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다시 또 겨울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이사 온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지만 독일어 실력은 제자리다. 생각해 보면 베를린에 온전히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파리도 오가며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 라는 생각으로 유럽 여기저길 다녔는데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래서인지 아직 베를린이 온전하게 우리 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런 “익숙하지 않음”이 좋다. 이런 게 역마살이라고 하던데 꼭 나쁜 의미만 있는 건 아닌듯하다. 여행의 설렘이 매일의 일상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있는 걸 즐긴다. 아무리 해외생활이라 할지라도 “정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무겁고 지루하다. 그렇다고 나는 특출 나게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다. 단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미래를 위해 더 아껴두고 싶다.
반면 익숙해지는 과정을 즐긴다. 10년 전 교환학생으로 짧게 경험했던 베를린과 지금의 내가 사는 베를린이 너무나도 다르듯이 어떤 도시든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진짜 매력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동서가 나뉜 채로 긴 시간이 흘렀던 이곳은 그 독특한 배경에서 나오는듯한 자유로움이 있다. 파리에서 오래 살고 나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문화적 차이는 단순히 두나라 비교를 넘어서 유럽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 독일은 일 년 중 5개월이 겨울이라는 농담도 살아봐야 공감할 수 있다. 긴 추위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매력적인 일이다. 벌써 11월, 크리스마스 준비에 진심인 베를리너의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