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원 Nov 04. 2024

2. 돈 주는 사람

1부. 9급 1호봉

2. 돈 주는 사람 

  

    교육행정직은 보통 교육지원청, 직속 기관, 학교로 발령받는다. 대부분 학교 행정실(정식 명칭은 교육행정실)로 가게 되는데, 그중 공립 비율이 높은 초등학교로 주로 발령받는다. 학교 규모에 따라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인원이 정해지고, 교육공무직원을 포함하여 적으면 셋, 많으면 대여섯 명이 함께 일하게 된다. 신규 발령자의 업무는 높은 확률로 ‘급여’다. 매달 전 교직원의 급여를 작업하고, 세금 및 사대보험을 관리하는 게 주 업무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수포자였다. 아니 현재진행형이니, 수포자이다라고 해야 맞을까? 어디선가 읽었는지, 누군가에게 들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교육행정직의 꽃은 회계라고 한다. 나는 단순한 연산도 계산기를 두들겨야 하는 사람인데 무려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의 회계라니, 잘하고 말고를 떠나 내가 과연 할 수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단위가 앙증맞은 내 가계부처럼 천 원, 만 원 단위가 아닐 게 분명하니 말이다.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에 세무·회계 학원을 알아보고 상담까지 받았다. 한 교육행정직 선배 블로그에서 ‘다른 것보다 엑셀만 잘하면 된다’라는 글을 본 뒤, 최종적으로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매주 2회씩 엑셀 수식을 연습했고, 한글로 작업을 하고, ppt도 만들었다. 문제집 뒤편의 한글 단축키 모음집은 찢어서 언제든 볼 수 있도록 공책에 붙여놓았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말은 진리다. 거주지와 먼 곳으로 발령받은 대신, 무려 다행과 천행인 점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규모가 꽤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시설 주무관님 포함 총 다섯 명이 근무하는 행정실에서 일하게 됐다는 건 신규에게는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예산관리는 실장님이, 계약과 물품은 계장님이, 지출과 수입은 주무관님이 맡으신 덕분에 오로지 급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자리는 무려, 전임자가 차석(계장)으로 발령받은 자리였다. 내가 맡은 업무를 이미 해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천행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설령 계장님이 쌀 한 톨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곁에서 숨 쉬고 계신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얻는 그런 일이었다.

    다행과 천행이 합쳐진 자리였어도, 업무가 할만하지는 않았다. 학교의 살림을 꾸리는 건 다른 분들이 한다고 해도, 급여 업무란 무릇 개인이 살림을 꾸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굉장히 민감한 일을 정해진 기한 안에 정확히 해야 하는 업무여서, 매번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섰다. 급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그것이 가진 성질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는 다원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교사인 교육공무원, 나와 같은 지방직 공무원,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공존하고 있었다. 급여에서는 이 분류가 굉장히 중요한데, 각자 적용받는 보수 및 복무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공무원이어도 직렬에 따라 수당체계가 달라, 처음엔 수당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진을 뺐다. 40명이 넘는 공무원의 급여 내역을 파악해 두고, 지난달과 이번 달의 수당 내역을 일일이 비교하는 게 가장 좋다고 계장님이 말했을 때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많은 사람의 무수한 수당을 매번 점검해야 한다니, 그걸 3~4일 만에 해내야 한다니, 안 그래도 숫자만 보면 눈이 빙글빙글 도는데…. 아무래도 직렬을 잘못 선택했다 싶었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교육공무직원의 급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극 초반에만. 

    우리 학교의 13명밖에 안 되는 교육공무직원은 총 5가지의 직종이 혼합되어 있었다. 다른 학교는 직종이 더 다양하니, 이것도 행운 중 하나였다. 다행히 직종이 많은 것 치고는 임금 체계가 비슷했다. 문제는 자주 개정되는 임금 협약과 역시나 수당이었다. 학교로 발령받은 후, 2~3개월에 한 번씩 임금 협약이 개정되면서 임금 체계가 자주 변경됐다. 내가 일을 하고 있구나, 업무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인, 예를 들면 지침 등에 허겁지겁 끌려다니기 바쁜 느낌이었다. 더구나 수당 중 하나인 퇴직금, 근속 수당, 연차와 같은 요소들은 외계어인 것만 같았다. 급여 관련 연수를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머리가 새하얘졌다. 자기 효능감이 박살 난 채로, 난 이 직업과 맞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좌절하며, 이직을 고민했다. 그러나 물경력을 가진 30대가 다른 직장을 찾는 건 더 녹록지 않았다. 결국 딱 3개월만 참으면 할 만해진다는 주변의 말만 동아줄처럼 붙잡고 버티는 걸 선택했다. 




    3개월이 지나니 할만해졌냐고 묻는다면, 글쎄…. 할만해지진 않았어도, 해볼 만 해지긴 했다. 여전히 업무는 어려웠지만, 반복적인 일이다 보니 얼추 모양은 갖춘 형태가 나오기 시작했달까? 

    발령 전 하해와 같은 염려 속에서 받았던 컴퓨터 수업은 사실, 별 효과가 없었다. 학교에서의 엑셀 수식은 합계(SUM)만 잘 구하면 되고, 조금 복잡한 수식이 필요하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됐다. 그마저도 반올림(round), 조건(if) 함수 같은 기본 수식이 전부다. 한글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공책에 붙여놨던 단축키 모음집은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쓰는 단축키라곤 이게 전부

   

    어느 날 나와 친한 공무직원 중 한 분이 살갑게 말씀하셨다.  


    “돈 주는 주무관님이니까, 잘 챙겨드려야지~”     


    수포자이고, 회계의 ㅎ자도 모르는, 숫자 무지렁이가 학교에 들어와서 돈 주는 사람이 되었다. 세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원천세를 징수하고, 교직원의 연말정산을 도맡아 한다. 수많은 공무원 직렬 중 교육행정직을 선택했고, 그래서 교육학을 공부했지만 말이다. 요즘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공무원은 하라면 해야 한다고들 한다. 이처럼 생뚱한 상황 속에서 쓰기 좋은 표현이다.  

    

    급여 뭐 별거 있나, 하라면 해야지.


이전 01화 1. 왕복 4시간 출퇴근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