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풍토끼 Dec 04. 2023

2018년 9월: 다른 사람은 그런 생각 안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한 번 더 질문했습니다. "출근하면서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하나요? 여기 서 있으면 저 차가 치고 지나가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의사는 확고했습니다. "보통은 그런 생각 안 합니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방금 제게 내려진 진단은, 원인불상의 증상으로 정신과를 찾은 오늘이 아니라 훨씬 더, 족히 10년은 더 전으로 거슬러갔어야 맞습니다. 매달 말 학자금대출 이자 내라는 메일을 받으며 자살 방법을 검색했던 아싸 대학생 시절부터? 아니면 취한 아버지로부터 폭언과 협박을 듣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온통 칼로 긁힌 책상을 들어 치우던 중학생 시절부터일까요? 


주마등이란 것이 진짜 있긴 하더라고요. 자살을 주제로 한 30년 인생의 여러 순간이 머릿속을 휙휙 스쳐감과 함께 의사의 "... 검사 결과를 보니 아주 힘드셨을 텐데", "신경 안정제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하는 말도 바람 불듯이 지나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과 한 무더기 약이 남았지요. 


시작은 통근 지하철이었습니다. 회사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숨이 막혔고 어지러웠어요. 사람의 파도에 기대 쓰러질 틈도 없었지만. 환기가 안 돼서, 사람이 많아서, 혼잡해서, 계단이 많아서, 생리 중이어서...라는 핑계로 몇 달째 이상 반응이 오는 걸 무시했더니, 반골로 태어난 몸답게 정신과 체면을 무시하고 화려하게 엎어져 주셨습니다. 망할. 눈앞 풍경이 길게 가늘어지더니 캄캄해졌습니다. 누군가 절 붙잡아 다음 역에서 내려 벤치까지 데려다줬습니다. (2018년 9월 초, 교대역에서 절 잡아주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실장님, 저 교대역에서 쓰러졌는데 병원 갔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어 그래. 십여 분이 지난 뒤 정신을 차려 회사와 짧은 통화를 마친 후 근처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이럴 땐 무슨 병원을 가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더라고요. 응급실? 하지만 지금은 걸을 수 있는데? 거긴 진짜 응급 환자들이 가는 곳이잖아. 하릴없이, 몇 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 근처 내과에 가기로 했습니다. 내과에서는 처음에 미주신경계 실신을 의심했지만, 타 병원에서 검진 후 그 이론은 폐기해야 했습니다. 몇 년간의 제 반응과 병력을 본 의사는 의사는 조심스럽게,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내방하시라 권했습니다. 


처음엔 듣지 않았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번 더 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회사에서의 입지가 좁아짐에 따라 '이대로는 진짜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죽고 싶다고 했지, 이런 식으로 내몰리고 내몰린 끝에 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죽더라도 출근길에 죽어야 산재지, 아니면 개죽음밖에 더해요?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과를 가야겠다. 


그래서 들린 집 앞 정신과에서 저런 말을 들은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자살 생각을 안 한다고? 난 매일 아침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숨 막히는 지하철을 빠져나와 회사로 가는 길 15분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인도 없는 차도를 걸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그런 생각을 안 한 적이 손에 꼽았습니다. 걷기를 멈추고 멍하니 서있기도 했어요. 어느 눈먼 차가 날 쳐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회사 몇 주는 안 가도 되지 않을까, 죽으면 뭐 어쩔 수 없고. 내가 죽으면 회사도 바뀌려나, 아버지는 술을 좀 덜 마시려나, 어머니는 좀 홀가분해지겠지. 생각하면서 걸으면 조금이나마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아서 다시 절망을 향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건 죽을 가능성은 늘 열려 있었으니까. 


"어려운 걸음 잘하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덤덤했지만, 저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대로 무너져 한참을 의사 앞에서 울었습니다. 생판 남 앞에서 그렇게 펑펑 울 줄은, 저도 몰랐어요. 타인으로부터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따뜻한 인사고 잘했다는 칭찬이었는데, 그걸 여기서 들을 줄이야. 어디에서도 환대받은 적 없는 천덕꾸러기, 이때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취급했습니다. 그러기를 10년 혹은 20년을 살다 망가진 끝에 병원에 가서야 환영과 칭찬의 말을 듣다니. 한심한 기쁨과 솟아오르는 비참함 속에서, 단지 '번아웃 직장인'이었던 나는 '중증 우울 삽화,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환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생각합니다. 오늘은 죽지 말자고, 죽더라도 스스로는 죽지 말자고.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반란을, 매일 아침,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 



작가의 이전글 서문: 심해에서 보내는 유리병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