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은 지속할 수 있는 사업인가?
올해 초, 정신없던 어느 아침에 9시쯤 회사 주소지 인근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난 9시 7분에 오는 유치원 등원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이따 전화 달라하곤 끊었다.
등원버스로 첫째를 보내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넣는 동안에도 사실 매우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출근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받았고, 얼른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서둘렀다.
그렇게 난생처음 보이스피싱 조직과 아무 의심 없이 몇 시간 대화를 이어갔고, 홀린 듯이 은행으로 걸어가서 창구에 앉고 경찰을 만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처구니없었던 순진함을 변명하자면,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꽤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서비스의 고객과 매출, 비용이 흘러 다니는 숫자를 꽤 진득하게 뜯어보고 있었던 때였다.
그때의 몰입이 잔상이 남았는지, '보이스피싱하는 놈들은 그게 사업이 되니까 하겠지? 근데 되는 게 맞나?' 하는 질문이 들었다.
보이스피싱은 영속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사업인가?
이 불법 행위를 스타트업이 따져보는 지표로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고객 1명을 위해 서비스를 하고 있고 이 서비스가 사업이 성립하는지 따져보고자 한다면, 고객 한 명이 장기적으로 서비스에 가져다주는 이익금과 그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데 드는 비용, 이 둘의 차이를 계산한 유닛 이코노믹스를 사용할 수 있다.
우선 내가 신박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내가 월 2만 원의 구독료를 받는다면, 고객마다 한 달 만에 해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2년이 넘도록 구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3개월 정도 이용한다면 고객 한 명당 약 6만 원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셈이 된다. 이를 보통 LTV(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객은 저절로 찾아오는 법은 없다. 고객 한 명이 우리 서비스를 구독하도록 만들기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열심히 광고도 하고, 첫 달 무료 쿠폰도 주고, 다른 제품과 제휴를 할 수도 있다. 이때 들인 비용을 고객획득비용(CAC, Customer Acquisition Cost)이라 부른다.
만약 고객획득비용이 4만 원이었다면, 고객 한 명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은 6만 원에서 4만 원을 제외한 2만 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유닛 이코노믹스라고 한다.
그럼 고객 한 명이 본인의 획득비용만큼 최소 4만 원을 나에게 벌어다주려면? 적어도 2개월 동안은 인공지능 서비스 구독을 유지해줘야 하는데, 이를 자본회수기간(payback period)라고 부른다.
만약 내가 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가입비 10만 원만 내면 평생 모든 혜택 무료!"라고 외쳤다면, 고객의 LTV는 10만 원이고 자본회수기간은 0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이스피싱은 가입비만 수천만 원 받는 서비스와 동일하다. 가입비를 타내는 데 드는 비용은 조작된 가상번호를 이용한 통화료 정도가 될 것이다.
만약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가입비'를 평균 1천만 원 내고, 이 고객이 입금하기까지 소진되는 전화통화료가 평균 20만 원이라고 한다면, 유닛 이코노믹스는 980만 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제 980만 원에서 가해자들의 인건비, 장소임대비, 각종 장비 설치비용 등을 적절히 고려해야겠지만, 그런 비용이 크지 않다면 볼 때 상당히 이윤이 높은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겠다.
코호트란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하는데,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같은 이벤트를 경험한 사람들을 묶을 수도 있다. ‘MZ세대’라는 단어도 코호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이 완제품으로 시장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초기 아이디어를 담은 제품을 출시한 후, 고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검증과 개선을 반복한다. 따라서 출시 직후 제품을 이용한 고객과 3개월 이후 처음 접한 고객은 동일한 제목의 제품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제품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 제품의 경우 가입 기준 코호트가 중요하다.
다시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돌아오면, 나는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뻔한 사람들 중 2024년 1월 코호트에 해당한다. 만약 이 코호트에 대한 사업 성과가 높았고, 이에 따라 이 범죄조직이 현재 돈을 갈취하는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말해, 2024년 2월의 코호트에서도 980만 원의 유닛 이코노믹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LTV는 감소하고 CAC는 증가하여 유닛 이코노믹스는 자연스레 감소하게 된다.
