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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Feb 08. 2021

할머니의 선인장

  할머니의 선인장이 죽었다. 거실 구석에서 조용히 허리가 꺾여서는.


  한 뼘 화분에 버거웠던 선인장은 긴 몸이 스러져 발견됐다. 진작부터 위태로울 정도로 기다랗게 자란 상태였다. 대충 봐도 화분에 비해 너무 큰 선인장이었는데 분갈이를 하다 죽을까 무서워할 수가 없었다. 무지를 핑계로 게으름 피우는 사이 선인장은 더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영영 화분을 바꿀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좁디좁은 화분 속에서 결국 허리가 꺾였다. 염치없지만 이 화분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손녀에게 뭐라도 쥐어주고 싶었던지, 할머니가 대뜸 안긴 화분이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14년 여름부터 세 번의 이사를 함께했고, 그때마다 조수석 발 옆에 조심스레 옮기며 아꼈다. 분홍에 하늘이 섞인 도기엔 자잘한 들꽃 무늬가 투박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못내 귀여웠다. 선인장 머리에 앉은 솜털 같은 가시는 손 대기도 아까워 쓰다듬지도 못했다. 분명 받아온 날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다. 온 앨범을 뒤져 이사 오기 전 집에서 배경처럼 찍힌 선인장을 겨우 몇 장 건졌다.

 

 다른 날보다 좀 더 추웠던 밤. 퇴사를 고민하고 죽고 싶다 염불을 외며 오로지 매일 하는 것이라고는 출근과 퇴근뿐이었다. 열두 시가 되어가는 시간에 익숙한 퇴근길을 밟으며 오리온자리를 찾았다. 어렸을 땐 할머니랑 같이 별자리를 찾았었는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에 목소리가 부재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목소리 들은 지 오래됐네. 전화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출근하며 전화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막상 아침이 되니 출근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고, 전화는 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3시경 그 시간에 절대 내 핸드폰에 뜰 리 없는 엄마의 전화가 떴다. 언젠가 겪은 일처럼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화에 응하기 전부터 불안함이 스쳤다. 응, 엄마. 받기 싫은 전화를 담담한 목소리로 받으니 울음 섞인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예원아. 회사에 말하고 광주에 바로 와야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할머니는 엄마, 아빠 대신 나를 키웠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돌봐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 간이 세지 않아도 맛을 낼 줄 알았고 직접 기른 야채며 채소로 상을 차렸다. 깔끔한 성미 때문에 근처엔 늘 테이프가 있었다. 테이프를 동그란 모양으로 뒤집어 붙여 머리카락 한 올, 먼지 하나만 떨어져도 곧바로 테이프로 처리하곤 했다. 빨래는 밀린 적이 없었고, 우리 집은 늘 깨끗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세상에 더러운 가정집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언제나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 살며 철없게도 ‘집안일은 하면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금방 난장판이다’는 말을 말로만 알았다.


  무슨 정신으로 회사를 나왔는지 모르겠다. 남들 앞에서 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팀장님께 달려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가봐야겠다고. 걱정 어린 목소리를 뒤로하고 허둥지둥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KTX를 예매하고 검은 옷을 가방에 담아 급하게 광주로 향했다. 그 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평생 부재한 적 없던 이의 죽음에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발인 날, 유리 너머 수의 입은 할머니를 보면서도 현실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만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 어떤 사건을 관망하는 듯했다. 저기 누운 사람이 우리 할머니 일리 없다.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머니가. 돌처럼 서있던 아빠마저 아이처럼 우는 것을 보면 우리 할머니가 확실한데. 서러운 울음들 사이에서 나만 호흡처럼 조용히 울었다. 마땅히 더 슬퍼야 했던 것 같은데. 몸이 부서지는 슬픔을 겪었어야 했던 것 같은데 비현실적인 감각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 예원이는 할머니를 덜 좋아했나 봐.

  근예는 엄청 서럽게 울던데. 농담이랍시고 던진 이모부의 말이 내 깊은 곳을 찔렀다. 적절하지 않은 농담이었으므로 곧바로 이모의 채근을 들었지만 이미 나는 찔린 후였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긴 했을까. 목 놓아 울던 이들은 분명 그녀를 사랑했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되나. 감사하는 마음은 늘 있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집과 우리를 돌보는 할머니에게 감사는 당연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영민한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도 있었다. 셈도 빠르고 기억력도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반장 역할을 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에선 늘 오그라들었다. 이리저리 바삐 집과 우리를 살피며 딱딱해진 발 뒤꿈치를 보면 언제나 죄송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나. 온몸을 다해 슬퍼하지 않은 대가로 나는 평생 그 물음과 죄를 안고 살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할머니를 놓지 못하게 됐다.


  선인장은  아마 허리가 꺾여 죽지 않았을까. 기다란 몸통 가운데가 나뉘어 드러난 속은 몸이랄 게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드러난 속과 멀리 떨어진 가시는 아직 하얀 솜털 색이었으므로 분명 허리가 꺾여 죽게 되었을 것이다. 위태롭게 버텨준 것이 장할 정도로 화분의 네 배는 길었는데. 내가 진작 화분과 흙을 갈아야 했다. 잘 버텨주니 버티는 대로 방치하다 결국 이렇게 됐다. 죽은 몸통을 걷어내니 땅에 박힌 뿌리가 보여 미련이 남아 흠뻑 물을 줬다. 제발 다시 살아나라, 살아나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죽은 관계를 두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뻔뻔한지. 진작 더 사랑할 것이지. 할머니를 영영 만나볼 수 없게 된 지 2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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