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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기 May 28. 2020

갑질, 눈먼 돈, 열정페이

미친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2019년 초 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웹드라마의 제작 입찰 심사를 맡았다. 13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경쟁했고 결과는 무난한(개인적으론 진부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가장 규모가 컸던 업체의 승리. 장시간 정신 노동을 통해 아이디어가 좋았던 두곳에 몰표를 던졌던 나는 결과가 매우 아쉬웠지만 다른 부족한 부분을 채우지 못했던 중소 업체의 준비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며칠 후 아는 프로덕션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 그 드라마의 전체 예산 중 2억을 제외한 금액을 제시하며 자신의 업체에서 제작을 할 수 없겠냐는 문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대기업의 재 하청과 ‘눈먼 돈’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면서도 그냥 넘기기 힘들었고 나의 위안은 분노가 되기 시작했다. 괜한 오지랖이 아닌가 싶었지만 축구협회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말씀드렸고 결과는 몰라도 나의 이야기가 상황을 뒤집을 만한 큰 힘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해 논란이 되었던 드라마 ‘빅이슈’의 미완성 영상 송출 사건에 대해 CG회사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사건이 터진 당일 아침 그 드라마의 CG를 맡았던 대형 회사에서 본인에게 외주 업체를 구한다며 연락이 왔고 다른 곳에도 도움을 청했으나 누구도 급한 불을 꺼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을 만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업체가 실력있는 작업자들이 선뜻 도와줄 만큼의 신뢰를 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20대 초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 우연히 영화콘티 보조작가 제의가 들어왔다. 나의 사수는 그 당시 ‘올드보이’ ‘스캔들’ ‘태극기 휘날리며’ 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했던 소위 잘나가는 작가였다. 형님은 나와 오랫동안 같이 하기를 바랬지만 꿈을 놓기 싫어서 합의 하에 1년의 시한부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큰 돈을 바라지 않았고 그림과 연출 등 배움을 쌓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나의 순수한 열정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결정적인 사건은 오래 지나지 않아 터졌다. ‘연애의 목적’이란 작품에서 형님은 계약만 하고 감독님과 회의를 포함한 실질적인 모든 작업을 혼자 맡아서 했는데 형님이 계약금의 반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며 제작부에게 우연히 듣게 된 사실은 충격이었다. 형님이 나에게 밝혔던 금액은 전체 계약금의 절반이었고 난 돈이 아닌 형님의 태도에 너무 화가났다. 그 작품이 끝난 후 술자리에서 당돌하게 했던 이야기. “형님, 앞으로 그렇게 살지 말아요. 언젠가 크게 후회할 날이 올거에요.” 난 그렇게 형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채 반년의 보조작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린시절 보았던 나의 인생 드라마 ‘상도’의 주제는 ‘장사는 돈을 남기는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정말 의롭게 본인의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보다 남을 짓밟고 빼앗으며 덩치를 부풀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잘나갔고 그래서 좌절감에 시달릴 때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라며 환타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진 소신을 지켜가며 사람을 남기는데 집착하고 있다. 내가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분야를 초월하고 위 아래가 없다. 재능과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내 사람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준비하는 일이 ‘종합문화예술’ 이기에 이런 노력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 갑질, 눈먼 돈, 열정페이는 일시적인 몸집 부풀리기에 성공했을지 모르나 최근 붉어진 사건들만 보아도 결코 롱런할 수 없는 반쪽짜리 시한부 성공에 불과하다.

남들은 무모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큰 꿈이 있다. HERO 영화 연출, 제작? 어찌보면 이것 또한 큰 그림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하다. 난 지속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몸집 부풀리기를 하고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미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넘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미친자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정말 세상을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업계에서 자칫 밥줄이 끊길 위험이 있는 민감한 주제의 글을 써대는 것을 보면 미친놈은 맞는 것 같다.

P.S 사랑하는 와이프는 분명 이 글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저와 뜻을 함께 할 능력자, 제작자, 미친자 여러분들은 제가 굶지 않게 도와주세요.


https://youtu.be/VMEid-m5K10


<축구협회 주관 웹드라마 제작 입찰 심사 후기>
https://www.facebook.com/100001407105139/posts/2158589914197891?sfn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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