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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블로켓 Dec 16. 2019

나도 창의적인 체질이고 싶다

책으로 떠나는 탐사_마블로켓 북토크 No.4


디자인 회사 넨도(nendo) 대표인 사토 오오키는 일본의 스타 디자이너다. 손을 댔다 하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넨도의 접근법을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를 위트 있게 해결한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다가도,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면 오징어가 된 것 같은 자괴감.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괴감을 끌어안고 살 수는 없으니 부끄러운 면면은 드러내어 성토하고, 우리 업계에 달라져야 할 것들은 냉정하게 따져보기로 했다. 다음은 북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 시즌의 마지막 토크다.   




@넨도 디자인 / 사진출처 월간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는 체질


‘아이디어를 쥐어짜지 말고 아이디어가 나오는 체질로 만들어라’. 저자인 사토 오오키의 주옥같은 충고다. 아이디어 발상법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론상 다 맞는 얘기라 하더라도 체감도가 떨어지는데 반해, 사토 오오키의 ‘허무맹랑한’ 충고는 몸 쪽 꽉 찬 돌직구로 꽂힌다. 말로만 아이디어 운운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시선, 사소한 불편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발상법, 아이디어가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스케치는 자제하되 작은 메모들을 기록하는 습관 그리고 디자인한 제품이 놓일 상황까지 고려하는 주변 시력. 사토 오오키의 디자인은 보기만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한 발상이 숨어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사토의 디자인을 본 이후 비로소 ‘아, 여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라고 깨닫기도 한다. 도대체 아이디어를 내는 체질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뚜껑을 진화를 제시한 넨도 디자인/ 사진출저 브런치 @ideabulb/121


반 발 앞선 감각


광고를 만들던 시절, 서로의 아이디어를 점검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던 말이다. ‘소비자보다 딱 반보 앞서라.’ 소비자의 감각에 한 발이라도 뒤처지면 무난한 아이디어가 되어버리고 한 발 앞서 나가면 공감이 떨어지는 아이디어가 되기 쉽다. 반 보 앞선 아이디어일 때 호응을 얻기 쉽다. 말이 반 보라는 거지 4분의 3보 앞섰다고 해서 아이디어를 탈락시키는 건 아니다. 사토 오오키의 감각이 소비자로부터 반 발 앞섰다고 하기에는 너무 겸손한 얘기라 헛웃음이 나지만, 반 발 감각을 키우라는 말은 밑줄을 세 번 그을만하다. 순수예술 영역이라면 모를까, 소비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상업 디자인 영역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테니까. 

‘아무도 본 적 없다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토 오오키의 생각은 스티븐 잡스의 생각과 대척점에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는 순간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잡스의 생각 말이다. 그렇다고 사토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수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백 보쯤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축약해서 반 보 앞의 가시적인 결과물로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답정너로 끝나는 아이디어 미팅

@무지 하우스

아이디어를 쥐어짜느라 고생해본 경험들을 쏟아놓았다. 제품 디자인을 하는 한 참가자는 제품을 만드는 호흡이 너무 짧다고 하소연했다. MUJI의 경우 수많은 카테고리의 제품을 만들면서도 뭐 하나 허투루 만드는 법이 없다. 일반 소비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욕실용품을 어떻게 수납하는지, 세탁용품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꼼꼼힌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무지의 패브릭 수납함, 옷걸이, 디퓨저가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제품 개발이 연속선상에 있다. 펜을 만들고 펜을 담기 위한 필통, 필통이 놓이는 책상, 책상 옆에 놓이는 선반, 선반 옆에 있으면 좋을 소파 등으로 확장해가므로 억지가 없다. 예산 안에서 트렌드에 따라 빨리 만들어내고 납품일자를 맞추느라 부실한 제품을 시장을 내면서도 소비자가 호구가 되어 다시 사기를 바라는 염치없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짧은 호흡으로, 하던 대로, 예산이든 시간이든 데드라인을 맞추는데 급급한 과정을 마치면 새로운 아이디어는 고개도 내밀지 못하고 결과물은 답정너로 끝난다.


@무지 메뉴얼북 / 사진출처 브런치 작가 @kkw119 

게다가 MUJI의 매뉴얼 북은 유명하다. 제품 종류가 많으니 매뉴얼북도 두꺼울 수 있지만 입사를 하더라도 선임이 따로 말할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이미 오겹살 두께의 무지 매뉴얼 북은 계속 업데이트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카이빙에 약하다. 모든 제품의 아이디어 단계부터 제작 공정이 문서로 정리되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어디가 문제의 발단인지 트레킹 할 수가 없다. 작은 기업도, 큰 기업도 퇴사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카이브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이제라도 우리도 데이터를 정리하자고 하면 실무자들의 입이 댓 발은 나온다. 일하기도 바쁜데, 어느 세월에 정리를 하겠냐는 거다. 맞는 말이다. 클라이언트가 내일 당장 스케치를 보자고 하는데 지난 프로젝트를 정리하느라 야근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매뉴얼이 형식적이고 실무차원의 아카이빙이 안되어 있으니 아이디어가 연속성을 잃기 쉽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구어체의 남발이 될 때가 많다. 클라이언트가 오더를 줄 때도, 상사가 지시를 할 때도 뭉뚱그려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전에 그거 했을 때 말이야, 그런 식으로 그렇게 해보자고” 이렇게 지시대명사의 나열로 회의를 진행하다가는 회의가 끝나고 서로 다른 일을 하기 십상이다.



@무선 마우스 디자인

창의성은 일상에 있다 


모든 부모는 내 아이가 창의성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코딩을 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은 안되고, 자연에서 멍 때리기를 해도 안되고, 영화에 빠지거나 오래 음악을 듣는 것도 걱정한다. 학교에서 100점을 받아오는 스티븐 잡스가 되길 바란다고 할까?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데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가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내가 신뢰했던 교육기관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아이가 다녔던 불교 유치원이 그곳인데, 생각해보면 그곳의 커리큘럼은 혁신적이었다.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1분기당 하나의 주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봄’이라는 주제가 주어진 3,4,5월에는 봄 꽃을 조사하기도 하고, 봄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민들레를 색종이로 접기도 하고, 봄 채소들로 요리체험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다음 ‘몸’이라는 주제가 주어진 분기에는 남녀 몸의 차이를 배우기도 하고 몸에 관한 영어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기도 하고 부모님 발을 씻겨드리는 숙제를 내주시기도 했다. 아이의 발바닥과 나이 든 부모님의 주름진 발바닥을 비교해보는 체험이랄까? 내 기준에 가장 창의적인 학습은 이때 이루어졌고 취학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호 연계적인 학습(interdisciplinary라고 해도 좋을 과정)은 교과목으로 대체되었다. 이과 문과 통합적인 교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기계가 기계를 학습하는 딥러닝 시대를 경험하는 세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유기적인 발상, 업무경계가 없는 크로스오버 일의 형태에 익숙해져야 한다. 작은 불편을 해소하는 디자인적 사고, 아이디어를 정말무결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네거티브한 요소를 그대로 살려두는 유연한 발상, 귀찮음이나 게으름이 또 다른 발명을 끌어낼 수 있을 수 있다는 허용, 그 모든 걸 열어두자. 아이디어를 툭, 툭 내는 체질은 못될 망정 남의 아이디어를 발로 툭, 툭 걷어차는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 (사족.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꼰대가 더 문제다)   




마블로켓

도시 탐사 매거진ㅣ에디터가 제안하는 물건  

https://marblerocket.com/

@marble_r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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