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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Aug 02. 2019

제조기반 패션기업이 IT를 바라보는 불편한 현실 #1

사장님, 아무 일도 안 하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두어 달을 쉬다 보니 슬슬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엄습함이 나를 조여 온다.


 무엇을 해야 할까... 처음에는 브런치에 글이라도 써볼 요량이었지만,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남들만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업(業, Job)에 대해서 넓고 깊은 관심을 갖는 편도 아니라서 주제가 매우 제한적이고 주관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두어 번 고민하다가 접었다.


 그러다 최근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고, 지난 세월에 대한 회고를 해보자 싶어, 내 경력을 정리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고자 오랜만에 파워포인트를 열었다. 그런데 음. 만들긴 만들었는데... 머릿속 생각이 잘 정리가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역시 PT는 놀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빨리 준비를 해야 할 때 시간에 쫓겨서, 몰려서 만드는 게 제 맛이다.


 할 말은 많은데 또 많이 쓰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게 작성하자니 신입사원 포트폴리오도 아니고... 화려한 도표나 도형을 넣어야 될 것 같기도 한데, 내실 없는 그런 테크니컬 한 내용은 스스로 즐기는 타입도 아니고. 암튼 어렵다.


 많은 내용을 담기 어렵다 보니, 내용은 자연스럽게 추상적이거나 혹은 "나 할 수 있어요!"를 반복하는 초등학생 웅변 원고처럼 되어버렸다. 어쨌든 만들긴 만들었으니 누군가에게 보여는 줘야 할 것 같은데, 누구한테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막막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그냥 생각나는 기업 혹은 관심 있던 브랜드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괜찮다 싶으면 내 웅변 자료를 보내보고 있다. (물론 회신율은 매우 낮다ㅎ)


 다들 확인은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알 길은 없지만 몇몇 CEO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지난주에 상장사 CEO 및 임원 두 분과 티타임을 했고, 오늘은 상장사는 아니지만 수천억 원 규모의 매출을 유지하시며 제법 내실 있는 운영을 하고 계시는 전문 경영인 한 분과 약 1시간 반가량 독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표본 모수(population parameter)가 적기는 하지만 이 분들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내가 느낀 부분의 일부를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나는 패션 비지니스&마케팅을 전공했고, 실제로 내 경력의 절반은 온라인 MD였다. MD가 뭐하는 직업인가? 흔히 말하는 고객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찾고, 그 상품을 '잘' 판매하는 포지션이다. 이제는 데이터와 기술이 만나 각 플랫폼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되는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적절한 데이터가 쌓이기 전까지는 어쨌든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많은 만큼, 여전히 패션업 혹은 온라인 유통업 종사자들은 MD라는 직업에 기대를 걸며 살고 있다.


 나의 경우, MD로 시작을 했지만 물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IT기반의 '서비스'에 발을 딛게 되었고 이제는 콘텐츠(상품, UIUX디자인, 브랜딩, 마케팅, 이런저런 기획)를 두루두루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딱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작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그 어렵다(?)는 스타트업 회사를 4년 이상 경영하며 생존해봤던 사람으로서 각종 실무와 운영의 경험을 두루 갖춘 인재임은 틀림없기에ㅋㅋ 패션과 IT를 결합하여 제3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각설하고, 어쨌든 이 조합으로 난 요즘 제조 기반의 패션회사들의 온라인과 모바일 상황을 두루 살피며, 혹시 내가 낄 틈이 있는 자리는 없는가... 둘러보고 있다.


참고로 재미로 쓰는 글은 아니니, 재미는 없을 수 있다. (핑계고, 사실 지루하지 않게 글을 쓰는 법을 잘 모른다.)

 



#사장님, 아무 일도 안 하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데이터 1편]




 놀랍게도,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여전히 제조 기반의 패션회사들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잘 모른다. 물론 과거만큼 온라인을 등한시하지는 않지만, 옷을 직접 만들어서 오프라인(백화점, 면세점, 로드숍 등) 유통으로 성장해온 회사들은 여전히 온라인 사업부서에 대해 호불호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보통은 '비용 투입 대비 회수(ROI)'에 대한 걱정이 제일 크지만, 사실 비용 대비 회수보다는 본인들이 잘 몰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것 같다.


우리나라 오프라인 제조기반 패션 상장사 상위 (출처:패션비즈)


지난주와 오늘, 패션회사 임원분들을 만나기 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세 가지 생각뿐이었다.


데이터(DB)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재고는 어떻게 관리되고 유통되고 있는가

온라인/모바일 마케팅(콘텐츠)을 총괄하는 별도의 부서가 있는가


 결과적으로, IT 종사자들, 놀라지 마시라. 셋 다 없다.ㅎㅎ 대부분의 제조 기반 유통회사들은 위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해서 매우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으며 '알아서 잘한다'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파고 들어가 보면... 정말 없다.


