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기 싫은 일의 연속이다.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틈틈이 하려면 인간의 생으로는 부족하다.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시간도 시기도 한정적이다. 인생의 효율을 위해 생각한 것은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두 개의 과를 다니고 두 번의 직종을 옮겨 본 결과 일은 결국 일일 뿐이었다.
과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종이 뭘까 고민했을 때,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알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기획과 계획’이라는 걸. 디자인의 전체 과정을 다 즐겁게 할 순 없었다. 게다가 작은 회사 특유의 비체계적인 구조와 거친 상사 덕분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일의 전 과정이 맘에 들 수 없다는 걸 체득하고 퇴사했을 땐 나는 이미 ‘갈대 같은 이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을 좋아한다.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로부터 ‘유별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스스로를 가정의 이방인이라 여겼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지만,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꺼낸 이후로 사람들은 내 편에서 공감해 주었다. 디자인도 같은 의미로 좋다.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누군가도 동일하게 느낄 때, 그 공간은 나와 이용자, 그리고 건축을 하나로 이어준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소속감을 좋아한다. 아직 그런 경험을 완전히 해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내가 건축을 한다면 분명 그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재료 삼아 더 좋은 공간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나 건축과 사람을 좋아하는 나를 어필하는 게 쉽지 않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도 어쩐지 겉만 번지르르해 보인다. 나는 그저 설계를 하고,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성실히 내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보람도 느끼고, 성취도 누리며, 가끔 혼나면 먼 산을 바라보고 칭찬받으면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일상을 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언제나 불안하다. 운동, 자격증 시험, 공부, 글쓰기 등 전부 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마감이 몰릴 땐 숨이 턱 막힌다.
돌이켜보면 나는 명백히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결과가 빨리 나올 수 있는 것들을 취미로 삼는다. 과정이란 계단의 무한한 참을 걷는 기분을 만들고, 한 계단 오르는 일은 천근만근이라 주저앉게 만든다. 설사 취업이라는 계단을 올라 일을 하게 되어도, 무수한 과정 속에서 나는 또 좌절하고 일어날 게 분명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벌써부터 고개가 푹 숙여진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위해 하기 싫은 일 313,246가지를 해야 하는 삶이 버겁다. 상상의 버거움이 나를 짓누르는 게 싫어, 과정도 사랑하려고 애써보지만 쉽지 않다. 결국 현재를 살자고 다짐한다. 인생은 여느 게임의 퀘스트처럼 끝없는 과정 투성이다. 그러니 현재가 지치고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이 힘겨운 삶의 연속 속에서 나를 수련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오늘은 계단의 참이 유독 기다랗고 끝이 없다. 하루만큼은 맛있는 저녁으로 나를 달래며 오늘을 마무리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