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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Nov 21. 2018

0.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멕시코 떠나는 어학연수

 너무 나도 갑작스럽게 멕시코행이 결정되었다.

 
나는 늘 변화를 원했다. 그것도 아주 갑작스러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나쁜 일이 생길 때면 늘 바다에 가더라. 가서 멍하니 바라보면서 초심을 다잡고, 변한다. 나 역시 그런 걸 원했나 보다. 주변 어른들이 그랬다. 그래 젊을 때 많이 다녀둬라, 좋은 경험이다. 다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다. 혼자 아르바이트해서 여러 좋은 경험을 하러 다니고 참 좋다. 그런데 이제 잘 모르겠다.  


멕시코에 가기 전, 힘들 때마다 서로 의지했던 친구와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행 도중 친구와 다투고 난 뒤, 곧  걷잡을 수 없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홧김에 가끔 여행 사진만 올리던 SNS도 죄다 탈퇴해 버렸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노을


나는 그런 게 좋다. 노력하면 성과가 주어지는 거. 그런데 그게 눈에 보여야 한다. 그런 걸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도, 그날치 공부를 다 끝나면 퍼즐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게 되어있던 학습지 덕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은 스티커가 모여서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될 때, 나는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해했다. 완성한 그림을 가위로 오려서 차곡차곡 간직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표지들은  언제 내다 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야자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학생들에게 찍어주는 도장판도, 체육관에서 말 잘 듣는 수강생에게 붙여주는 스티커도, 전부 그때는 소중히 했던 것들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언제 내다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은 참 힘들었었다. 잠은 늘 거의 자지 못했고, 커피는 하루의 4, 5잔을 마시며 버텼다. 그 당시에는 '아, 정말 힘들다'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었다. 성적 역시 3점 중반에서 4점대까지 비약적으로 올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력하면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를 얻은 해였다.


올해는 참, 슬픈 일이 많았다. 주변 사람이 아팠고, 그래서 모두가 참 힘들었다. 노력이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무력했고, 정말 많이 울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낸 것 같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혼자 도망치면 다야?


나는 도망치는 거야.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참 많이 방황했다. 평소에 안 하던 무언가를 시도하면서 싹 바뀌어 보려고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그 모든 것이 싫증이 나 다 집어치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참을 수 없어  어느 날 엄마에게 꼭꼭 속 안에 담아뒀던 말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는 도망치는 걸까?"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밤


멕시코로 떠나기 전날은 거실에 이불을 깔고 엄마 아빠와 함께 잤다. 드디어 내일 떠나는구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왜.. 우리 아기.. 잠이 안 와? "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그 품에 들어가 비비자 잠에서 깬 엄마가 물었다 .


8월 30일, 멕시코 레온 공항 도착.

떠나는 날, 인천에서 LA까지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거리 약 10,300km. 멀다.

잠도 자고,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는데도 남은 비행시간이 10 몇 시간이었다.  영화나 보자. 미리 다운로드해온 e book 은 이미 영화로 본 내용의 책이라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맨 처음 본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어, 이 영화... 일본판으로만 봤었는데. 그래도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친구가 정말 재밌었다고 꼭 보라고, 보라고 졸라 됐던 것이 생각나서 그냥 틀었다. 


결코 슬픈 장면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눈물이 흘렀다. 원래 좀처럼 영화를 보고 우는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터진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밤을 줍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엄마 어딨어? 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었다.  


나무 뒤에서 나온  엄마는 아이에게  슬쩍 손을 흔들며 웃어준다.  


어쩌지, 벌써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스물세 살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  




인간은 분에 넘치는 행복이 눈앞에 있을 때 갑자기 깊은 병에 걸리곤 해요.
행복을 붙잡는 일은 불행에 안주하는 일보다
용기가 필요하대요.
당신 몇 살이지?

 내가 사랑하던 B급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에 나온 말이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나는 아직도 순진하게 무언가를 믿나 보다. 긴 여행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준다고 말이다.가족 중 한 명이 떠나는 내게 약속했다. 돌아오면 모든 게 다 괜찮아져 있을 거야, 마음 놓고 다녀와.

 

나는 요즘도 가끔씩 잠을 못 이룬다. 악몽도 자주 꾸고, 한 번은 정말 무서운 꿈을 꿔서, 새벽에 깨고는 또 울어 버렸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구나.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내 노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눈앞에 주어진 자그만 숙제를 끝내는 거에 만족하고,  무언가가 나아질 거라고 믿으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 정말 좋은 일만 생길 거야."

 갑자기 그 먼 곳으로 왜 가냐고,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친구가 물어서 술김에 웃으며 저리 말했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냥, 나 가. 잘 다녀올게. 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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