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원 Nov 11. 2024

3. 1원도 틀리면 안 돼

1부. 9급 1호봉

3. 1원도 틀리면 안 돼  

   

    무언갈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무언갈 아는 것 같긴 한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는 것도 같고 이렇게 하는 것도 같은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바로 내가 사대보험을 납부하며 들었던 근심의 변천사다.     


    사대보험 즉, 건강·국민·고용·산재 보험과는 무관한 삶을 꽤 오랫동안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한창 할 당시에는 요즘처럼 사대보험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일한 시간 × 시급으로 계산한 만큼 월급을 받았다. 20대 후반에 들어간 직장에서 처음으로 사대보험에 가입했다. 월급에서 매달 꼬박꼬박 공제되는데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원래 공제하는 거겠지, 세금 같은 거겠지, 라며 넘겼다. 얼마나 무지했냐면, 내가 매달 납부하는 국민연금이 추후 65세 이후 국가에서 받게 될 연금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급여 자리’에 처음 임용되고 얼마나 멘붕이 왔었겠는가.  




    학교에서의 급여 작업 기간은 보통 1일부터 8일까지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1일 자로 발령받으니 신규는 가자마자 급여 작업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전임자(이하 계장님)가 같은 학교에 계셨으므로, 급여를 마감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다른 학교로 간 전임자를 동아줄 붙잡듯 잡고 매달리거나, 인근 학교의 급여담당자에게 연락하거나, 동기 중 먼저 발령 난 사람들에게 물어서 어찌어찌 해결해야 한다. 이 최첨단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장을 위협하는 시대에 참으로 원시적인 방법이 아닐 수가 없지만, 하라면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급여 작업을 마무리해서 지역의 교육지원청으로 자료를 보낸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세금과 사대보험 납부 날이 다가온다. 매달 10일, 급여 마감 이틀 뒤가 바로 납부 마감일이다. 

    학교의 예산을 산정할 때, 확정된 세입(수입)이 아닌 일시적으로 수입을 잡은 뒤, 가까운 시일 내 반환해야 하는 돈을 맡아두는 통장이 따로 있다. 세입세출외현금, 줄여서 세외 통장이라고 하는 것인데, 근로자에게서 걷은 세금이나 사대보험이 대부분이므로, 보통 급여담당자가 관리한다. 매일 아침 통장 잔액과 에듀파인이라는 학교 회계 시스템의 세외 잔액을 맞추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던 계장님을 좇아하던 중,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건 또 뭐야….’     


    왜인지 삼천만 원 상당의 돈이 입금됐다. 내가 또 뭔가 잘못했구나. 망했다. 처음엔 급여 마감을 잘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실수를 했길래, 저 뜬금없는 금액이 세외 통장으로 들어왔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내 믿을만한 동아줄, 계장님께 SOS를 청했다.      


    “아, 벌써 돈이 들어왔군요!”     


    계장님은 마치 아침에 양말 신는 걸 깜빡했다는 투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제야 쿵쾅대던 심장이 잠잠해졌다.      


    “지원청에서 교직원 세금이랑 사대보험 돌려준 거예요!”

    “…네?”

    “지난달 급여에서 걷은 세금이랑 사대보험을 지원청에서 돌려주면, 우리가 납부하거든요~”

    “우리가요?”     


    이제는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세금이랑 사대보험은 자동으로 세무서에서 가져가는 거 아니었어? 그걸 급여담당자가 걷어서 납부하는 거라고? 마치 귀여운 곰 인형 탈이 벗겨지고 건장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이건 공무원이랑 기간제교사 거, 이건 기타급여4 개인부담금, 이건 기관부담금이에요~”     


    개인부담금은 뭐고, 기관부담금은 뭐지. 교육공무직 급여 체계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건 알겠는데, 왜 그중 하나인 기타급여4의 공제금만 들어온 거지? 나머지는 어디 갔을까. 의문은 산발적으로 튀어 올랐고, 계장님은 다행히 설명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으므로 차분하게, 그리고 장황하게 설명해 주셨다. 워낙 사전지식이 없다 보니 그런 감사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채 10%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세 뭉텅이로 들어온 각각의 돈은 하나하나 그 쓰임에 맞도록 쪼개서 수납해야 했다. 계장님은 친절하게도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하게 알려주셨고, 나는 그녀의 아바타가 되어서 하라는 대로만 했는데도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 덩어리는 무려 열세 개의 덩이가 되어 있었고, 어떻게 첫 달의 세금과 사대보험을 납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사대보험은 내 초과근무의 주범이 되었다.      



