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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블로켓 Jun 18. 2020

건축물은 도시를 영화로 만든다

책으로 떠나는 탐사 _ 마블로켓 북 토크 No.6


건축물은 도시를 영화로 만든다

블록버스터 영화이거나 독립영화이거나 



지금은 비전공자가 2시간 동안 건축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시대. 

언제부턴가 건축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라도 본 만큼, 느낀 만큼 얘기할 수 있는 화제가 되었다. 

이유가 뭘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세계 곳곳을 다니는 여행객들의 수도 늘었고 여행 빈도도 늘었다. 유명한 건축물이 미디어나 책 속에 있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또 건축가들이 tv 예능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한 것도 큰 이유.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교수가 얘기한 ‘시퀀스’가 유행어처럼 쓰이고 김진애 박사의 파르테논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축에 대한 문턱은 조금 더 낮아졌다. 건축을 접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쏟아진 것도 건축의 대중화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 북저널리즘의 <아이코닉 건축>처럼 말이다. 


버밍엄 셀프리지 백화점

마블로켓 세 번째 북저널리즘 독서모임은 영국의 <아이코닉 건축>으로 진행되었다. 이 책은 버밍엄 셀프리지 백화점,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 타이태닉 벨파스트 등 쇠락한 지역을 재생하거나 도시 브랜딩을 견인한 7가지 사례를 통해 건축의 역할을 풀고 있다. 건축은 낙후된 도시를 재생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초기지다. 역사적 맥락 위에 설계된 건축, 지역의 고유성을 극대화한 건축 등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며 도시의 상징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우리는 시야를 넓혀 우리가 경험한 아이코닉 건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아이코닉 건축에 대한 질문이 첫 번째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DDP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서 2014년에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완공됐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그 자리에 외계 비행물체 같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이 스타디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그 일대가 우범지역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던 동대문 운동장 일대는 환골탈태를 했다.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스타 건축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하며 가장 바쁜 건축가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의 설계는 많은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DDP에 대한 의견은 우리의 작은 테이블에서도 분분했다. 


호감 여부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아이코닉 건축이 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아쉽다는 의견도 많았다. 일단 기괴하다는 의견부터. 자하 하디드는 밤낮 없는 동대문을 형상화하고, 문화 경제 역사의 맥락이 어우러진 건축형태로서 비정형적인 3D 곡선의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많은 스타 건축가들이 그러하듯이, 자하 하디드 건축의 자기 복제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두 번째로는 패션위크 등에는 어울리는 공간이지만 간송미술관 등 우리 것, 혹은 동양적인 문화에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셋째 루이뷔통 등 화제성 있는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DDP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점. 거대한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의견이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각자가 경험한 아이코닉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과 메모리얼이 인상적이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하얀색 기둥들이 묘비처럼 세워져 있다. 그러나 실제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의 높낮이가 달라져서 특별한 감정을 경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 유대인 얼굴 형상의 철편들이 깔려있는 바닥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밟을 때마다 철편들의 마찰음이 좁은 공간에 공명되어 학살되는 유대인들의 비명소리처럼 들린다는 곳. 가보지는 못했지만 911 메모리얼의 설계도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빈 공간에 폭포처럼 흐르는 물. 그러나 가운데 비어있는 홀로 계속 낙수 하는 물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슬픔을 표현한다.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슬픔과 직면할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이 없을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직접 경험한 최고의 아이코닉 건축물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소개한 참가자도 있었다. 빌바오 구겐하임을 보기 위해 스페인 여행 중에 일부러 일정을 넣었다고 했다. 낙후된 빌바오를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든 주인공. 실제로 보니 그 감동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도시 전체가 설치 미술인 듯 모든 것이 조화롭고 강렬하다.  



안도 다다오 / 원주 뮤지엄 산
안도다다오 / 빛의 교회

스타 건축가로서 안도 다다오가 거론됐다. 안도 다다오라는 브랜드에는 강렬한 브랜드 스토리가 있다. 권투선수라는 전직,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 나선 여행 그러나 못 만나고 돌아와 르 코르뷔지에의 모든 도면을 따라 그렸다는 일화, 르 코르뷔지에를 흠모하는 나머지 반려견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준 에피소드까지 그를 따라다니는 이야기는 계속 나선형을 그리며 증폭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건축으로 실현해내는 건축가다. 주위의 반대와 우려를 무릅쓰고, 적을 만들면서 자신의 설계를 고집하고 때로는 설득해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모든 그의 건축물에는 안도의 스타일이라는 통일성을 갖지만 건축물마다 고유의 아이디어가 있다. 빛으로 십자가를 만든 교회, 땅 속에 미술관을 매복시킨 시코쿠의 지추 미술관 그리고 원주의 미술관 산(SAN)에서 볼 수 있는 천마총 형태의 명상 공간에서도. 


건축은 과학기술과 자본과 도시생태계를 아우르는 장르다. 쇠퇴한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문화적 부활을 꾀하기도 한다.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도시의 부가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아이코닉 건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에 그런 아이코닉 건축물이 들어올 여지는 없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휴먼스케일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낙후된 도시에 등장한 아이코닉 건축물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마블의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아이코닉 건축물이 없이도 고유한 지역성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는 독립 영화 쪽이 아닐까?   






마블로켓

도시 탐사 매거진ㅣ에디터가 제안하는 물건  

https://marblerocket.com/

@marble_r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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