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맞이한 생일과 크리스마스
멕시코에서 맞이한 생일
마르셀라 아주머니께서 나를 다가오는 딸아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셨다. 그러면서 내 생일은 언제 인지 물으셔, 12월 12일이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 너 정말 특별한 날에 태어났구나!
12월 12일은 이곳 멕시코의 전통적인 성녀 과달루페의 탄신일(dia de guadalupe)이다. 그래서 이곳 멕시코에서는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은 과달루페란다. 그 중에서 특히 12월생들은 과달루페가 많다.
생일날 뭐 하고 싶은 것은 없니? 이모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냥 그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라고 했다. 한국에서 늘 이맘때 시험을 봤다. 생일날 도서관에서 보낸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가 언젠가부터 생일날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내 로망이 되었다.
엄마는 늘 내 생일 아침마다 미역국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시험 망치면 엄마가 미역국 끓여줘서 그런 거라고 해버려.
어렸을 때는 그런 게 어딨냐며, 생일날 늘 시험 보는 거 짜증 나하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점차 자라면서, 그 미역국을 먹을 수가 없었다.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을 망친다니 하는 미신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갈수록 시험에 대한 긴장을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험날 아침은 늘 전쟁이다. 입에 넣는 족족 토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휴, 저 새가슴을 어쩌면 좋아. 엄마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 브랜다도 부르자. 여기 유일한 친구잖아.
이모가 미역을 불리며 말했다. 엊그제 시장 가서 갈비도 사놨으니까 같이 생일파티하자해. 이따 나가 케이크도 사야 하는데 촛불도 사고.. 아 선물은 뭐 사지. 제 딸의 생일처럼 신이 난 이모의 모습에 어째 가슴이 울컥거렸다.
12일 새벽, 이모네 가족들과 다 같이 촛불을 불었다. 이모부의 출근시간에 맞춰 파티를 하니 다들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방학이라 더 자고 싶었던 말이에요. 잠에서 덜 깬 동생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창 밖을 바라보니 유리가 온통 분홍색이다. 이런 색은 처음이었다. 이 시간에 일어나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참, 예뻤다. 신이 나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니 '네 생일이라고 하늘도 축하를 하나보다. 생일 축하해'라는 답장이 왔다.
오늘은 dia de guadalupe이기 때문에 브렌다 언니는 회사를 쉬었다. 언니에게 생일 선물도 받았다. 일전에 언니가 친구들끼리 선물을 잘 안 주고받는다 해서 받을 줄 몰랐는데, 게다가 어제는 일이 끝나자마자 나랑 영화를 봐 선물을 살 시간도 없었을 거다. 잠이 많은 언니가 휴일 아침에 내 생일선물을 위해 나갔다 온 것이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쇼핑 백안에 있는 교환증으로 바꾸면 돼.
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언니,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언니는 한식을 좋아했다. 일전에는 언니네 집에서 가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다.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당시 꽤 이것저것을 시도해본 것 같았다. 육회도 먹어봤고, 다음에 갈 때는 산 낙지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해 놀랐다. 한 번은 나에게 김치 만드는 것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었다. 당황한 나는 한 번도 김치를 만들어 본 적이 없고, 김치 만들기는 꽤 어려운 일이라 했다. 다른 한국 친구들도 똑같이 말했다며 시무룩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오늘은 이모랑 셋이 같이 소주도 마셨다. 언니는 소주를 좋아했다. 내가 소맥을 만들어주니 소맥보다는 그냥 소주가 더 좋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이모가 주당 아니냐며 놀리자 언니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단지 안을 산책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나들이랑 놀고 싶은 건지 막내 사촌이 따라 나온다. 그러면서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할 때마다 '안돼! 누나 스페인어 연습해 시야지!' 하며 끼어든다. 동생도 놀아줄 겸, 우리는 다시 집으로 가 닭들을 데리고 놀기로 했다.
이모네는 뒷마당에서 닭을 기르고 있다. 동생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아들 두 마리로 충분하다고 혀를 내두르는 이모에 아쉬운 데로 닭을 기르고 있단다. 이제는 다 늙어 달걀도 낳지 못하는 닭들인데도 이 집에서는 강아지처럼 예쁨을 받는다. 동생은 심심할 때마다 닭을 꺼내 안았고, 이모부의 취미는 주말마다 닭들을 풀어놓고 의자에 앉아 구경하는 것이다.
동생과 브렌다 언니는 닭들을 한 마리씩 꺼내 끌어안았다. 귀엽다고 쓰다듬는데 조류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멀찍이서 둘이 노는 것을 바라만 보니 동생이 만져보라며 계속 쫒아왔다.
-싫어! 저리 가!
징그럽단 말이야. 내가 소리를 지르고 도망 다니자 둘은 나를 놀리듯 귀여운데 왜 그래 하고 소리친다.
-닭 싫어해요?
언니가 웃으며 물었다.
-... 먹는 것만 좋아요.
그렇게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진다. 언니를 데릴러 온 언니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꼭 끌어안았다. '생일 축하해 루삐 딸!' 루삐 딸은 과달루페를 부르는 이곳의 애칭이다.
이모 오늘 고마웠어요. 자러 가기 전에 이모에게 인사를 했다. 길었던 생일이 끝나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늘 생일날은 시험공부만 했었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오늘은 뭐하고 놀았냐고 물었다. 뭐, 그냥 별거 안 했어.
