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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블로켓 Dec 09. 2019

나선형을 그리는 사람

책으로 떠나는 탐사_마블로켓 북토크 No.3


누구에게나 호기심은 있다. 모르니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지만, 호기심은 지식의 제로상태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고수의 질문법> 저자의 말대로 ‘아는 것과 더 알고 싶은 욕구의 차’에서 생기는 것이 호기심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더 위험할 때가 있다. 맥락을 벗어난 지식, 한쪽으로 편향된 지식이 더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방해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츠타야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저자의 이야기를 다시 경청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퍼즐을 맞추며, 놓쳤던 맥락을 들여다보고, 츠타야에 대해 회자되는 곁가지들을 치고 나면 무엇이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다음은 북토크에서 쏟아진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슈를 만드는 츠타야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데는 매거진B 츠타야 편이 한몫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츠타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는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거진 B를 통해 ‘다큐먼트’의 형태로 접하게 됐으니 말이다. 물론 츠타야에 대한 책들은 꽤 많이 출간되었고 독자들은 왕성하게 소비했다. 책이 유통되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다양한 츠타야 지점을 경험하고 다시 SNS로 회자되는 선순환을 만들면서 츠타야는 더 높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내가 츠타야 관련 단행본 중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 다이칸야마 프로젝트>에 주목한 것은 이 책이 츠타야 다이칸야마 점을 구상하고 기획하면서, 다이칸야마 점이 실제로 오픈되기 전에 쓰인 책이라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츠타야의 CEO인 마스다 무네아키가 ‘다이칸야마에 이런 컨셉의 츠타야를 만들 거야’를 한 권의 책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책의 내용 그대로 다이칸야마 점을 실현했다.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 것은 다이칸야마 오픈 이후지만, 일본에서는 다이칸야마 오픈과 책의 출판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기획이란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성과로 보여준 것이다.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수행할 때도 수많은 돌발변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다이칸야마의 문화지형을 바꿔 놓을 만한 프로젝트를 청사진 그대로 실현하는 그의 추진력은 감탄할 만하다.



모든 츠타야는 개별적이다


츠타야는 전국구 서점이지만, 우리가 아는 프랜차이즈와 다르다. 프랜차이즈라면 지역 어디나 동일한 외관, 동일한 컨셉, 동일한 상품 구성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츠타야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츠타야라도 어느 지역의 츠타야를 가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긴자식스 츠타야 ⓒCopyright 마블로켓

가령, 도쿄의 핫플레이스인 긴자 식스 6층에 위치한 츠타야는 한 눈에도 고급스럽다. 높은 천장, 대형 전시물, 비밀의 서재 같은 구조 등 글로벌 명품들로 구성된 긴자 식스의 어느 층에 못지않게 럭셔리한 오라가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외관에만 힘을 준 게 아니다. 고급 몰 안에 구색만 갖춘 서점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방문이 많은 긴자 거리에 위치한 만큼 일본 관련 책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일본의 예술, 라이프스타일, 미각, 트렌드 등의 책들이 과거로부터 현재의 일본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물건의 교차 디스플레이도 좋고, 책의 양적 질적 구성도 모자람이 없다.

출처: 네이버 블로거 fly high

한편, 같은 도쿄에 있지만 나카메구로의 츠타야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길을 잡는다. 큰길에서 편의점에 들어가듯이 자연스러운 동선이다. 꼭 살 책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쓰윽 훑어보고 스윽 빠져나와도 좋다. 잠깐 숨을 고르고 싶다면 스타벅스 커피를 한잔 하고 가도 좋을 문턱 낮은 츠타야다.


