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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l 28. 2024

온 나라가 만들어낸 G20 정상회의

19. 컨벤션 역사를 바꾼 외교행사

2010년 대한민국에서는 역사적인 외교행사가 열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가의 대통령 및 총리, 국제기구 수장이 'G20 정상회의(G20 Seoul Summit)' 위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모였다.

G20 국가 정상과 초대된 5개국 정상, 국제연합(UN),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OECD, 세계무역기구(WTO) 및 금융안정이사회(FSB) 등 7개 국제기구의 수장을 비롯한 대표단 4천500여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2000년 ASEM 정상회의,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었지만 규모면이나 인식면에서 이때까지 한국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정상회의였다.


*G20은 기존 G7(Group of Seven의 약자로 국제통화기금이 분류한 세계 7대 선진경제국)에 12개의 신흥국•주요 경제국 및 유럽연합(EU)을 더한 20개의 국가 및 지역 모임
*G20은 세계 인구 3분의 2를 차지하며 세계 GDP의 85%, 세계 교역량은 80%를 차지한다.
*원래 장관급 회의였던 G20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미국 워싱턴 DC에서 최초로 정상급 회의로 개최되었고 영국 런던(2009년 4월), 미국 피츠버그(2009년 9월), 캐나다 토론토(2010년 6월)에 이어 2010년 11월 아시아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후 2011년부터 연례화되었다.


2010년은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였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정상회의 전 열릴 차관회의, 장관회의 및 부대 회의들로 컨벤션업계는 입찰 경쟁이 치열했고 코엑스도 입찰 참여에 바쁜 업체 중 하나였다.


신종플루가 잦아들면서 정부는 그간 확진자에게 제공했던 지원을 종료했다. 그렇게 끝났다고 믿어지는 상황에서 덜컥 신종플루에 걸렸다. G20 입찰 제안서를 준비하며 야근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열을 잡기 위해 수액을 연이어 세 개를 맞는 동안 병원에서는 신종플루를 의심하지 못했다. 뒤늦게 긴급 검사요청을 하고 타미플루를 받은 후에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아파서 몸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틀 만에 출근을 해야 했다. 방향이 잡히면 점검회의를 수차례 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제안서가 탄생한다. 제안서 책임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제출일까지 일을 끝내기 위해 팀이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몸은 물론 고달팠지만 직원들 모두 감염 위험을 감수하기로 동의할 만큼 중대한 시기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정상회의 의제 개발을 위해 개최한 'G20 국제심포지엄'부터 시작해 나는 정상회의에서 '미디어센터' 운영과 '국별 정상 브리핑'을 맡았다.



코엑스 1층 전시장 전체에 65개국에서 모여든 기자단 4천여 명을 위한 미디어센터가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운영되었다. 10월 말부터 설치작업이 시작되었고 오픈 전 수일간 기술 점검과 리허설을 실시했다. 수천 명을 수용할 프레스센터에 전기 공급은 원활한지, 인터넷은 트래픽이 생기지 않을지, 영상 장비는 문제가 없는지, 3층 정상회의장에서 송출하는 영상이나 통역이 미디어센터까지 차질 없이 전달되는지를 보며 수정할 부분들을 보완해 나갔다.


주관방송사와 주관통신사업자 등 유관기관과 오랫동안 설치와 반입, 운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상회의장을 비롯해 정상 휴게실, 미디어센터와 기자단 휴식공간에 수많은 기업들의 후원이 있었다. 현장에 설치한 최신형 영상장비부터 정상들에게 제공될 물과 음료, 간식, 그리고 기자단들의 간식과 음료, 커피 등이 기업의 지원으로 제공되었다.



코엑스에 근무하면서 가장 큰 혜택은 좋은 전시행사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매달 전시 일정을 확인한 후 점심시간이나 짬이 날 때마다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운이 좋으면 행사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만나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책상에 쌓여가던 소개자료와 담당자 명함이 제안에 적합한 행사를 만나면 신박한 아이디어가 되어 제안서에 매력을 더해준다.


G20 미디어센터에 적용된 아이템 중 하나는 천장에 걸린 '스크린'이다. 빔 프로젝터를 일반 천 스크린에 사용할 경우 영상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더욱이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는 영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보도자료 작성을 하고 취재 영상 촬영과 송출을 하는 기자들의 업무공간에 조도를 낮출 수는 없다. 수천 명이 이용하는 미디어센터에 정상 도착 장면을 포함해 공지사항, 브리핑 안내, 정상회의 실황이 중계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크린이다. 


