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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l 21. 2024

부산어묵과 비비크림의 국위선양

18. 나는 컨벤션기획사다

빛이 보이지 않는 긴 암흑의 터널을 걸으며 또다시 닥칠 시련을 맞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고 있 중 코엑스 컨벤션팀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전문 컨벤션기획사로서 코엑스와 함께 갈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하며 몇 달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부터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부산. 부산이었다. 친구가 보고 싶었다. 부산 행사라는 것만으로 코엑스와 손을 잡을 이유는 충분했다.


행사는 11월에 열리는 아세안+3 재무차관•중앙은행부총재회의였다. 바로 일을 시작한 나는 행사장 답사와 현장 담당 지배인 미팅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 단 한번 내려갔었다. 친구가 남긴 유품 몇 가지를 받아온 후 부산에 가보지 못했다. 내가 온 걸 알기라도 하듯 여름 햇살에 고요히 반짝이던 바다가 렁이며 거친 파도를 만들어낸다.


아세안+3(ASEAN+3)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과 한국, 일본, 중국이 1998년 설립한 국제회의체로 주로 금융•경제 문제에 대한 상호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지역기구다. (출처: 한경경제용어사전)

 

답사를 마치고 온 후 행사 준비를 하며 나는 조금씩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사무실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전 회사 이사와 마주쳤다. 잊지 못할 퇴직을 안겨준 사람 중 한 명이다. 코엑스 사무실 앞에서 나를 마주치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이사가 말을 더듬으며 묻는.

"어..? 어.. 블리야 팀장.. 여긴.. 웬일이야~?"


내 목에 걸린 사진이 인쇄된 코엑스 출입증 카드를 내려다본 이사는 당황하며 경상도 억양으로 말을 이어간다.
"아.. 여기서 일하나?"

"네. 여긴 무슨 일이세요?"

"어.. 미팅이 있어서 전시팀장님 만나러 왔다."

"들어오세요."


"저쪽이 전시팀이에요."


전시팀 위치만 알려준 채 난 곧바로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지나가는 이사가 붉어진 얼굴로 내 책상 위에 놓인 '컨벤션팀 차장 블리야'라 쓰인 명패를 슬쩍 바라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전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찾아왔다. 코엑스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마주하고 있으니 반가움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다시 몰려온다.

"팀장님. 저 회사 그만두게 됐어요.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이 일 할 수 있도록 팀장님이 뽑아주고 가르쳐주셨는데, 인사하고 가고 싶었어요."


늘 생글생글 웃으며 실수를 해도 주눅 한번 들지 않고 "몰라요~ 팀장님 미워요~"하며 다시 앉아 일을 하던 직원. 한 번도 "네"란 대답을 망설이는 법이 없던 예쁜 직원이었다.

다른 이유도 아닌 사내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업계를 떠나는 직원의 마지막을 보는 일은 쓸쓸했다.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그래서 "그동안 수고 많았어"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렸다.


그해 여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고 있었다. 점차 퍼져가는 신종플루로 국제행사들도 줄줄이 타격을 받았다. 내가 투입된 건 아니었지만 우리 팀 다른 직원들이 진행하던 7월 세계합창대회위해 입국한 세계 각지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감염자가 연이어 나왔다. 행사는 이미 시작됐지만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자 '행사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직원들에게 행사 취소는 날벼락같은 소식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에 해당하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내려가 있던 직원들은 행사가 취소되었음에도 서울로 올라오지 못하고 지방에 그대로 발이 묶인 채 격리되었다.




아세안+3 재무차관•중앙은행부총재회의는 참석 대상이 정해져 있고 대규모 행사가 아니어서 별도 행사 웹사이트를 만들지 않았다. 오프라인으로 참가등록을 받으며 입출국 일정, 원하는 객실 타입, 동반자 유무, 특이 식성 등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양식을 만들었다. 접수된 등록신청서를 토대로 객실 예약을 하고 김해공항에서부터 조선호텔까지 의전계획을 세웠다.


