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9급 1호봉
1. 왕복 4시간 출퇴근 길
9월 1일 자 발령을 받았다. 최종 합격하고 딱 일 년 만이었다. 공무원 인사 시스템을 잘 모를 때였어도, 신규 공무원의 발령지가 험지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 경우엔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는 거리였으니, 이 정도면 거주지를 고려해 준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토록 고대하던 발령을 받은 내가, 세상을 장밋빛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기 인사 기간에 발령받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는 거주지를 고려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동기 중 하나가 경기 북부를 횡단하는 발령을 받았으니,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할 때마다 울컥한 마음이 치솟았지만, 바라왔던 공무원이 됐으니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평생 이렇게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 참을 수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러나 별 보고 출근하고, 달 보고 퇴근하는 날이 힘에 겨워지면 어쩔 수 없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왕복 4시간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자동차로 다니면 왕복 두 시간이면 될 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두 배나 더 걸렸다. 경기도의 도시들은 서울을 향한 접근성만 생각했지, 경기도 간의 연결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경기도에서 경기도로, 경기 북부에서 경기 북부로 가는 건데도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니 말이다. 처음엔 그럭저럭 다닐만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넘쳐흘렀기 때문에, ‘고작’ 출퇴근에 투덜거릴 여력이 없었다. 교육행정직의 꽃은 회계라는 말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내 사전엔 영영 없을 것만 같았던 숫자들과의 싸움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에도 생각보다 더 고단했다. 마감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용어조차 파악 못 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집에 10시, 11시 넘어서 들어가는 날이 잦아질 무렵 나는 탈이 났다.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듯이 몸이 아팠고, 열이 들끓었으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신규니까,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출근했다. 아프면 쉬라고, 일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해주신 실장님, 계장님 덕분에 임용된 지 두 달 만에 병가를 썼다. 원래도 한 줌이었던 내 체력은 쉽게 녹아내렸다. 일할 땐 업무에 집중하느라 아픈 걸 잊어도, 퇴근길에는 몸에 마치 100kg짜리 추를 매단 듯 천근만근이었다.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기절하듯 자고, 주말에는 산송장처럼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데도, 피로는 계속 쌓여만 갔다. 설상가상 통근길에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만난 직원 중 한 분이 그러셨다. 1호선은 지상 노선이 많아서 겨울이 되면 연착이 자주 되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로는 무섭다며 걱정했지만, 그게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겪게 될 일이라는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 외에도 세상에는 다양한 변수가 산재했다.
첫 번째 변수는 지하철 파업이었다. 무사히 출근은 했지만, 문제는 퇴근이었다. 그날 나는 세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지옥철은 애들 장난이었다는 듯이, 사람들은 한참 만에 온 지하철에 타려고 혈안이었다. 기진맥진한 채 집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고 서러웠다. 두 번째는 3호선의 지하철 사고였다. 역마다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 싶었는데, 역시나 막 서울을 진입하고 나서 지하철은 완전히 멈춰 버렸다. 처음엔 제대로 된 안내가 없어서, 막연히 다음 전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하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이건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다행히 근무지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날의 대장정은 지하철에서 시외버스로, 시외버스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3호선의 지하터널에서 불이 났다고 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힘들었던 출근길이 내 목숨값이었다고 여겨야만 소란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 사그라들었다. 세 번째 문제는 역시나 눈이었다. 지상으로 다니는 구간이 많은 1호선답게,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연착이 잦았다. 왕복 다섯 시간의 통근을 몇 번 겪은 뒤에,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총 3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차량 구매, 학교 근처 단기 임대, 면직. 작고 소중한 내 체력으로 왕복 4시간 통근은 무리였다. 그건 너무나 자명해서 4시간 통근 유지는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업무와 체력적 한계를 종합하여 감정적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아무래도 면직이 가장 매혹적이었지만, 현실과 타협하여 차량 구매와 단기 임대로 선택지를 좁혔다. 차량을 구매하자니 유지비가 부담되고, 단기 임대를 하자니 현재 사는 곳에 거주지가 있어야만 했다. 양쪽의 장단점이 명확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좋은 기회로 중고차를 구매할 기회가 왔다. 큰언니의 친구가 마침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래되긴 했지만 11만 킬로밖에 타지 않은 가족용 차가 있는데 가져가라고 했다. 기회다 싶어 덥석 잡았다. 고민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신속한 해결이었다.
처음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실장님은 면허가 있으면 차량 구입을 추천한다고 했었다. 업무 하랴, 출퇴근하랴 힘들 텐데,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 겸 신규의 면직 비율이 높은 직종인 데다, 이미 우리 학교는 결원이 있는 상태로 꽤 유지된 학교여서 더 내 피로도에 신경을 써주셨을 것이다. 그때 내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제가요? 제가 어떻게 차를 사요!”
최종 합격을 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1년 동안, 교육행정직 선배님들의 후기를 찾아다녔다. 나는 업무에 대한 정보를 얻길 원했는데 그것보다는 쉴 수 있을 때 쉬라는 조언이나, 운전면허가 없다면 그동안 면허를 꼭 따라는 권고뿐이었다. 오래전에 취득한 면허가 있었던 나는 쉬는 동안 연수를 두 번 정도 받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 월급에 차를 사겠어라는 마음이 근저에 있었다. 그랬던 내가 발령 5개월 만에 이 월급에 차를 샀다. 그리고 나도, 나처럼 발령을 기다리며 교육행정직 후기를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으니, 쉴 때 쉬라고. 요즘엔 거주지 반영을 최대한 해줘서 근처로 발령을 내주려고 하지만, 꼭 내가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으니, 할 수 있다면 면허를 꼭 따두라고. 미래에 대한 투자로, 혹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