(peace song) 공모행사'도 있었다.
행사 전 코엑스 밀레니엄광장에는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위시트리'가 설치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시민들이 직접 소망메시지를 적어 나무에 걸어두는 행사였다. 이 위시트리는 행사기간 중 미디어센터로 옮겨졌고 국내외 참가자들의 소망메시지로 이어졌다.
위시트리에 걸린 시민들의 소망
달라진 국가 위상만큼 마무리도 달랐던 핵안보정상회의
행사가 끝나고 바로 철거되는 현장을 보는 것만큼 허무한 일이 없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제행사 개최수가 많아지고 정상회의가 연이어 열리며 시민들이 행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을 행사관계자가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행사장을 보존한 사례도 있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장이다.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위치한 누리마루는 APEC 정상회의를 위해 지어진 장소다. 현재도 정상회의장배치를 보존한 채 명패, 통역수신기 등 당시 현장에서 사용된 물품들뿐만 아니라 정상과 배우자에게 제공된 수교물까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핵안보정상회의 종료 후 현장은 바로 철거되지 않고'역사적 현장체험전'으로 이어져 국민들에게 장소를 공개했다. 일회성 장소를 조금 더 의미 있게 활용한 한 단계 진화한 시도였다.
정상 영접이 이루어졌던 곳과 단체 사진촬영이 있었던 오디토리움
어린이 평화 미술전 수상작 전시
지구촌이라는 단어 자체가 뜻하듯 이제세계는 하나로 움직인다.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기업 간 협력이 필요하듯 국가 경영에도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 그 중요성은 점차 확대될 것이며 이에 따라 컨벤션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1921년 에베레스트 첫 등반에 실패한 후 조지 맬러리는 이런 글을 남겼다.
“세계 최고봉은 너무나도 준엄하다. 그 준엄함은 너무나 무섭고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등반에 나서기 전에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전율하게 될 것이다.”
그는 1922년 에베레스트에 다시 도전했고, 1924년 3차 도전에 나섰다. 기자가 왜 자꾸 도전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말했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왜?"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때아닌 폭설을 맞는다 해도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가는 것처럼,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