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는 독립기념일을 어떻게 축하할까?
9월 16일은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다. 나는 8월 말에 멕시코에 도착했는데, 이때부터 멕시코는 독립기념일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독립을 기념하는 이 음식의 이름은 'chile en nogad(칠레 앤 노가다)'이다. 멕시코에서 독립기념일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초록색 고추의 속을 다진 고기 등으로 채우고, 그위에 호두로 만든 하얀색 소스를 뿌리고 마지막에 빨간 석류를 뿌려 장식한다. 초록, 하양, 빨강 모두 멕시코의 국기를 상징하는 색이다.
이 음식은 생각보다 만드는 것이 까다롭다고 한다. 이모는 만드는 방법도 이름처럼 완전 노가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이곳의 마트들은 아예 칠레 앤 노가다의 완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또 독립기념일 전까지 9월, 멕시코에 웬만한 식당에 가면 이것을 한정 메뉴에서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이맘때가 되면 길가에 하나 둘 초록, 하양, 빨강이 섞인 옷들을 파는 트럭들이 등장한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독립을 기념해 멕시코 국기 색깔들이 들어간 의상을 입은 채로 학교에 간다.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전통의상을 입기도 하지만, 보통은 목에 색이 있는 스카프 정도만 두른다고 한다. 이처럼 독립기념일은 멕시코 사람들의 큰 축제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멕시코 사람들은 독립기념일 전부터 국기 게양부터 시작해 초록, 하양, 빨강이 섞인 각종 장식으로 집을 꾸미는 등으로 이날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당일 밤에는 대통령궁에서 대통령이 나와 멕시코 만세를 외친다. tv에서는 이것을 생중계해주고, 온 국민이 함께 따라 멕시코 만세를 외친다. 만세가 끝난 뒤에는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 멕시코 사람들은 친구들과 함께 모여 밤을 지새우며 독립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진다. 중계를 보면서 축하 파티를 하거나, 혹은 광장에 모여서 다른 시민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고 불꽃놀이를 구경한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독립기념일 파티에 초대되었다. 이모는 내가 초대받은 첫 파티이기 때문에 기분을 내자며, 시장에 데려가 입고 갈 의상을 사주셨다. 이곳 사람들이 파티에서 입는 드레스나 전통의상의 치마는 대부분 발목 길이까지 오는 긴치마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치렁치렁한 드레스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빨간색의 알록달록한 자수가 들어간 니트 스커트를 하나 골랐다. 내 무릎 정도 오는 길이였는데도 그 정도 길이는 이곳에서 어린이들의 옷이라고 한다. 이모는 자수가 들어간 블라우스 하나 골랐다. 이날 성인들 대부분 보통 옷을 입지만, 혹은 파티 분위기를 내기 위해 화려한 자수가 들어간 블라우스 등을 입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옷을 좋아한다고 한다. 청바지에 무채색 옷만 즐겨 입는 나를 보고 이모는 그 치마가 네 옷 중 제일 화려한 옷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너도 이곳에 좀 있다 보면 곳 이런 것들이 예쁘게 보일 거라 하셨다.
멕시코에서 생활하다 보면 친구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많은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홈파티를 자주 한다. 우리나라는 보통 초대한 집주인이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파티에 초대받으면, 손님들은 각자 파티에서 먹을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 가야 한다. 집주인은 보통 장소와 술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우리 집에서는 'guacamole'와 ‘Pollo en chile rojo’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과카몰레는 아보카도에 양파, 고추, 고수를 잘게 썰어 으깬 뒤 리몬(레몬) 즙을 섞은 요리이다. 과카몰레를 다 만들고 그위에 리몬 즙을 뿌려 주고, 아보카도 씨와 함께 두면 변색이 덜 되어 보관하기 좋다고 한다.
pollo는 스페인어로 닭을 뜻한다. Pollo en chile는 잘게 찢은 닭고기에 여러 종류의 칠리소스를 넣고 졸인 음식이다. 두 요리 모두 이곳에서 타코의 속재료로 많이 쓰인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마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이 아닐까 싶다. 멕시코 음식들은 대체로 짜거나, 매운 요리들이 많다. 가끔은 너무 짠 요리들도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내 입맛엔 대부분의 음식들이 맞았다. 한국 음식들도 워낙 짜고 매운 것이 많아서 그런가, 이곳 한국사람들 대부분은 그래도 멕시칸 음식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 한다.