국제행사를 할 때 의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식단 구성이다. 애피타이저에서부터 메인, 디저트, 그리고 주류가 나갈 경우 종류와 브랜드까지 식사의 전체적인 조화와 지역의 계절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메뉴를 구성한다. 특히 정찬이 여러 번 나가는 경우에는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한다. 이번 행사처럼 동남아 국가가 많이 참석할 때는 종교적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찬이 나가는 환영만찬과 환송만찬은 일반 메뉴와 더불어 할랄, 해산물, 채식 메뉴 등 각각 4가지의 식단을 짰다. 오찬은 뷔페로 정하면서 모든 식단이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할랄은 별도 섹션을 만들었다.


*할랄(Halal): 이슬람 식품 법규에 따라 제조된 음식이나 상품. 육류의 경우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신속하고 고통 없이 도살되고 위생조건을 준수해 가공된 제품으로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신종플루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행사날이 다가왔다. 현장에 발열감지 카메라를 설치하고 회의 참가자의 안전을 위해 부산광역시경찰청에 현장 지원을 요청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재무차관, 중앙은행 부총재, 아시아개발은행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현장에 도착해 등록을 마친 첫째 날 오후부터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에서 다룰 안건들은 문서실에서 생산되어 회의장에 전달되었다. 첫날부터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역내 협력방안을 모색하지만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의는 시종 진지하게 진행됐다.


발언권 관리시스템이 따로 없는 국제회의에서 발언을 원할 경우에는 사진처럼 명패를 세워두고 좌장이 발언권을 줄 때까지 기다린다.


별도 관광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았던 행사라 환송만찬 전 유람선에서 부산의 야경을 배경으로 간단한 리셉션을 하기로 했다. 2박 3일간 빠듯한 일정으로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는 손님들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건 아쉬웠다.


11월 말이라 바다 바람이 걱정되었다. 선상에서 덮을 수 있는 담요를 준비하고 부산의 명물인 부산어묵을 유람선에서 제공했다. 어묵을 이런 국제행사에서 제공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진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며 꼬치를 하나씩 집어 들고 어묵 국물을 즐기는 참가자들을 보니 흐뭇했다.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부산에서 행사를 하니 부산어묵이 효자노릇을 한다.



부산어묵과 함께 한 유람선 투어를 마친 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에서 환송만찬이 이어졌다. 만찬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한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음악, 드라마 이야기로 뜨거워진 한류 열기에 '한국인들은 모두 예쁘다'는 참가자들의 멘트가 이어지자 기획재정부 차관님이 'M사 비비크림'을 선물로 쏘겠다는 즉흥 공약을 하셨다.


차관님의 공약이 있었으니 내가 할 일은 실행이다. 수량이 많아 한 곳에서 구매하기가 불가능했다. 해운대에 있는 모든 M사 매장에 전화를 돌렸다. 예약을 해 둔 뒤 직원이 직접 가 해운대에 있던 비비크림을 모두 끌어모았다. 다음날이 행사 마지막 날이라 그날밤 선물 포장을 모두 마쳤다. 사촌동생들 머리를 따주던 야문 손끝이 선물 포장에서 빛을 발했다.


다음날 아침 회의 시작 전 참석자 테이블에는 포장된 비비크림이 하나씩 놓였다. 선물을 받은 여성 참가자들은 회의기간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와이프에게 한국의 비비크림을 선물로 안길 남성 참가자들은 어느 값진 선물보다 더 기뻐했다.


부산어묵과 비비크림의 국위선양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주최기관이었던 기획재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부상은 없지만 나의 일에 대해 국가가 인정해 주는 것이니 이보다 명예롭고 값진 결과는 없을 것이다.


상을 받은 후 표창장에 담긴 내용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누군가가 정성껏 글자씩 눌러쓴 내 이름이 적힌 상장의 내용은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었다.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돌아온 나를 인정해 준 상장을 앞에 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일이 나를 흔들어도 결국 나는 일로 돌아왔다. 일에 집중하며 살아있음에 책임을 느끼고 내가 여전히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나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컨벤션기획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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