멕시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10월 한 달이 핼러윈과 dia de muerto(죽은 자의 날)로 떠들썩 거렸다면, 12월은 당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쁘다. 핼러윈은 그냥 지나갔지만, 크리스마스만큼은 우리 집도 집을 꾸몄다. 사촌 동생은 트리를 장식했고, 이모부는 집 주변의 전구와 종을 메달았다. 12월의 밤은 떠들썩하다. 온 동네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거린다. 색색깔의 전구부터, 산타 모양의 풍선들, 캔디 캐인 모양의 조명, 눈사람 모양의 조명 등등. 크리스마스 장식은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다.
이모가 나에게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는 썼냐고 물었다. 23살의 산타라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이모네 집은 어른들에게도 산타가 찾아온다고 했다. 초등학생인 막내 동생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가족들은 미리 사놓은 선물들을 내 방 장롱으로 숨겼다. 이곳저곳 다 헤집고 다니는 개구쟁이지만, 다 큰 누나방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막내는 정말 아직까지 산타를 믿는 걸까? 나는 어릴 적 장롱을 뒤져 영수증 찾아내, 산타의 정체를 폭로했었다. 그 뒤로 크리스마스 선물이 자연히 끊겼다. 그땐 너무 어렸지, 알아도 모른척하고 계속 받아냈어야 하는데!
친구 중에도 중학생인데도 산타를 믿는다는 아이가 있었다. 친구들은 에이 설마, 하면서 야 너 정말 아직도 그걸 믿어? 하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친구는 실실 웃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믿고 있다 해 난리가 나니, 친구는 그제야 우리에게 야, 조용히 좀 해. 하며 진실을 알려줬었다.
이모네 식구는 이브날 저녁식사를 하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이모부와 동생들이 바비큐를 구웠고, 와인과 샴페인을 함께 마셨다. 식사를 한 뒤에는 폭죽을 가지고 나가 불꽃놀이를 했다. 이 곳 사람들의 파티에는 불꽃놀이가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12월 한 달 내내 불꽃 터지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었다.
초등학생인 막내 동생도 사춘기인 고등학생 동생도, 모두 신이 나 스파클링을 들고 뛰어다녔다. 이모부와 이모도 신이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참 신기하다. 나는 손에 쥐어진 스파클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어째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싫다고 맨날 울었었는데,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라 그런가. 아니면 연말이라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걸까.
한국에서는 불꽃놀이 하면 민원신고가 들어갈 텐데, 여기는 다들 불꽃놀이를 하기 때문인지 상관이 없나 보다. 아니 사실 오늘 단지 안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크리스마스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내기 위해 떠난 것이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우리도 시내로 나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께레따로 센트로에서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천사나 성가대로 분장한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손을 한참 흔들던 한 아이가 옆에 걷던 사람에게 뭐라 칭얼거린다. 따라 걷는 사람이 아이의 엄마였는지, 그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리고, 거리 곳곳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거렸다. 아기 예수 모형부터 , 트리와 각종 조명들, 그린치(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만화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이 행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는 벌써 2019 조명이 설치되어있었다.
신이 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스파클링을 켜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아까 길에서 폭죽을 팔던 아이들이었다. 팔아야 하는 폭죽인데 다 써버려도 되는 걸까? 내가 중얼거리자
- 왜, 성냥팔이 소녀도 다 못 판 성냥을 혼자 켰잖냐.
하고 이모가 답해줬다. 다 팔지 못한 스파클링을 돌리면서 아이들은 마냥 천진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길거리 공연도 많았다. 광대 분장을 한 두 코미디언 주위에 사람들이 빙 둘러 서있었다. 나는 거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섭외한 연주자들이 손님들을 위해 악기를 켜고 있었다. 다들 길을 걷다 그 연주를 들으려고 벤치에 앉았다 간다. 한 라이브 바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바깥까지 줄을 서 있었다.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한 아버지가 길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린 딸을 끌어안고 빙글빙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일루미네이션으로 장식된 골목 안에는 특히 사람들이 많았다. 그 아래서 다들 신이 난 채 사진을 찍으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바닥에 노점삼들이 평소보다 더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대목이라 장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인형을 파는 엄마들 옆에는 어린아이들이 같이 앉아있었다. 누나로 보이는 어린아이는 더 어린 남동생에게 사탕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성당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사진 찍던 자리 바로 옆에는 구걸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막냇동생을 시켜 돈을 드리라 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동생이 말했다. 할아버지 표정이 슬퍼 보였어요.
식구들이 모두 잠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롱문을 열었다. 동생에게 들키지 않게 트리 밑으로 선물을 옮기는 것이 오늘의 나의 임무였다. 첫째 꺼, 막내 동생 꺼, 내 거. 아, 이모부와 이모는 두 개씩이다. 첫째 동생이 엄마 아빠께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나에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이런 거 사보는 건 처음이라 뭘 사야 할지 모른다 하길래 둘이 나가 같이 선물을 샀다. 이모부 거는 동생 이사고, 나는 이모의 선물을 샀다. 아빠 헤드셋이 많이 낡았거든, 이라며 동생은 헤드셋을 골랐고, 나는 립스틱을 골랐다. 내일 아침 즐거워할 식구들을 생각하며 선물을 트리 밑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