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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Aug 31. 2020

쉐프가 왜 농부가 되었다고?

[마르쉐 영국 연수기_23] 양과 함께 키우는 채소, 댄콕스 팜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댄Dan Cox은 유명한 요리사 였다. 20여 년의 요리 경력을 바탕으로 특별한 맛을 지닌 다양한 품종의 과일과 채소를 구하고자 직접 유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홈페이지 등에서 찾아본 바에 따르면, 댄은  2011년 Simon Rogan의 연구 주방 Aulis에 합류한 뒤 Cartmel Valley에 농장을 짓고 운영하며, 씨앗에서 요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가 손님에게 전해지는 순간의 가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에 Cornwall로 이전하여 Crocadon Farm을 설립한 댄은 자신의 방식대로 농사짓고 모든 농산물의 수확시점을 직접 결정하는 자유를 통해 농사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에 관련한 설명에서 아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작물을 제철에 수확해 바로 요리할 때, 각각의 작물이 제공하는 최고의 맛과 완벽한 아름다움을 즐깁니다. 씨앗부터 직접 키우며 한 작물이 자라는 모든 과정을 시기별로 맛보면 작물이 언제 최고의 맛을 내는지, 그 맛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죠.” 


요리사가 농부가 되었을때, 이렇게 각 작물의 시간에서 가장 좋은 맛을 만나는 것이 가장 원하던 짜릿한 순간이지 않을까? 


댄과 함께 목장으로 가니, 경사진 넓은 초지에 양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푸른 풀밭에 뽀송뽀송 양들,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 아마도 양들을 가까이 보고싶어 하는 우리 마음을 눈치챘는지, 댄이 커다란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내밀자 양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나뭇잎을 다 먹고도 녀석들은 우리 주변을 맴돌며 이방인을 궁금해했다. 고스니팜Gothelney Farm의 프레드Fred가 밀과 돼지를 함께 키우는 것처럼 이 양들과 채소밭을 함께 키우는 것이 이 농장의 순환고리이다. 

프레드에게서도 계속 들었던 것처럼 이 농장의 핵심도 순환! 이렇게 큰 땅이라도 양들이 한곳에만 있으면 통풍이 안 되 꿉꿉하고 맨날 똑같은 것만 먹게 되는데다가, 결국 모든 걸 먹어버리니까 다른 땅으로 이동시켜주어야 한다. 양을 기르는 땅은 3군데로 나눠져있고 돌아가며 방목을 하는데, 초원에 채소를 다양하게 기르면서 지속가능한 밭으로 만드는데 4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다양한 채소와 풀들이 있는 밭으로 양을 옮겨놓고, 이 초지는 다시 다양성이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어 순환시킨다. 허브를 다양하게 섞어 키워야 기생충에 대한 방어력도 높아지고 고기도 맛있어진다고. 댄도 여러가지 풀과 채소를 다양하게 키워서 양들이 최적화된 것을 먹을 수 있도록 생태계를 키우고 순환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위에 말한대로 댄이 전에 일했던 레스토랑에는 농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돼지도 닭도 채소도 직접 길러보며, 자기 것을 하고 싶기도 하고 양고기의 질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어서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앞으로 양뿐만 아니라 채소도 원하는 대로 키워가고 싶은데, 모든 땅이 동물의 자극으로 인해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결국엔 땅이 건강해야 한다!

