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널뛰듯' 하는 엄마 마음을 변명해 보자면

공자님 등장 요망!

by 김가오리

아이 등짝을 스매싱을 하며 잠에서 깼다. 꿈에서 고등학생 첫째가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안 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등짝을 때렸고, 아이는 어느새 내 손과 눈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꿈에 대해 잘 모르지만 무의식이 반영된다고 들었다. 1학기 시험에서 답안을 밀려 쓰는 실수를 하고 크게 낙담한 아이를 살피고 돌보느라 조바심이 나던 시기였다. 아이가 자책의 단계에 오래 머무를까 봐, 무기력한 나날을 보낼까 봐, 이대로 포기하고 주저앉을까 봐. 걱정하는 일이 마치 직업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걱정하는 바람에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잠도 설쳤다. 학교 간 아이의 방만 봐도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엄마가 아니라 동네 아줌마였다면 아이의 상황이 내 몸과 정신, 일상에 이렇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겠지. 우리는 다른 집 아이의 사정에는 관대하고 희망적이며 때론 모범 답안처럼도 말할 수 있지만, 내 아이에 대해서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한 친구는 현재 상황으로 아이의 미래까지 부정적으로 상상하게 돼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범죄 사전 예방 시스템처럼 우리는 자식에게 일어날 모든 나쁜 일들을 사전에 막아보겠다는 열정! 열정! 열정!이 부모 자격의 필요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


사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열정, 책임감, 애정에는 근거가 있다. 공자는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을 해결하는 덕목으로 '仁(인)'을 제안했는데, 여기서 '仁(인)'이라는 한자는 '人'(사람) 안에 '二'(두 개)가 있다는 의미다. 뭣이 두 개 있을까? 심장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임산부가 아이를 품은 모습을 '仁(인)'이라고 정의했다. 공자가 판단하기에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 것은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모습이었고,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요소였다. 그래서 그렇다. 우리가 몸 안에 내 심장 외 다른 심장 하나를 같이 품었어서 그렇다. 다른 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세계가, 네가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부모 자식 간에는 허용되고 만다.


부모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의 뜨거운 영역이 분명히 있다. 공자님 정도는 불러내야 설명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런데 주의하자. 이 뜨거움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내 아이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은 건강하게 발현될 때 아이를 잘 키워내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겠지만, 모든 것을 다 책임지겠다는 강박과 책임질 권리가 있다는 착각이 생기는 순간 삐용삐용!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 다 출동해야 할 만큼 부모, 자식 모두에게 위험해진다.


나야말로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에서 제일로 헤매고 있는 사람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것처럼. 미지근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손은 벌겋게 데어 있고, 그제야 뜨거웠구나.. 깨닫는다. 글머리에 쓴 꿈 이야기도 얼핏 보면 아이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아이의 성적보다 멘탈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실패와 실수를 용납하기 싫은, 나만 특별하고 싶은 욕망 덩어리 엄마가 마후라 뒤집어쓰고 숨어 있다. 지인 모임에서 아들의 사연을 털어놓으니 한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어때? 아들이 힘들까 봐 걱정돼?" 나는 그 질문에 "그것도 있지, 근데 그냥 놓친 점수와 내신이 아까워!!!!!!!!!"라고 답했다. 특별함에 대한 나의 욕망은 그동안 아이들의 성적이나 사회적 평가로 채워지고 있었다.


역시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 친구의 돌직구 질문에 공부로는 큰 시련을 경험하지 않고 성적과 배움 영역에서의 기쁨을 주로 경험한 엄마의 한계가 솔직하게 까발려졌다. 내가 좁게 경험한 탓에 아이에게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에 힘이 있을 리가. 말은 내가 뱉어놓고 그 말을 내가 의심하는 웃긴 상황이 이어졌다.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로 잘 지내는 주변 지인이 당연히 많이 있고 그들의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라 그 삶의 구체적인 과정과 좋은 요소를 짚어낼 수 없어서 막막했다. 또 내가 경험해 온 좁은 세계지만 나쁘지 않은 세계를 아이가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그 세계에 대한 우쭐함이 있었던 것 같다. 배워먹지 못한 지식인모냥.


이쯤 되면 혼자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나마 요즘 내가 새로 획득한 아이템이 있다면 '힘든 걸 나누는 능력'인데, 이번에 요긴하게 쓰였다. 아이를 키우는 희로애락의 흐름을 겸손하고 현명하고 유연하게 타고 싶다면, 주변에 지혜를 구하고 위로를 요청하고 다른 관점을 빌려보자. 이미 겪었던 이에게는 사골육수처럼 경험에서 우러난 진한 지혜를, 유의미한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눈물을, 실패와 실수를 품고 다음 단계를 시도해 본 자에게는 해묵은 걸 다르게 보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취약함을 고백한 것에 대한 깜짝 선물처럼. 마치 늘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이.


다행히 부모는 '어쩔 수 없음'의 영역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이 남아 있다. 대학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쳐지는 거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실수, 실패, 좌절, 억울함을 우리 아이도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오직! 부모의 태도만 아이에게 배움으로 전해질 것이라는 말씀. 핵심은 진짜여야 한다는 것. 얄궂게도 하나의 몸이었던 아이들은 부모의 참과 거짓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니. 아이의 힘듦에 나도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둥가 둥가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가 먼저 다른 세계, 넓은 세계로 진입할 용기를 내어보기로 하는 거다.


답안 실수를 한 날 아이와 통화하며 나도 모르게 "옛이야기에서 영웅들은 꼭 고난을 겪잖아. 큰 사람 될 건가 봐."라고 위로했더라. 내가 뱉은 말에 내가 힘을 주겠다고 다짐한다. 답안을 밀려 써도 인생이 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와 남편의 하루하루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계속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흔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정성을 기울이는 삶의 태도가 공기처럼 분위기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험보다 더 큰 세상에 살아야지. 나의 일상과 정신이 입시에 매몰되지 않도록 더 큰 세상 안의 존재로 나를 이뤄야지. 엄마로서 가지게 되는 조바심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너는 초인이 아니라고, 어딘가에 의지하고 취약성을 드러내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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