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력서를 사정없이 뿌렸다. 최근 연달아 불합격 메일을 받던 중, 같은 회사에서 메일 두 통이 동시에 도착했다. 하나는 ‘불합격’, 다른 하나는 ‘2차 전형 안내’. 순간 착각했다. 후자가 진짜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인사팀에 확인하니, 진짜는 불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년에 입사할 대형 회사 공개채용에 전부 1차 서류로 떨어졌다. 당연히 대비책으로 작은 규모의 건축 사무실에도 넣고 있지만, 오늘 같은 회사의 실수는 내 멘탈에 치명적이다.
아, 얼마나 좋은 곳으로 가려고.
대학 시절, 건축과 교수님과의 종강 파티에서 잊지 못할 말을 들었다. 나는 설계 교수님들을 참 좋아해서 항상 옆에서 깔깔이처럼 웃었다. 졸업설계를 마치고 나서 다 같이 취해 비틀비틀 움직였다. 그나마 멀쩡한 내가 교수님을 차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나를 뚫어져라 보셨다. 순간 혼날 것 같다는 강한 기분에 배시시 웃어넘기려 광대를 올리는 순간 교수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저 한마디로 10년 만에 직종을 바꾸느라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나는 네가 설계를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너는 창의적인 일을 해야 되는데.”
대학원을 실내건축 전공으로 졸업 후 가까스로 들어가게 된 인테리어 사무소에서 9개월 만에 뛰쳐나왔다. 열약한 환경에서 신입인 나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회사의 분위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썼다. 벌써 세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알바도 9개월은 여유롭게 넘겼던 내가 그 회사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퇴사 후 두 달을 집 밖을 나오지 못하다 이후 상담소를 다니며 조심씩 마음을 회복해 갔다. 정신이 분명해지자 처음 든 생각은 ‘씨발, 대체 얼마나 좋은 삶을 살려고 이러는 거야.’였다.
그 말은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의 일화를 들으며 마음에 새긴 한 줄이었다. 교수님은 해외 생활 중 출장으로 공항에 갔다가 비행기를 놓쳤고, 탑승구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때 한 노인이 다가와 사정을 묻더니, 자신에게 남은 다음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을 내어주었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건네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후 교수님은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문장을 되뇌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직감했다. 이 말은 언젠가 내 삶에도 필요한 문장이 되겠다고.
아니나 다를까 작년부터 올해까지 어쩐지 자주 내뱉는 문장이다. 불합격 문자를 받으면 얼마나 좋은 회사에 가려는지 화가 나다가도 기대가 됐다.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도 실패를 만나면 어김없이 허공에 흘려보낸 주문이었다. 얼마나 큰 성공을 하려고 이러는지, 너무 유명해지면 큰일이라며 벌써부터 마음이 붕 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 말은 당장에 주저앉은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문장임을 올해 들어서 깨달았다.
매년 경기가 좋지 않아 취업의 문턱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올해 유독 회사 문이 작아진 기분이다. 불합격 메일을 수십 통 받았지만, 그때마다 뱉는다. “얼마나 좋은 곳으로 가려고 이러는 거야.”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 혹은 위로 같기도 하다. 자기 합리화일지 몰라도, 그렇게 해서 현재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