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인테리어 사무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9개월의 터무니없는 이력이 주황글씨처럼 남았다. 면접을 보면 의심 어린 눈초리가 이어진다. “9개월 만에 그만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고민하는 척, 고심하는 척 입을 연다. “회사의 지향점과 제 지향점이 맞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 회사에서 신입이 감당하기엔 과도한 몫을 떠안은 채, 성과라고 부를 만한 경험을 쌓기 어려웠다는 말은 삼킨다. 제정신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는 말도 아주 젠틀하게 눌러 담는다. 썩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는지, 대표는 연신 고개만 끄덕인다.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이력서용 나’만 남는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팀워크를 중시하며, 밝고 긍정적인 사람. 그 말들은 모두 진심이지만 동시에 내 진심을 완전히 담지 못한 문장들이다. 하루의 대부분은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고치고,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데 쓰인다. “혹시 이번엔 연락이 올까?” 하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고, 불합격 메일을 확인한 뒤 “괜찮아, 다음엔 더 잘하자”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취업 자체가 목표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 말이다. 그럴 땐 그냥 멈춰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작업을 멈추고 써 놓은 이력서를 백 군데에 뿌려야 한다. 기회는 우연처럼 내 앞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백 번쯤 문을 두드렸을 때 비로소 열어주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내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내가 조금씩 보인다. 누군가에게 일은 그저 돈벌이의 수단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수단이기만 한 일에 하루 아홉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취업 준비는 결국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과정이다. 그 답은 완벽한 자기소개서 문장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시도와 지원서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자소서를 연다. 다시 한번 내 이름을 쓰고, 다시 한번 가능성을 건다. 가끔은 내가 대단하다고 느낀 누군가가 내 이력서를 보고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그들은 나를 데려가지 않았지만, 그런 작은 인정 하나로 또 다른 곳에 지원할 힘이 생긴다. 언젠가 나와 마음이 맞는 회사에서도 같은 말을 듣는다면, 그곳에서는 스스로를 증명하느라 애쓰는 대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조금 더 즐겁고, 덜 지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