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Sep 10. 2023

마우스 커서

깜박이며 재촉하는 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소재가 떠오르질 않는다. 고작 한 달 동안 9개의 글을 썼을 뿐이다. 쓰기 시작할 당시엔 다음엔 이런 내용을 써봐야지 하는 기대와 글 쓰는 시간 만을 기다렸는데,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내 마음은 새하얀 들판 앞에서 점하나 쉽사리 찍지 못하도 있다. 발행되지 못하고 저장되는,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글들의 목록만 길어지고 있을 뿐. 36행을 채우는 일조차 절절매며 좌절하는 순간을 숱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백하건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한 이후로 나의 하루는 조금 더 세밀해졌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전될지 모를 글감을 열심히 수집하느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구름을 쫓는 눈이, 제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손이, 이른 아침 창문 틈새로 빼꼼 들어와 코끝을 스치는 계절의 냄새를, 7평 남짓한 공간에서 매일 임계점에 다다르며 불끈하는 근육의 비틀림을, 귀에 담지 않으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마음 소리에 더 집중하는 나날이 늘어났다. 


각각의 감각들이 활동한 내용은 구글킵에 포집되어 언제든 간택당하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지만, 바로 재밌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겠다는 처음 기록의 자세와는 달리 그들의 미래를 쉽사리 그리지 못하는 날들만 길어져 결국 4.7인치 화면 밖으로 사라지곤 만다. 


발행의 승리를 쟁취하지 못한 날은 구독 중인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애써 위안을 삼아 본다. 글밥이 긴 글을 서슴없이 써 내려가며(각자의 속사정은 사실 알지 못하지만..), 글 밖으로 독자의 마음이 유출되지 않도록 쫀쫀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 안에 버무려진 독특한 관점들.. 부러운 것 투성이지만,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나의 실패를 흐트러뜨리고 용기를 얻는다. 


조급함을 더해주는 마우스 커서의 깜빡임을 기어이 밀고 나가며 끝내 완성의 지점에 도달한 이들의 길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니. 쏟아낼 단어가 없다 하더라도 닫기 창을 누르지 않은 이상, 마우스 커서는 전력이 있는 한 나를 기다려 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하나하나 차분히 마우스 커서를 뛰어넘는 것뿐이니.


 고작 3.8mm에 불과한 너를 1550mm나 되는 내가 두려 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렇게 오늘의 정신 승리를 해본다. 그럼에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나는 하염없이 enter키를 누르며 불필요한 단락을 늘려나간다. 그렇게 오늘의 글은 가까스로 A4 한 장을 뛰어넘었다. 야호!

매거진의 이전글 아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