전시행사를 둘러보며 발굴한 이 영상장비는 빛이 있는 상태에서도 영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신기술이었다. 일반 스크린보다 무게가 나가기는 했지만 전시장 하중에는 문제가 없었다. 상품화까지 이뤄지지는 않았던 시기라 납품비용을 낮추는 일과 미디어센터 운영에 맞춰 기술을 보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성공적이었다.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찾은 신기술이 현장에서 구현되는 모습을 보는 일은 흐뭇했다.


또 다른 아이템은 '나무 심기 프로젝트'였다. 친환경 G20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젊은 청년이 기업과 비영리재단의 후원으로 창안한 이 아이디어의 목적은 '탄소 상쇄'다. 수많은 국제행사가 열리고 정상들이 모여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뤄내지만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이 있다. 탄소 상쇄를 위해 'G20 나무 심기' 게임 어플을 만들고 국민들의 참여를 위해 대중 알리기를 했다. 현장에는 내외신 기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게임을 통해 모아진 나무는 실제 나무 심기로 이어져 지구의 사막화 방지에 기여한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시는 자율적 차량 2부제(홀짝제)를 시행했다. 서울시의 모든 특급호텔과 그 주변 호텔들이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 수행단, 경호단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정상들이 머무는 숙소가 다르고 이동시 도로 통제는 경호상 피할 수 없는 일이라 극심한 교통 체증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2005년 APEC 정상회의 등 국제행사 경험이 쌓이면서 높아진 시민의식이 이 기간 돋보였다.


행사 전날밤 코엑스 일대가 전면 봉쇄되었다. 코엑스 주변으로 펜스가 설치되었고 봉은사로부터 영동대로, 테헤란로, 아셈로까지 일반차량 진입이 차단되었다. 정상회의 둘째 날은 코엑스와 바로 연결된 삼성역에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았다.


역사적인 외교행사에 참여하는 일원으로 G20 출입증과 비표를 목에 걸고 코엑스로 들어가면서 깊은 숨을 들이 삼켰다. 행사를 앞두고 자부심과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미디어센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곳은 기자들의 업무 공간이었다. 보도자료 작성과 영상취재를 위해 필요한 가구, 전기, 인터넷 등의 기본 설비 이외 통신, 컴퓨터 장비, 통역, 사진 작업, 은행 업무, 우체국 업무 등을 위한 제반 서비스가 마련됐다. 기자단의 휴식과 식사, 짧은 수면 등을 위한 휴게공간도 미디어센터 내 조성되었다. 5일간 운영된 미디어센터는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24시간 문을 열었다.



각국 정상은 회의 중간중간 자국에서 취재를 나온 풀(pool) 기자단에게 브리핑을 열고 주요 논의사항이나 성과 등을 설명했다.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취재지원팀과 일정을 잡고 브리핑이 확정되면 미디어센터 내 영상화면과 안내방송으로 브리핑 일정이 공지된다.

정상회의는 코엑스 3층에서 진행되었는데 국별 브리핑룸은 정상회의장과 연결되어 3층에 조성되었다. 브리핑룸의 뒷공간은 정상, 앞공간은 기자단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동선을 분리했다.

브리핑 전 풀대기장소로 모여든 기자단은 시간이 되면 브리핑룸으로 이동한다. 1층 미디어센터에서 3층으로의 이동은 동선을 미리 숙지한 진행요원들이 인솔했다.


정상 브리핑 취재를 위해 모인 풀기자단이 브리핑룸으로 이동하는 모습
국별 브리핑룸


정상 브리핑 중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건 한국(이명박 대통령), 미국(버락 오바마 대통령), 캐나다(스티븐 하퍼 총리)의 합동 브리핑이었다. 개별 브리핑과 다르게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진행된 공동 브리핑에는 세계 각국의 기자단이 현장을 가득 웠다.


한국, 미국, 캐나다 합동 브리핑
G20 정상회의 개최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1000억, 국가 브랜드 상승, 기업 브랜드 상승, 수출 증대를 포함한 간접효과는 25조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적 행사에 이렇게 많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사는 내 경험으로는 처음이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 역시 현장에 있었다. 11월 8일부터 13일까지 자원봉사단은 각국 참가자와 외국인 방문자들의 숙소 안내, 관광 및 문화 행사 안내, 대중교통 이용 안내 등을 지원했다. 여기에 자발적인 차량 2부제 참여와 지하철 무정차, 교통 통제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국격을 올린 시민들의 이해가 있었다. 행사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기관들을 비롯해 기업과 국민들의 지원으로 G20 정상회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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