사가현 다케오 도서관 ⓒCopyright 마블로켓

사가현 다케오 도서관은 인구 4만 명의 소도시에 생긴 거대 도서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도서관과 츠타야 서점의 결합 형태로 츠타야가 위탁 운영을 한다. 온천 외에 관광요소가 없던 다케오는 도서관만으로 외지 관광객들의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츠타야가 소도시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출처 @tsutayabookgarage 인스타그램

츠타야는 2016년 일본 최대 규모의 중고서점을 후쿠오카에 오픈했다. 시내에서도 20분 정도 들어가는 주거지역에 말이다. 츠타야 ‘BOOK GARAGE’라는 이름의 이 중고서점에는 43만 권의 중고 책과 12만 권 이상의 새 책을 같이 판매하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고형 매장 같은 특별한 형태이다. 그리고 마네다 무네아키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에는 우메다 츠타야가 있다. 전면 유리 통창으로 되어 있는 구조가 특색 있다.


아직 나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다이칸야마 이후에 또 한 번 이슈가 된 츠타야는 가나자와 남쪽 쇼난에 생긴 츠타야다. 다이칸야마의 2배 크기. 3개 동의 건물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만한 라이프스타일 매장들도 매력적이라는 후문. 그리고 바닷가마을이라는 쇼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서핑 등 여행 관련 구성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한 참가자는 츠타야 순례라도 한 듯 많은 츠타야를 다녀왔다. 각각의 츠타야의 경험담을 생동감 있게 들려주고, 각각의 츠타야가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지역의 츠타야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눈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츠타야가 지역밀착형 서점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서점’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각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축에 따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츠타야로 존재한다.



다이칸야마의 지역성 


마스다 무네아키에게 다이칸야마는 숲의 자기장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지역이다. ‘애완견’(반려견 대신 책에 나온 단어를 그대로 썼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고, 프리미어 에이지의 사람들이 문화를 지향하며 사는 동네이다. 일본의 ‘애완견’은 개 공장이 있는 우리나라와 그 지위가 달라서 경제적 여유가 없이는 쉽게 키울 수 없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 곳에 서점 그 이상의 서점을 만들고자 했다. 사회적 자산인 지적 콘텐츠가 공유되는 공간, 지(知)의 스토리지로서의 서점, 선망하는 프리미어 에이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뭔가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츠타야를 구상했다. 매일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곳, 라이브 한 공기로 채워진 곳 말이다. 다이칸야마라는 지역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서의 츠타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책 표지의 해바라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가 만들어지기 전 그 넓은 부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네아키는 지역 주민들에게 물었다. 원래 이 지역은 해바라기가 유명하니까 해바라기를 심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이 낭만적인 생각은 그대로 옮겨졌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coming soon’ ‘세계에 없던 놀라운 공간이 온다’ 이런 현수막이 걸리진 않았을까? 200포인트의 큰 글자로도 홍보할 수 없는 일을 노란 해바라기들이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게 뭉클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의견을 묻고, 지역성을 상징하는 꽃을 심어서 츠타야 오픈을 기대하게 만든 무네아키는 타고난 낭만주의자이자 전략가라는 생각이 든다.



고객가치라는 무한도전


우리는 벌써 츠타야라는 이미지를 많이 소비해버렸다. 스타벅스가 있는 서점, 책과 물건이 같이 진열된 서점, 일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핫플레이스 서점. 이제는 익숙해져서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서점이 된 건 아닐까?


무네아키가 쓴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를 읽으면서 나는 다시 츠타야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다. 왜 츠타야는 계속 뉴스가 되는 걸까?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계속 이슈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마스다 무네아키는 80년대 책과 음반과 영화 DVD를 대여해주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자취를 감춘 대여업. 우리 상식으로 그때는 뜨는 사업이었고 지금은 사양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네아키에게 대여업은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콘텐츠를 한 사람이 다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여업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특수한 콘텐츠를 찾는 고객은 성가신 고객이 아니라 다양성을 높여주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보았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콘텐츠가 필요할까,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츠타야에 이르렀다. 무네아키는 말한다. 고객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츠타야를 어떤 수익구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의 서점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츠타야의 맥락을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 우리에게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거의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고객가치’라는 단어 속에서 수십, 수백 가지를 읽어내는 마스다 무네아키 식의 독법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마블로켓

도시 탐사 매거진ㅣ에디터가 제안하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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