우리 가족을 독립기념일 파티에 초대한 집은 사촌 동생의 친구네였다. 3명의 친구를 초대했고,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스무 명이 조금 넘게 모여서 놀았다. 우리는 '남미 타임'에 맞춰서 조금 늦게 갔지만, 역시나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우리 가족들이었다.
집주인 가족들과 다른 손님들이 올 때까지 응접실에서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기다리는 동안에도 술을 마시겠냐는 권유를 받는다. 뭐 마실래요? 맥주? 데낄라? 하고 집주인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술을 가져다준다. 나는 데낄라를 받았다. 많이 마셔본 적이 없다고 하니 천천히 마시라며 웃으며 격려해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반응이 궁금한지 다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봤었다.
파티는 뒷마당에서 진행되었다. 뒷마당에는 커다란 천막과, 테이블, 의자가 세팅되어 있었다. 외국 영화에서 흔히 보던 결혼식 피로연과 같은 천막이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손님들이 가져온 음식들과 집주인이 준비한 술들이 세팅된다. 파티 동안에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마시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으면 된다.
이모는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멕시칸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준비된 술은 스무 병 가까이 있었고, 전부 독한 위스키, 진, 데낄라 등이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파티의 주된 목적은 대화를 즐기는 것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술이 많고, 독하다 해도 밤새도록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마시기 때문에 술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냥 다들 술이 쎄 보였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한참을 놀며 밤을 지새운다. 거의 자정이 되어가자 집주인 아저씨가 마당에 빔프로젝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궁 발코니로 영부인과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대통령은 먼저 독립 영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만세를 외친다. 예를 들어 vivia 이달고! 하고 외치면 사람들이 따라 viva! 를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설치된 스크린으로 다 같이 대통령과 함께 'viva mexico(멕시코 만세)'를 따라 외쳤다.
아주 멋진 전통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멕시코에서는 웬만한 광장에 가면 독립영웅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길거리 이름, 도로 이름도 독립영웅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 많다. 거기에 독립기념일에 이렇게 한 명씩 이름을 외치며 기리기까지 한다.
만세가 끝나면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대통령궁뿐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면 이날은 각지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운 좋게도 우리를 초대한 집이 한 투우장의 바로 옆이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뒷마당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사용되는 불꽃 역시 멕시코 국기를 상징하는 초록, 빨강, 하얀색이 대부분이었다.
원래 이날 멕시코 사람들은 거의 밤새도록 함께 논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식구들은 너무 피곤해서 새벽 2시 즈음에 집으로 돌아갔다. 운 좋게 시기가 맞아서 이렇게 멕시코 사람들과 독립기념일 파티를 함께 즐겼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멕시코에 대해 너무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타코와 데낄라가 전부였다. 나는 멕시코를 마치 70년대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사막의 선인장만 있는, 그런 낙후된 곳을 상상하곤 했었다. 게다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에 장벽이 설치되고, 마피아와 관련 범죄 기사를 볼 때마다 그 왜곡된 상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초대받았던 집의 파티는 정말 성대했었다. 한 번은 이모에게 친구들이 내가 이곳에 온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했었다고, 그런데 여기와 보니 사람들도 친절하고, 동네도 너무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모는 '네 친구들은 멕시코 하면 위험하고 가난하다고만 생각하지?' 하며 혀를 찼었다. 나는 그 말에 얼굴이 벌게졌다.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오늘 독립기념일의 밤을 함께 보내고 나니 이 곳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부럽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나도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꼬박꼬박 걸곤 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어느새 나라에 대한 자랑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원망이 생기곤 했다.
작년에 교양 한국사를 가르치셨던 교수님 한분이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시고, 늘 챙겨주시려는 것이 보이는 좋은 분이셨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시면서 '저도 알아요, 많이 힘들 거라는 거'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역사를 공부하면 본디 나라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채워지고, 힘이 나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역사는 공부하면 할수록 다들 힘 빠져한다는 것이 보인다고 하셨다. 이것은 식민 사관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평생을 한국사를 공부를 해오신 교수님도, 이것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 학생들도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수업을 마치셨다.
사실 힘을 빠지게 하는 것은 역사보다 현실이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폐지를 주으며 살고, 친일파의 후손은 아직도 그 자산을 누리고 사는 그런 현실. 참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https://youtu.be/yL5 oA-0 vxj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