 대다수의 패션 기업의 시스템 구축, 개발 관련 상황은 외주업체에 일임을 해두었고, 마케팅 총괄 책임자는 쌍팔(20세기)년도부터 20세기의 맛만 본 시절(2000년대 초중반)에 브랜드를 브랜딩(Branding, 브랜드를 포장하고 알리는 행위)을 했던 분들이 담당하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 디지털 마케팅으로 일컬어지는 IT 관련 마케팅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그분들도 키워드 마케팅이 뭔지, 리타켓팅이 뭔지, 왜 해야 하는지는 다 알고 있지만, 스스로 자기 돈 써가면서 일을 해본 경험은 거의 전무한, 대행사를 통한 관리 경험만 수두룩한 직장인일 뿐이다. (물론 대행사를 주로 다뤄본, 혹은 대행사 출신 온라인 마케터들이 전부 맞다는 건 아니다. 온라인 마케팅을 업으로 삼지만, 브랜드/상품 등의 직접 실물을 경험해본 마케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 IT 가이들이 보는, 혹은 스타트업 종사들이 보는 온라인 마케팅은 어떤가? 물론 우리는 (IP)TV나 신문 지면 광고에 익숙하지 못하다. TV나 케이블방송 광고대행사들과 협상을 할 때, 적절한 가격이 얼마인지, 이 조건이 맞는 것인지 사실 난 잘 모른다. 물론 몰라도 업무(=실무라기보다는 의사결정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는 할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곧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경험은 '인지'의 개념이고 인지는 '이해와 공감'의 영역이다.


 단기간에 배워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험의 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과 머리가 따라가는 현상이다. 그런데 90년대, 2000년대 브랜드를 PR의 관점에서 릴리즈 했던 사람이 '온라인 디지털 마케팅' 총괄(혹은 겸업)이라는 건, 글쎄...


 아, 누군가를 저격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길. 그냥 매출 몇 백억 이상 하는 회사, 그리고 그 회사의 온라인 마케팅 상황(포털 내 액션 상황, 블로그 운영, SNS 운영, 커뮤니티 운영 등)을 둘러보다가, "어? 왜 이렇게 밖에 안되지?"라는 생각이 들어 마케팅 총괄이 누군지 살펴보면 보통 2002년 **전자 마케팅 담당, 2008년 **아웃도어 마케팅 부문장, ***스포츠웨어 마케팅 총괄 같은 공통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다시 각설하고ㅋ


위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우려와 걱정에 대해 우선 '데이터'와 관련된 한 가지를 사례를 들어보겠다.


나 "대표님, 현재 DB, 그러니까 고객이나 구매관리 데이터베이스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으십니까?"


회사 "아 그런 건 다 잘하고 있어요~ 내가 (기술적인 것까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데이터 수집을 몇 년 동안 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건 그렇고 머닝러신을 통한 AI? 이런 거는 어떻게 하나요?"


나 "대표님, 외람되지만 사실 지금 그러한 기술적인 측면을 말할 상황은 아닌 거 같고, 우선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있는지, 서버의 관리나 온라인과 모바일 관련하여 어떤 업무들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회사 "구체적인 건 나는 잘 모르지만, 데이터를 계속 수집하고 있어요."


나 "그럼 혹시 데이터를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기준으로 아카이빙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회사 "그건 잘하고 있어요. 나도 AI, 옴니채널이니 (하는 것들) 알고 있고, 강의도 하고 있어요. 과거에 상품 추천은 어떻게 했나요?"


나 "우선 상품 추천은 무엇을, 누구에게, 왜 추천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 추천에 맞는 자료들을 정리합니다."


회사 "어떻게 정리하나요?"


나 "우선 엑셀로 정리합니다."


회사 "(겨우) 엑셀이요? 제가 알기로는 엑셀보다 더 고급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던데"


나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는데, 우선 엑셀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대표님 지금 **** 온라인 운영 상황에서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수집할 만큼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은데, 어디서 어떻게 데이터를 취합하시나요?"


회사 "아 그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들이 구매한 데이터가 있어요. 그걸 토대로 분류해서 SMS도 보내고, 관리도 합니다."


나 "그걸 별도로 DB에서 분류하고 아카이빙을 하시나요?"


회사 "그건 잘하고 있어요"


나 "혹시 회사에 자체 서비스 기획, 개발 인력이 얼마나 되나요?"


회사 "자체 인력은 없고, ******에 외주로 운영하고 있어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해봤는데,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면서도 이게 내가 경험한 '실화인가' 싶다...ㅎ


 사내에 기획과 개발 관련 자체 인원이 없는 상태에서 외주 운영만으로 자사몰을 운영하고 DB를 구축하고, 상품 추천과 같은 고급 기술을 고민하고 있는 회사라니. 순간 난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굉장한 회의감이 들었지만 처음 하는 경험은 아니기에 웃으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웃지 않았나...)


 아무튼 저 대화 속에는 아주 많은 정보들이 숨어있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과 모바일 유통 산업의 본질적인 이해와 공감보다는, 책으로 보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를 취득하고, 외주업체들이 연간 몇 억, 몇 십억짜리 사업제안서를 검토한 '경험'으로서의 그들만의 전문성을 마주하는 현실이다.


음.


쓰다 보니 장황하게 길어졌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되지ㅋ


이 대화 내용에 대한 분석은 자고 일어나서... 슝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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