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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아빠 May 25. 2024

루틴과 밥먹기

강박 1도 없는 루틴 만들기

나는 루틴에 대해 많은 강박을 갖고 있었어.


나와의 약속, 지켜야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 지키지 않았을 때 나에 대한 실망감, 작심삼일로 끝날 거니 시도조차 하지 않음 등등.


돌아보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으로, 오히려 목적이 희미한 루틴을 만들고 지키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아. 일찍 일어나기, 책읽기, 달리기, 산책하기, 찬물 샤워하기, 책읽기, 체크리스트 쓰기 등등.


모든 시도가 즐거움의 요소가 있었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고, 지키기 위해 채찍질 하기도 하고.


지금은 시도했던 많은 것들을 매일 지키고 있지는 않아. 그런데 이게 잘못된 일일까? 나를 자책할 일인가? 아, 나의 의지력은 참 박약하구나, 성공한 사람들은(멋진 사람들은) 꽤나 지루한 루틴을 빼먹지 않고 잘 지키던데. 가수 박진영, 야구선수 이치로와 추신수 등등. 역시 나는 그런 위대한 인물들과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아. 참 작은 존재야... 어느 순간 루틴이 멈춰버린 내 일상을 돌아볼 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지.


하지만 내가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그 시점과 지금의 실천을 돌아보면, 매일매일 기계적인 반복을 딱 고착시키지 않더라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일단 얻은 것은 각각의 시도에서 경험한 효능이야. 


달리기를 하면 심박수가 안정되고 살이 빠져.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달리기를 마무리 할 때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어. 명상같은 거지.


산책을 하면 나도 모르게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어.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종종 떠오르지.

일찍 일어나는 건 피곤할 때도 있지만 남들보다 훨씬 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긴 하루이니 여유를 부리고 쫓기지 않았지.


아침에 찬물 샤워를 하면 적어도 오전에는 머리가 맑다는 느낌이 들더라. 온수 샤워를 할 때는 나른해지고 말이야.


매일 체크리스트를 써보면 꼭 완수해야 할 일들에서 아주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를 제어할 수 있게 돼. 뭔가 엄청 많은 일을 해야할 것 같은데, 체크리스트를 펼치다보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끝낼 수도 있어.


마지막으로 독서는 모든 영감의 원천이야. 기획서를 쓸 때 빈 노트를 붙잡고 있어도 답이 안나올 땐 아무 책이나 들춰봐. 너무나 전통적인 업종의 경영서적에서 스타트업이 더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나오기도 하고, 단순히 마케팅 책을 열었는데 내 업종과 관련된 사례가 등장하기도 해. 그래서 자꾸 책을 읽다보면 글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전혀 알수 없음에도 나도 모를 뭔가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지. 세렌디피티!


그래서 루틴을 시도했다는 것의 가장 큰 효과는, 내가 직접 그 효능감을 경험했다는 게 정말 중요했어. 이런 긍정적인 경험들이 한동안 끊었던 행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지.




요즘 난 매일 뛰지 않고, 매일 산책하지 않고, 매일 찬물로 씻지 않고, 매일 일찍 일어나지 않고, 매일 체크리스트를 챙기지는 않고, 매일 책을 읽는 것도 아니야.


그대신 지난 한 달을 돌아볼 때면 내가 만들고자 한 루틴들이 어느 날짜엔가 발생했더라. 


1주일에 하루 정도는 뛰고, 산책은 하루 건너 하루 하고 있고, 꼭 새벽 4시반에 일어나진 않더라도 (예전엔 루틴을 4시 30분 기상으로 맞췄었으니) 6시 전에는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적어도 월요일 아침에는 한 주의 체크리스트를 챙기게 되고, 출근길에 매일은 아니지만 주5일 중 3~4일은 스마트폰 (특히 숏폼) 대신 책을 다섯페이지라도 읽게 되는 습관이 생겼어.


이걸 내가 매일 하려고 한다면 너무 힘들거야. 오히려 느슨하게 지키게 되니 다른 루틴을 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 요즘은 영어 팟캐스트 듣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 이것도 한 3주 정도는 매일 아침 30분씩 듣기를 열심히 했던거 같아. 


그런데 이게 뭐 마음대로 되나. 서서히 느슨해졌는데, 그 대신 지금은 '영어 듣기 해야 하는데' 생각은 나니 하루에 5분 정도는 듣게 돼. 듣다가 지루하면 노래를 틀지. 죄책감 전혀 없이!


그래서 한 번 루틴으로 마음 먹은 일 조금 안착되었다면, '밥 먹는 정도'의 패턴을 갖게 되는 것으로도 충분히 성공인 것 같아. 우리가 삼시 세 끼를 강박적으로 먹진 않잖아. 그렇다고 한끼도 안먹고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잘 없잖아. 한 끼 놓쳤다고 나를 심하게 나무라는 일도 없지.


먹으면 기분 좋고 행복하고, 안먹으면 배고프고 불쾌하고. 루틴으로 하고 싶은 행동들도 딱 그정도 느끼고 사는거지. 안하면 찝찝하고, 하면 상쾌하고.




그래서 루틴은 밥먹듯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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