첫째, 범죄를 저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입이 발생한다. 500만 원 이상 출금하거나 송금할 때 절차를 강화할 수도 있고, 은행에서도 범죄예방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보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평균적으로 갈취할 수 있는 돈이 500만 원으로 줄어들 수 있다.
둘째, 보이스피싱 경험자들의 네거티브 바이럴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모르는 번호로 경찰이나 검사라고 하면 절대 전화받지 말아라’는 신호를 보내며 신규 고객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조직은 더 많은 수의 전화를 돌려야 하므로 고객 획득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20만 원이던 CAC가 40만 원으로 폭증할 수 있다.
이렇게 LTV가 절반으로 감소하고 CAC가 두 배 증가하면, 2024년 2월의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유닛 이코노믹스는 460만 원이 된다. 물론 범죄조직도 더 교묘하게 수법을 개발해 나가겠지만, 자연스러운 고객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보이스피싱의 탈을 쓰지 않았더라도, 모든 기업이 그와 같은 지표 항로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기업이 굴러가는 방식은 기업이 고객에게 유무형의 가치를 주면 그에 대한 대가로 고객이 기업에게 금전적인 가치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이스피싱은 고객에게 가치를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고객은 100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즉, “고객 지불 100” 대 “가치경험 0”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만든 인공지능 서비스가 49만큼의 가치를 주고, 고객이 51만큼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무게의 추가 살짝 기울어있다면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49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없다면 판매가격을 낮춰야 할 것이고, 만약 판매가를 그대로 고정한다면 기존 고객들은 (‘절대 쓰지 마세요’는 아니겠지만) ‘생각보단 별로네요’ 정도의 애매한 피드백을 전파할 것이다. 신규 고객을 만나기 위한 비용은 조금씩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산술적으로 따져볼 때 고객이 내는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존립이 위태롭다. 이와 반대로 고객 만족을 끊임없이 해낼 수 있다면 항구적인 성장도 가능하다. 그래서 고객 만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기업도 고객을 항상 만족시키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제품에 중대한 결함이 있어서 고객이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고객 지불 100 대 가치 경험 0”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비단 스타트업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이 과정을 겪어왔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7 배터리 결함으로 잇단 폭발사고가 있었는데, 삼성전자는 이미 306만 대 판매한 갤럭시노트7의 98%를 회수했다. 리콜 비용은 1조에서 1조 5천억 정도로 추산된다.
현대자동차는 코나 EV와 아이오닉 EV 배터리 화재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다. 현대자동차도 전기차 7만 7천 대를 리콜하는데 한국에서만 1조 원의 비용을 썼다. 영업이익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의 빠른 대응으로 갤럭시노트 8 사전예약은 노트7의 3배로 늘어났고, 2021년 현대차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75%나 증가한 16만 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지표의 성장이 함께 들어있다.
하나는, 이전 제품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고객이 된 ‘다음 코호트’에 해당하는 신규고객의 성장이다. (물론 리콜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으니 이를 다음 고객을 위한 마케팅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CAC가 줄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제품을 이전에도 구매한 유저들이 재구매로 화답하며 기존 고객들의 LTV가 성장했다는 점이다. 리콜 비용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기존 고객이 이탈하며 LTV는 정체되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생각하면 '사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내가 해온 일들 중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겠지만, 선의와 노력이 가득하더라도 적어도 고객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우리는 늘 'LTV를 높이고 CAC를 낮추자'라고 말하지만, LTV와 CAC 간극이 크게 벌어진 아름다운 모습은 화려한 테크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고객에게 정말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숫자를 움직일 수 있을 법 보이는 테크닉에 집착할수록 고객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보이스피싱 조직이 해체되는 과정을 밟게 될 뿐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돈이 고객에게 정당하고 합리적인 대가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은 합심하여 그 즉시 낮은 LTV와 높은 CAC로 가혹한 피드백을 줄 것이다. 따라서 빠른 성장, 가파른 성장을 원할수록 내가 더 큰 고객가치를 만들어낼 방법을 찾는 것이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