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메모] 유저 프렌들리 - 세상을 바꾸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비밀
1. 만약 은유가 우리 몸이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면, 그리고 우리 몸은 뇌의 각 영역이 조율하고 나타낸다면, 은유 역시 우리 뇌 구조대로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연결 통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2. 예를 들어 누군가는 어릴 때 사랑을 엄마의 품과 연결 지어 받아들였을 테고, 아마 이때의 따뜻함과 상냥함을 통해 사랑을 익혔을 것이다. 따라서 '따스한 사람'이라는 언어 표현은 우리가 처음 물리적으로 따뜻하다고 느낀 대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3. 위와 같이 '신체 감각에 근거한'이나 '체화된'은 표면상 매우 간단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이론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듯이, 두 개념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로부터 4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서구 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상을 담았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둘의 간극을 좁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4. 하지만 레이코프와 존슨은 생각이 순수하게 이성의 능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신체적 감각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생각도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이 체화된 인지 개념을 처음 제안한 이후 지금까지, 실험 심리학자들은 레이코프와 존슨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는 증거를 조바심 날 만큼 조금씩 내놓았다.
5. 한 실험에서는 따뜻한 커피 잔을 든 사람이 차가운 커피 잔을 든 사람보다 더 쉽게 타인을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이를 보니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warming up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인 은유에만 그치지는 않는 듯했다. 이 은유가 우리 뇌 어디인가에 머물렀기 때문에 교묘히 조종할 수도 있었고, 물리적으로 따뜻해지니 감성적 판단 또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6.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전혀 다른 은유에서 비슷한 증거가 나왔다.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미래를 생각하라고 하자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었다. 과거를 생각하라고 하자 참가자들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이런 행동에서는 미래가 앞에 있다는 은유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7. 또 다른 사례에서는 설문지에 답을 작성하는 참가자 중 무거운 서류판을 사용한 사람이 더 진지하게 응답했다. 중요한 내용은 무게와 관련이 있었다.
8. 비록 위 결과의 과학성과 실험 방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지만, 디자이너들은 직업이 탄생한 이래 체화된 은유의 개념을 줄곧 적용해 왔다. 헨리 드레이퍼스의 디자인 가운데 첫 베스트셀러는 1931년 특허를 받은 빅벤 알람시계인데, 시계 밑동을 더 무겁게 해 품질을 높이고 신뢰감 있게 만들었다.
9. 이렇게 무게를 품질과 연결 짓는 생각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 있다. 친숙한 사례로 자동차 문의 소리와 여닫는 느낌이 있다.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벤틀리의 차문을 닫을 때는 지하 금고를 굳게 닫는 듯한 무게를 느끼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벤틀리를 사기 위한 은행잔고의 무게만큼이나 차체도 묵직한 은유를 풍기도록 세심하게 공들인 것이다.
10.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우리가 제품을 이해하는 방식 뿐 아니라 사용할 때의 느낌과 관계 있는 은유를 찾아 세상을 샅샅이 뒤진다. 이런 은유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사용자 친화성의 다른 면이 드러나며,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식들을 알 수 있다.
11. 그러한 의미에서 디자인은 일종의 차익 거래다. 한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다른 곳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배달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제품의 바탕에는 디자이너가 있고, 실력이 있는 디자이너는 우리가 전에 보았던 것이나 우리가 매료될 만한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디자이너의 이상이 우리 자신의 이상과 겹칠 때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쓴다.
[유저 프렌들리 - 세상을 바꾸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비밀], 193-201p, 청림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