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년간 매년 근로소득 세금을 내 온 13년 차 직장인이다.
'90년생이 온다' 책의 존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에게 선물하여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3번째 직장에서 나는 5~6살 어린 91~92년생 친구들과 개그코드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로 내 또래의 동료들보다 더 친하게 지냈는데, 내 기준으로 그 친구들이 과하게 활발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질 때마다 자주 "너희 92년생들은 진짜 극혐이다..."라고 한숨 쉬곤 했다. (진짜 친해서 한 농담이다)
후에 저 책이 막 나왔을 때, 그중 한 명이 이것보고 자기네들을 공부하라며 서점에서 표지를 찍어 보내줬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뭐라니?" 하며 콧방귀를 뀌었었는데, 책이 유명해지고 밀레니엄 세대가 주목을 받자 슬그머니 회사에서 이 책을 대여해 읽었었다.
봤던 책도 까먹고 다시 대여하는 일이 잦은 나에게, 작년에 읽은 이 책의 내용들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면서 "맞아 딱 걔네들이네"라고 동의하면서 읽었던 것은 뚜렷이 기억난다. 시대가 바뀌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시대를 바꾸는 주체는 사회 조직원들이고, 90년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하나둘씩 변해가는 조직 문화가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불편하고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INFJ인 나의 첫 직장은 나 같은 사회 초년생이 많은 회사였다. 경력직보다 신입을 많이 뽑는 회사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장점 : 또래의 동료들과 금방 친해져 회사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단점 : 다른 회사의 규칙을 모르니 권력자가 만든 규칙에 (고분고분) 따른다.
나는 첫 회사에서 이 장점과 단점을 원 없이 누렸다.
고맙게도 나를 챙겨주는 2~3살 많은 언니들과 난생처음으로 스키장, GMF도 가보고 일본 여행도 갔다.
과장님이 퇴근할 때까지 눈치 보며 자리에 묵묵히 앉아있었으며(보통 밤 9시까지)
회사 막내였으므로, 2년 동안 대표님방 청소와 난초의 생명까지 담당했었다.
두 번째 회사는 첫 번째 회사보다 더 작은 규모의 회사였는데 첫 번째 회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다행이라면 난 경력직으로 들어온 주임이었으므로 대표님방 청소와 물 주기는 다른 이의 몫이었다.
그리고 30살에 입사한 비슷한 규모의 세 번째 회사에서 만난 92년생은 이런 말을 했다
"왜 물을 제가 줘야 하죠?"
맞다.
왜 회사마다 화분이 그렇게 많은지, 구매한 건 권력자들인데 정작 원예활동엔 왜 관심이 없는지, 그리고 왜 그 역할을 막내들에게 일임하는지 그제야 의문이 생겼다. 막내들은 이 의문을 자기 머릿속에서만 가지고 있지 않고 공기 중에 뱉음으로써 막내 담당이 아닌 1인 1 화분 담당 체제로 바꾸었다.
만약 내가 7년 전으로 돌아가 첫 번째 회사에서 저런 발언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누구한테든지 어디로든 불려 가서 내 정신이 온전한지 감정받았을 것이다.
7년 동안의 새로운 구성원이 기존 구성원의 생각까지 영향을 주었고, 결국 체제도 바꾸었다.
화분으로 모든 임직원들이 쾌적한 사무실을 누린다면, 화분관리의 책임 또한 나눠야 하는 것이다.
80년생인 내가 "화분에 물 주기는 막내의 역할"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90년생들은 왜 그래야 하며, 그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줬는데 그 계기로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가?" "합당한가?"를 고려하게 해 줬고 그로 인해 내 사회생활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 여담
대표님 담당의 화분이 바로 내 자리 옆에 있었는데, 대표님 이름표가 있다는 이유로 거의 2년 넘게 내 욕받이를 해주었다. 좋은 음악과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은 식물이 잘 자란다던데, 그 화분은 공감능력이 컸는지 내 욕을 먹고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