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쉐친구들 Feb 11. 2020

런던을 보고싶어!

[마르쉐 영국연수기_1]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2019년 2월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농부시장 마르쉐에 출점하며 다양하고 풍부한 스파이스의 맛을 보여주다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김송수 요리사가 KIL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쓴 메일이었다.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던 이 메일은, ‘맛’을 중심에 두고 지속가능한 Farm to Table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는 Super 8 (소속 레스토랑: Kiln, Smoking Goat, Brat)과 농장들의 관계를, 마르쉐를 기획운영하고 있는 마르쉐친구들과 같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본 후부터 우리는 런던에 가서 그녀와 함께 레스토랑과 농장을 보고, 역사 깊은 런던 내의 파머스마켓들과 그를 가능케 하는 런던 먹거리 정책들까지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영국 방문 이유’라는 명료한 제목으로 날아온 그 메일대로, 우리에게는 영국을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서 가겠다고. 실은 뚜렷한 대책 없이, 뜨거워진 마음으로 보낸 답장이었다.

농부시장 마르쉐는 2012년 마로니에공원에서 시작해서 꼬박 7년째 서울 도심에서 시장을 열고 있다. 시작부터 시장의 중심 약속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화하는 시장’을 만들자는 거였다. 그후 단지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기고 쌓여가는지 목격해왔고, 그것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계속 시장을 열어온 힘이었다.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니 손님들은 질문이 많았다. 우리가 먹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왜 누가 기르고 만들어서 오는 것인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면서 손님들도 깨달았다. 질문할 수 없었을 뿐이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는 것을. 손님이 질문하게 된 것이 변화의 시작이겠다. 그중에서도 큰 변화가 농부와 요리사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놀라운 변화들이었다.


마르쉐 소개를 할때마다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게 되는 놀라운 농부가 있다. 2012년 마르쉐@혜화에 처음 참여했을때 그는 일손을 사서 상추 몇종류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젊은 농부였다. 나의 식탁을 채우는 것들이 정말 당신에게서 오는 거냐고 물었을때 농부는 당황했고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자신의 농사 방법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농부는 자신이 키운 것을 먹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본 적이 없었다. 낯선 경험에 당황한 나머지 화가 나서 다시는 이런 시장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던 중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조만간 농장에 오면 흙을 만지고 풀을 따먹고 뭐든 손에 잡히는 것들은 입으로 알아보려 할 것인데, 농장의 흙과 물과 풀과 채소들이 그대로 먹어도 안전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마르쉐에서 만났던 손님들이 떠올랐다. 소비자들의 질문은 결국 농부가 키운 것들이 어떤 생산 과정을 거친 것인지 알고 믿고 먹고 싶다는 거였다. 비용을 감수하고도 건강하고 믿을만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농부는 농약과 제초제 등 화학적인 것들을 더욱 안쓰는 농법으로 바꾸었다. 

1년 후, 그는 새로운 농법으로 키운 다양한 채소들을 가지고 마르쉐에서 손님들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손님들, 특히 요리사들과 대화하며 성장했다. 그가 키운 채소의 맛에 대한 요리사들의 구체적이고 애정어린 의견은 바로 농법에 반영되었고 더욱 맛있는 채소를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키워냈다. 그 농법의 모든 답은 자연 속에 있었다. 이제 마르쉐가 열리면 농부의 매대앞에는 시작 전부터 손님들이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당근을, 상추를, 무를 줄서서 사가는 손님들을 보며 우리는 감동했다. 점점 더 집밥을 안해먹는 시대에 역행하며 채소를 파는 시장을 열어온 우리가 가장 바라던 풍경이었다. 농부시장에서 소비자와 대화했던 단 한번의 경험은, 그가 인식했든 안했든, 이 섬세한 농부를 기존 농사에서 끌어내 먹거리의 커다란 순환을 보게 하고 소비자를, 땅을, 맛을, 그리고 다시 그 순환의 한 부분으로서 농사라는 일을 새롭게 보게 했다. 

농부는 이제 농장의 일부는 여러 레스토랑 쉐프들과 함께 운영한다. 20명 가까이 되는 쉐프들이 그해에 어떤 채소가 필요한지 농부와 의논하고, 그들이 구상한 요리에 가장 적확한 채소의 맛과 향을 찾는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회비를 모으고 있다. 각 채소가 가장 맛있을 때에 쉐프들이 직접 수확 해가면서 쉐프도 농부도 채소의 맛을 새롭게 배워나간다. 


한명의 농부가 일궈낸 이 놀라운 구조는 새로운 식재료를 찾는 것을 넘어 그것을 키워내는 생산자와 함께 요리를 만들고픈 쉐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시대에  농부가, 농업이 지속되려면 요리사의 변화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요리사가 스타가 되는 지금, 그영향력은 더욱 큰 파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변화를 보며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바탕이 되어 시장 밖에서 ‘일어나야 하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삶에 대한 작지만 강렬한 실험이고, 농부시장의 가능성을 확장한 것이자 한계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장 안에서 그러한 농부와 요리사들과 함께 해오며 이제 농부시장의 다음 단계 아니, 우리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고비용을 감당하며 더 좋은 더 건강한 식재료를 구매가능한 소비층에 기대어 기형적이고 편향된 미식을 조장할 수도 있는 - 결과적으로 농부에게도 소비자들의 일상에도 지속가능한 변화는 일으킬 수 없는 -  성찰없는 팜투테이블의 한계를 넘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우리의 모든 일을 멈추고서라도 송수가 말한 런던의 사례들을 보고싶었다. 어떻게든 가야했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