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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Feb 11. 2020

안녕? 런던!

[마르쉐 영국연수기_2]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메일을 받고 약 반년 뒤인 2019년 8월 14일, 실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주변에서는 모두 놀라고 부러워했다. 우리 또한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찬 혹은 자조했다. 마르쉐친구들 5명 모두와 연구자, 촬영작가까지 대동해서 간다니 럭셔리해보였겠으나, 실상은 달랐다. 업무에 밀리다보니 연수는 또 하나의 부과된 일이 되어 피로감을 치솟게 했고, 그 와중에 이리 저리 예산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었다. 런던과 서울의 시차가 너무 큰 것은 물론이고 마르쉐 시장이 쉬는 기간에 가려다보니 딱 여름휴가기간이라 사전 연락하고 계획 잡기가 어려워 서로를 원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백하건데 막상 비행기를 탈때까지 다들 이걸 꼭 가야하는 거지? 라며 서로 의심의 눈길로 확인했고, 꽤 긴 연수 기간에 다 큰 성인들의 공동 생활이 쉬울 리 없었지만…. (그 우여곡절은 살짝 걷어내고 쓰려 한다.)


우리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김송수 요리사가 언급했던, Dan Barber의  <제3의 식탁 The Third Plate>이라는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전편에서 얘기한 농부의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쉐프가 농부에게 꼭 함께 봐야한다며 추천했다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Chef's Table에 나오는 쉐프이기도 하다.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블루 힐 레스토랑과 비영리 농장 교육 센터인 스톤 반스 음식·농업 센터 내에 위치한 블루 힐 엣 스톤 반스의 요리사‘인 댄 바버의 책에는 대표적인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을 경영해온 쉐프로서의 성찰과 경험이 잘 정리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을 읽자마자, 일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감동과 이것을 한국에도 전하고픈 열망에 눈을 반짝이며 메일을 써내려갔을 송수의 시간이 그려졌다. 


팜 투 테이블 운동은 농장과의 직거래를 중시하는 올바른 흐름이지만 결국 농업이 먼저가 아니라 요리가 먼저인 상황이다. 이런 상태로는 올바른 농업을 지속할 수 없다. (중략) 좋은 재료를 신중하게 골라 지속 가능한 식단을 창조할 수 있다는 우리 믿음은 틀렸다. (중략) 

‘제3의 식탁’은 한 접시의 요리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요리법, 혹은 요리의 조합이거나 메뉴 개발과 재료 수급, 혹은 그 전부를 포함한 개념이 되어야 한다. ‘제3의 식탁’은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재료를 공급하는 환경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맛을 조합해야 한다. ‘제3의 식탁’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농업의 중요성과 이를 실천하는 농부에 대해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제3의 식탁’은 우리 음식이 관계의 그물망 전체의 일부이며 단 한 가지 재료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가장 맛있는 요리를 위해 필요하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곡물과 고기를 중시한다.

모든 위대한 퀴진처럼 ‘제3의 식탁’은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부분적으로나마 요리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요리사는 지휘자처럼 그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댄 바버 Dan Barber, <제3의 식탁>, 프롤로그 중에서 발췌 


우리는 단지 몇가지 사례만이 아닌,  런던의 먹거리 관련 흐름과 현재의 특수성 위에 어떻게 이러한 사례들이 가능했는지 그 구조를 함께 보려고 다소 폭 넓은 계획을 세웠다. 1996년 광우병위기를 경험하며 먹거리 안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이 커진 이후, 사회주의자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 시장의 재임기간을 거치면서 일찌감치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 먹거리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와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런던.  2004년 런던푸드위원회(London Food Board)의 설치와 2006년 발표한 런던푸드전략(The London Food Strategy)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런던의 역사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먹거리 관련 흐름을 만들어내는 곳들을 찾아 빼곡하게 9박 10일의 연수 일정을 채워나갔다. 


먹거리를 중심이슈 중 하나로 놓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서스테인Sustain, 20여년간 런던 안에서 파머스마켓들을 이어온 기업 LFM(London Farmers Markets)을 비롯한 런던 안의 여러 파머스마켓들, 세계적인 먹거리 마켓인 보로마켓Borough Market 과 대안적인 시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Mercato Metropolitano 그리고 신뢰와 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지속가능하고 독립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레스토랑과 농장들 등. 

커다란 포부를 안은 지친 몸으로 드디어 런던에 도착! 흐린 하늘은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연수 내내 머물 숙소는 시티오브런던의 북쪽, 핀즈베리파크Finsbury Park 역 근처에 있었다. 런던의 높은 물가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일행 7명이 다같이 머물 집 한채를 통째로 빌렸는데, 건물에 들어서자 마자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에 더해 무언가로 강하게 여러번 얻어맞은 듯한 현관문은 숙소를 오가는 내내 영화같은 상상을 하게 했다. 물론 스릴러물이었고 아무리 많이 쳐줘도 액션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수 초반, 우리는 이 동네에서 영화같은 일을 겪는데 그 얘기도 차차 하겠다.  


긴 비행 후 우중충한 날씨와 숙소 분위기에 다소 기가 죽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입맛 돋구는 스파이스 향이 가득한 음식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를 불러준 그녀, 송수가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정말 배가 고팠다.       

* 본 연수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한살림의 지원을 일부 받았습니다. 각 사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홈페이지 올려진 본 연수 보고서 [먹거리 선순환체계 및 협동경제 구축방안 개발 연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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