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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Nov 29. 2018

1. 멕시코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외국어 공포증 극복하기

 하필이면 출국하기 전에 본 드라마가 ‘루머의 루머의 루머’였다.소위 ‘루루루’로 불리는 이 드라마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을 다루고 있다.


ㅡ어때? 재밌지?

소개해 준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ㅡ 야, 어떡해, 나 외국애들 너무 무서운데?

미디어에서 흔히 접하는 인종 차별 문제. 아마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문제일 것이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 마저도 학창 시절에 영어 못한다는 이유로 괴롭힘당했다더라, 친구가 교환학생 갔었는데, 애들이 하도 괴롭혀서 기숙사에만 갇혀 지내다 왔다더라. 동양인은 사람 취급도 안 해 준다더라, 등등. 이처럼 떠나기 전까지, 나는 잘 알 지도 못하는 멕시코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며 떨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LA 공항에서 환승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져갔다. LA 공항은 단순히 환승을 위해 지나가는 거라 생각해 안일했다. 예상과 달리 입국심사 과정에서 한참 시달려야 했다.

나를 잠재적인 불법 체류자 정도로 보던 공항직원에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나서야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보안검색대에서 줄을 서는 와중에 새치기까지 당했다.나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겨우 오른 멕시코행 비행기에서도 그러한 생각이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인천에서 LA, LA에서 실라오 공항까지. 드디어 긴 비행이 끝났다. 비행기가 땅에 닿자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다. 곧 내리는 것이 조금 지연될 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비행기 안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놀란 나는 혹시 내가 지금 방송을 잘못 이해했나? 하고 두리번 거렸다. 지연 방송을 듣고도 껄껄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들에 나는 퍽 혼란스러웠다. 나중에야 안 건데, 멕시코 사람들은 가끔 비행기가 땅에 닿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치고 환호한단다.

  

-어디서 왔어요?

줄을 정리하던 공항 직원이 내 큰 캐리어를 보고는 물었다.

-음, 한국이요.

-하하, ‘어서 와요!’
 

순간 너무 놀라서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 대답에 수염이 덥수룩한 멕시코 남자가 한국어로 인사를 한 것이다. LA공항에서 이미 한번 곤욕을 당하고 난 뒤라, 멕시코 입국심사를 하기 전에는 먼저 한참을 잡혀있을 각오를 했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과 달리 정말 금방 끝나버렸다. 


어서와요. 입국심사를 하는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길에서 자고 있는 들개

멕시코는 개가 참 많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뿐만 아니라, 길거리에도 들개들이 상당히 돌아다닌다. 그렇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이곳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길고양이와 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커다란 들개가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곧 직원으로 보이는 노란색 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개에게 다가갔다. 쫓아내려는 걸까?

식당으로 들어온 강아지,  바닥을 살피거나, 음식을 먹는 손님들을 얌전히 바라보다 나갔다.

웬걸 머리를 쓰다듬으며 강아지를 앉게 한 뒤, 둘은 한참을 신나게 같이 놀았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올라갔던 피라미드에서도 늙은 개를 한 마리 만났었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자기가 가져온 물을 헐떡이는 떠돌이 개에게 나눠줬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참 다정하고 생각한다. 이모부는 나에게 멕시코는 사람들이 젠틀한 나라라고 했다. 그 말에 동의했다. 강아지뿐만이 아니다. 어린아이, 여자,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하다. 이곳에서 15년을 살은 이모 역시 아직까지 멕시코에선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이 없단다.

께레따로의 한 재래시장

 요즘 이모는 나에게 스페인어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닌다. 시장, 통신사, 옷 가게, 안경점 등등 안 가는 곳이 없다.

 

-여기 하마이까 농축액 있나요? 00 브랜드 거를 원해요.


더듬 더듬 스페인어로 물었다. 바쁜 시장통 속에서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다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나와 눈을 마주친 채 웃으면서 기다려줬다. 점원이 내가 부탁한 물건을 찾으러 간 사이,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캐셔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스페인어 공부 중인 거니?

 
스페인어를 더듬어서라도 하려는 내가 기특하게 여겨졌는지, 그는 웃으며 나에게 여러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하마이까 농축액, 하마이까는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료다.

이곳에 와서 멕시코 친구도 한 명 사겼다. 나보다 두 살이 많고, 한국 남자 친구와 롱디 연애를 하고 있는 언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서 나는 한국어를, 언니는 스페인어를 서로에게 가르쳐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내 스페인어가 아직은 너무 미숙해, 대화를 할 때 결국 주로 영어를 사용한다. 


-미안해 언니, 내 영어, 너무 서툴지?
-오? 아냐 너 영어 잘해

가끔 이야기하다 언니가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언니에게 재빨리 사과를 했다. 언니는 격려해 줬지만 나는 줄곧 침울해했다. 이곳 멕시코의 웬만한 사립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친다. 그 외에도 제3, 4 외국어로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어학원 선생님들이 가끔 나에게 한국인들은 어떤 제2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저희는 영어를 배워요
-영어만요? 많이 배우나요?
-다른 언어도 배우긴 하는데, 거의 영어만 배워요. 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적으로 배워야 해요. 대학에 들어가려면 보는 시험에 영어 과목이  있어서 아주 중요하거든요.
-주로 어떤 과목을 영어로 배워요?
-네? 영어는... 그냥 영언데요?


 이곳에서는 영어로 다른 과목들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럼 다들 영어를 잘하겠네요
-음... 그건 몰라요, 사실 저희는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하지만 대부분 문법과 읽기에 치우쳐져 있어요, 그래서 정작 말하는 것은 아주 서툴러요.


 사실 이것은 내 서툰 영어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수능, 토익, 토플 ! 살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투자해왔는데 나는 간단한 공항 심사에서도 버벅 거렸다.
 이곳에서 자란 어린 사촌동생은

-왜? 왜 공부 많이 했는데 말하는 게 어려워?

라며 천진하게 물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 대답을 피했던 것 같다.




  장을 다 보고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이모와 오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모 여기 사람들은 참 다정한 거 같아, 내가 말을 못 하는데 다들 웃으면서 기다려 주더라고.
-당연한 거야 넌 외국인야, 우리도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못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 안 하잖아? 그러니까 겁먹지 마.


 이모에 말이 맞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왜 영어에는 늘 그런 압박감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괜히 사촌동생이나 이모가 듣고 있을 때면, 내 형편없는 실력이 들킬까 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요즘도 이모는 나에게 스페인어 연습을 위해 틈만 나면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킨다.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아마 내가 하는 말은 영 형편없을 거다. 그렇지만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웃으면서 늘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나 스페인어 엄청 조금 할 줄 알아, 그러니까 조금만 천천히 말해줄 수 있어?
사전에 준비해온 스페인어가 끝나면 다시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 역시 썩 훌륭하진 않지만...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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