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9급 1호봉
5. 50%의 친절
승무원은 내 오랜 꿈이었다. 덕분에 친구들이 학과를 고민할 때나 진로를 걱정할 때도 흔들리는 일 없이,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릴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승무원이라고 하면 극도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므로, 20대의 대부분은 서비스 직종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 때문인지 사회에서 접하는 관계 대부분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는 잘 웃었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썼으며,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MBTI로 치면 I(내향적 특성)로 태어나 I로 죽게 될 뼛속까지 I인 사람인데, 유독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만큼은 나를 E(외향적 특성)로 보곤 했다. 그러므로 승무원이 천직까지는 아닐지라도, 내가 적당히 버틸 수 있을 직업쯤은 된다고 여겼다.
마침내 승무원이 되었고, 역시나 그 세계는 친절의 정도도 시험을 보는 세상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선은 웃어야 했다. 상대의 기분이 상할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도록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토록 바라왔던 꿈을 이뤘는데도, 기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찰나였다. 승무원 생활이 버거워지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힘들었던 이유는 역시나 타고난 성향 때문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달래도, 하루에 300명 이상의 승객을 응대하는 게, 일상적인 대화조차 편하게 할 수 없는 유일한 외국인 승무원으로서의 비행이, 숨이 턱턱 막히도록 벅차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에는 오롯이 혼자서 무표정한 채로 고요함 속에서 머물며 재충전해야 하는데, 2인 1실인 회사 기숙사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24시간 내내 가면을 쓰고 있는 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이었고, 결국 오랫동안 앓아왔던 우울증이 심해져 상담을 받았다. 내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승무원보단 안정되고 규칙적인 직업을 갖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공무원을 떠올렸고, 바로 이직을 준비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극강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직업 중 하나다. 오죽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표어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걸핏하면 언급될까. 이직을 준비할 때도 이 부분이 걸렸으나, 안정된 환경이 너무나 필요했으므로, 최대한 사람과의 대면 업무가 적은 직렬을 준비하기로 했다. 많은 후기에서 나와 있듯, 교육행정직은 외부인의 민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몇 없는 민원은 주로 같이 근무하고 있는 교육공무원(교사) 또는 교육공무직원의 것이었고, 그마저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각별한 공손함도 요구하지 않아서, 비교적 가벼운 태도로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사람을 응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여겼어도, 나도 모르게 몸에 밴 태도들이 나올 때가 있었다. 아직 학교 근무가 낯설던 어느 날도 그랬다. 주무관님과 급식실로 가면서 복도에서 학생들을 마주쳤고, 아무 생각 없이 마주 인사하며 지나쳤다. 그러자 주무관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애들한테는 꼭 존댓말 안 해도 돼요~”
아, 내가 그랬구나.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아챌 정도로 무의식 중에 나온 습관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는 어떤 직업이든 필요하겠지만, 학교에서는 형식적인 예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괜스레 쑥스러워져 습관적으로 나왔다며 겸연쩍게 웃어넘겼다.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직원의 연말정산 업무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 회사에서도 시키는 대로 서류만 제출해 봤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잔뜩 긴장한 채였다. 나름대로 교육자료를 만들어 교직원에게 안내했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연말정산 혜택을 받으려면 부양가족의 소득은 얼마가 돼야 하는지부터, 방학 기간인데 꼭 서류를 내러 학교에 와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연말정산 환급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까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일일이 응대하는 걸 보던 실장님께서 퇴근길에 그러셨다.
“주무관님,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세무직 공무원도 아니고, 우리가 세법을 어떻게 알겠어요. 연말정산 서류를 받아서 세무서에 전달하는 것까지만 저희 업무예요.”
그 순간 지극히 당연하지만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 나는 세무직 공무원이 아니지.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 또한 친절에 대한 강박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 업무 외의 과다한 문의를 하면, 관련된 지침서를 안내하는 것으로 적당하게 대응했다. 또 언젠가는 계장님과 퇴근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교 근무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밝힌 적이 있었다.
“승무원 때보다 6~70%만 친절해도 돼서 너무 좋아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계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러셨다.
“그거에 반 만 친절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주무관님.”
아, 그러면 여기서 조금 더 빼볼까…? 그렇게 업무 내용과 전혀 관련 없음에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죄송하다’, ‘감사하다’와 같은 쿠션어들을 의식적으로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눈치를 한 번씩 덜어낼 때마다,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씩 덜어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전 직장에서 배운 태도 때문에 친절해진 건지, 아니면 내 개똥철학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나는 좋은 게 좋은 거고, 사회생활에서는 속내야 어떻든 일정량의 친절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함을 미덕으로 삼는 어떤 사람들은 내 이런 모습을 위선적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는 적당히 친절한 태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의 친절로 이루어진 가면을 쓴다. 어쩌면 이마저도 과할지도 모르겠다. 늘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고,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 라는 심정으로 출근하면서도 이런 말을 들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항상 기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