댄은 이렇게 건강한 자연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외에도 양에 대한, 양고기 식문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돼지랑은 다르게 법적으로 양은 축사 없이 사육이 가능해서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자연 속에서 자라게 한다. 이 겨울을 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레스토랑은 일반적으로 어린 양(램)만 사용한다고 한다. 램은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만 사는 것이니 계절을 다 살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댄은 말했다. 그것만 원한다면 계속 동물학대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요리사의 입장에서 그렇게 하는게 맛이 그다지 좋지도 않고 양들에게도 안 좋고 계절성도 없다고 보았다. 댄은 고기에도 계절성이 있다고 보는데, 자연의 섭리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밖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또한 영국에서 램을 먹는 식문화 전통은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4월의 부활절 때 등 시즌에 맞춰서 램을 출한다. 양의 생애주기를 본다면 원래 부활절 시즌에는 램을 먹을 수 없는 데 무리하게 키워서 먹는 것이다. 그래서 댄은 큰 시장인 그 시기 램 출하는 포기하고 가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댄은 덧붙여서 인도나 이슬람은 램을 안먹고 머튼(더 나이든 양)을 먹는다고 했다. 킬른과 스모킹고트가 태국 음식을 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라고. 이렇게 큰 양들이 슈퍼8 레스토랑들에도 2년째 납품되고 있다. 대부분 레스토랑들이 댄의 이름을 넣고 광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런걸 안하니까 대중에게 다가가기 더 쉬운 것 같아서 댄은 이 레스토랑의 운영 방침을 좋아한다고 한다. 광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런 시스템화를 함께 더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양들이 생장을 멈추는데 이러한 계절성은 레스토랑과도 미리 소통을 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축축하니까 건초를 좀 줘야하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것들을 말려서 겨울에 먹을 것들까지 준비해둔다. 사료는 알팔파를 건조시킨 것으로 양떼를 옮길 때에만 사용하는데, 귀엽게도 양들이 나뭇잎 등으로 꼬시면 오라고 해도 반은 오다가 멈춘다. 그래, 너희들도 맛있는게 중요하지~ 

댄의 작은 텃밭.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댄에게 농부가 되어서 고민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물었다.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이 퀄리티의 고기가 모두에게 공급될 수 있는지' 라고 했다. 특정 계층만 먹을 수 있는 고급품이 아니라, 누구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가격과 질, 정말 잡을 수 없는 두마리 토끼일까? 우리는 이 농가 투어에서 슈퍼8 그룹의 경영방식을 보며 그 실마리를 보고 있었다. 


농장을 둘러본 뒤 저녁 식사는 마당에 있는 오두막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쉐프들이 여럿 있으니, 요리 준비하는 걸 구경만 해도 흥미 진진. 실생활에서 우러나온 칼질 솜씨에 즉석 스카웃 제안을 받기도 하고 슬쩍슬쩍 춤도 추고 재미있었다. 


이날 최대의 난관은 ‘오레가노’! 마이클이 요리를 하다가 뒷쪽 밭에서 오레가노를 한줌만 따와달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무도 오레가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던 것! 세상에… 농부시장 운영팀들 맞아?!!! 마당 뒷쪽에는 작은 텃밭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 온갖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오레가노 수확팀으로 차출된 나와 다른 친구는 서로를 믿으며 안심하고 밭을 구경하다가 막상 뜯으려고 하니, 앗, 너도 몰라?! ….. 못찾겠다고 하기엔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몰래 몰래 다른 팀원에게 물어보고 검색해보고 하며 30분 넘게 온 밭을 뒤져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민트와 바질을 섞어놓은 듯한 모양의 이 오레가노 녀석, 어디갔노! 


속절없이 시간은 가고,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해서 못찾았노라고 이실직고했더니 마이클은 우리를 저~~~ 멀리 뒷밭, 그러니까 도보로 왕복 20분은 족히 걸리는 먼 밭으로 데려가 오레가노를 뜯어보여주며 싱긋 웃었다. 하하… 그래... 여기도 뒷쪽이지… 농장이 이렇게 크니… 나는 속으로 오레가노로 문신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쫄래쫄래 따라 돌아왔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한번 더 검색해봤다. 오레가노 요 녀석!   


그리고는 각자가 준비한 채소와 꽃과 고기 요리로 파티파티~ 모닥불 속에는 비트가 통째로 던져졌고, 그릴 위에서는 양배추와 호박이 제대로 불맛을 입으며 익어갔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고, 음악 틀고 불이 피워졌으니 즐길 수 밖에. 모닥불에 둘러앉아, 영어로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를 BGM 삼아 한없이 아티초크를 깠던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면 꽤나 낭만적일 수 있었던 밤이었다. 꽤 늦은 시간까지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오자마자 뻗어서 정말 단 잠을 잤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깨달았다. 내심 가장 기대했던, 숯불 속에 통째로 던져진 비트를 한알도 못 먹고 그대로 두고 왔던 것이었다! 아아~!! 비트 주세요! 드랍떠빝!!!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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