 

    고지서와 사대보험 수납금이 맞지 않아서, 통장과 에듀파인의 잔액이 맞지 않아서 고생할 때마다 계장님께서 같이 초과근무를 해주시고, 실장님께서 사대보험 납부 마감날 결재와 결제를 해주시느라 늦게 퇴근하실 때마다, 자기 효능감이 박살 나고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사대보험은 기간 내에 납부하지 못하면 과태료가 부과됐다. 과태료는 담당자 과실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 예산에서 납부할 수 없고, 사비로 납부해야 한다.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차라리 과태료를 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게 설령 내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정도로 포기 상태였던 나를 계장님은 끝까지 이끌어주셨고, 독려해 주셨다. 실장님은 실수를 해도 절대 혼내지 않고, 처음에는 다들 그런다며 토닥여주셨다. 덕분에 힘을 얻어 임용 이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혼자 세금과 사대보험 납부를 도전했다. 그리고 또다시 심장이 지구 내핵까지 떨어졌다.      


    ‘왜 몇십 원이 안 맞지?’     


    납부액과 세외 통장 잔액이 맞지 않았다. 몇천 원도 아니고 몇만 원도 아니고 몇십 원이…. 언젠가 드라마에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꾹 참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여자 주인공이 고작 유리병이 안 열려서 무너져 내리던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 접한 일이라 낯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고작 몇십 원 때문에 무너져 내렸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어딘가로 영영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게 뭐라고 날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나 원망스럽고, 이런 것조차 못 하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서른이 넘어서 어린아이처럼 일을 못 하겠다고 뛰쳐나갈 수도, 해결도 못 하면서 혼자 몇 날 며칠 땅굴만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다시 계장님께 구조신호를 보냈다. 혼자 몇 시간을 헤매던 문제는 계장님의 십 분으로 해결됐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원절사’가 문제였다. 요컨대 원 단위의 금액은 삭제시킨다는 말이었다. 각 공제액의 원 단위 금액이 원절사를 거치지 않은 채 더해졌고, 그렇게 나를 무너트렸던 몇십 원이 된 거였다. 계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사후 처리를 하고 그렇게 그달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런 업무를 매달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게만 느껴졌다.      



    원 단위도 틀리면 안 되는 융통성 없는 직군이라 이직을 결심했다가, 녹록지 않은 취업 시장에 몇 달만 더 버텨보기로 하고 나서,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머리가 나쁘면 손이라도 고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교직원 한 명 한 명의 고지서 내역을 엑셀로 정리하며 비교했다. 사대보험 처리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났고, 납부 날이 오면 그날 하루는 오직 거기에만 매달려야 했지만, 이왕 하기로 했으니 언제까지고 계장님께 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또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서는 뒤죽박죽이던 엑셀을 정리하고 바꿀 수 있는 주변이 생겼다. 

    그리고 이 년이 넘은 지금, 이제는 머리로 이해하고 손은 쉬고 있냐고 하면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처음보다는 이해도가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사대보험 연말정산 때나 각종 정산금이 고지되는 등의 비일상적인 상황이 닥치면 버벅대기 일쑤다. 대신 업무속도가 확연히 줄었다. 고생이 적응된 손 덕분이다. 고지서 내역은 여전히 한 명씩 확인하지만, 훨씬 빨라진 손과 깔끔하게 정리된 엑셀은 업무시간을 줄여주는 데 한몫했다. 왜 같은 신체 기관인데도 하나는 영 발전이 없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하나라도 빠릿빠릿한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안하는 수밖에…. 오늘도 근로자의 사대보험 내역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납부를 준비한다. 이제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해진 내 월급의 안위를 위해서, 기한 내 납부를 목표로!  

  

이전 02화 2. 돈 주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