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대잔치의 시간

을 저금해 둔다.

by 김가오리

아이들이 힘든 이야기나 고민을 말하면 역설적이게도 마음 한편에 이상한 기쁨이 작게 자리 잡을 때가 있다.


나는 나의 엄마, 아빠에게 그런 부분을 나누지 않았다. 내가 겪은 1,2,3,4,5,6,7,8,9,10 중 1과 6만 부모에게 전달했다. 나의 힘듦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할까 봐 그랬다. 이미 잔뜩 짊어진 짐에 내 짐까지 얹어 그들이 주저앉을까 봐 겁이 났다. 동시에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빠와 싸우고 엄마는 보란 듯이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유일한 가출이었고,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오빠만 데리고 갔던 확실치 않은 기억이 남은 것을 보면 어린 나에게는 충격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알아서 잘 크는 아이로 가정 내 포지션을 잡은 듯하다. 고등학교 때는 어른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소울메이트처럼 붙어 다니며 말을 쉬지 않았으면서. 복도에서 내가 친구와 수다 떨며 지나가는 모습을 본 세계사 선생님은 희귀 영상을 본 듯 말했다. "어머, 00이가 말도 하네~" 내가 해 낸 것에 비해 인정을 덜 받는다고 억울해하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인정도 안 해주고 힘든 고민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어른 따위.


이런 맥락에서, 아이들이 우리와 고민을 나누면 '힘듦을 얹어도 될 만큼 설마 나와 남편이 든든한, 믿을만한 존재인건가...?' 하는 기쁜 의심이 드는 것이다. 나의 부모도 열심히 나를 키워낸 거라서 내가 지금 말하는 부모 자식 간의 한계와 결핍이 우리 관계의 전부는 아니다. 심지어 나는 격동의 시기, 가난한 시기를 지나 온 그들의 최선값이라 엄마 아빠의 애씀과 정성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더더욱 성은이 망극하다.)


다만 이야기의 시간을 누리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 작디작은 일상의 조각들을 서로 내보이며 잠깐 멈추고 듣곤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기 때처럼 살 부비며 밀착되어 있는 시기가 지나고, 각자의 소우주가 형성되는 사춘기와 갱년기 언저리의 시기에 인간 대 인간으로 각자의 삶을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당연한 수순으로 분리되며 점점 벌어지는 틈을 그 작은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이어 줬을 텐데.. 어쩌면 나의 부모가 이야기의 시간을 챙기지 못했던 것은 시대와 경험의 한계였겠다. 엄마 아빠도 그들의 엄마 아빠와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 대신 다른 것을 채워준 덕분에 나의 세대에 와서 비로소 이야기의 시간을 고려하게 되었으니 조금은 앞으로 나아간 것일라나?


유튜브 <최민준의 아들 TV>를 운영하는 아들 전문가 최민준은 평소 아무말대잔치의 시간이 쌓여야 결정적인 순간에 힘들거나 중요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무턱대고 "앉아 봐" 하며 심각한 이야기를 꺼낸다 한들 자녀가 잘 듣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뼛속까지 공감했다. "앉아 봐", "얘기 좀 하자"로 시작하는 대화는 듣기만 해도 긴장된다. 왜냐하면 화자가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마저 심각하거나 훈계의 상황이면 더더욱 일방적이고. 사춘기 자녀들은 부모나 교사의 목소리만 걸러 듣는다는 내용의 실험 결과도 있다는데. 그러니 부모의 진심 어린 조언은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아이 외이도 근처에서 잠시 머물다 튕겨 나가 허공에 흩어져버리기 십상이다. '아무말'은 목적 없는 말이다. 욕심 없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 자식 간의 평소 아무말대잔치의 시간은 아무가아닌말의 시간도 확보해 준다. 그것은 안전함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의 아무말대잔치 시간을 꼭꼭 저금해 둔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나.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독립할 자녀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만 남아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엄마, 아빠인 우리에게 더 해당될지 모를 일이다. 꼭 미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아무가아닌말의 나중 시간을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그냥 그 자체로 아깝다. 저금 자체가 소소한 성취감을 주는 것과 같다. 우울감이 깊어지거나 힘든 일이 잘 극복되지 않을 때 평소 저금해 둔 아이들과의 무용한 대화들이 현재의 나를 살린다는 걸 종종 느낀다. 요즘 AI에게 상담을 많이 한다는데 나한테는 아이들이 AI고, 상담사다. 과장되지 않고 솔직한 상담사들이라 말에 위로도 받고 정신도 차리고. 나만 너희를 키우는 건 아니라는 걸, 너희 덕분에 엄마도 의젓한 사람이 될 기회는 얻는다는 걸 알아차린다.



아무말대잔치 기록 1.

지난 여름 방학, 진격의 거인에 빠진 둘째는 맨날 '심장을 바쳐라(신조오 사사게오)'고 하는 통에 카톡도 이따위로 주고받았었다. 등장인물들의 배신을 지켜보며 티브이 화면을 깨버리고 싶었단다. 이를테면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낀 건데, 어른인 나는 덜 느낄 정서를 온몸으로 느끼는 아이의 감수성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어느 날엔 내 방에서 며칠 하숙한 덕분에 내 수면패턴이 완전히 어그러진 적도 있었다. 밤 11시 30분부터 발라드를 부르기 시작하길래 같이 따라 부르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야 잠이 들기도 했다. 중간중간 '오빠랑 나 중에 어릴 때 누가 더 키우기 힘들었어?' 같은 난이도 최상의 질문을 던지기도..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남배우 이상형 월드컵하다가 브래드피트와 남주혁에서 잠시 안녕, 박정민과 이도현에서 일치, 차은우는 너무 비인간적으로 잘생겨서 아웃. 이러니 졸려도 둘째와의 대화를 멈출 수 없다. 우리 부부에게 묘한 생명력을 전달하는 아이 별명은 비타민이. 바치라고 안 해도 내 심장은 이미 너의 것이지.


아무말대잔치 기록 2.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스킵과 로퍼> 최신판이나 사려고 기웃거렸는데, 설마 <요츠바랑 16권>은 이번에도 안 나왔겠지? 했는데 눈앞에 정말 딱. 놓여 있었다. 너무 놀라 속이 울렁거렸다. 로코물 클리셰 장면처럼, "나중에 만나"하고 웃으며 떠나버린 남주를 매일매일 아침 세수하듯 기다렸는데 아무렇지 않게 퇴근길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느낌. 열여섯 번째 요츠바는 가을에 왔네. 가족단톡방에 기쁜 소식을 알리니 모두 축하해 준다. 내친김에 <아즈망가 대왕>까지 구석에서 꺼내와 읽는 녀석들.


첫째와 서점에 갔는데, 기세 좋게 <기형도 전집>을 고르더라. 국어 시간에 배웠다며. 내가 말했다. "청춘이네-" 첫째가 말했다. "안 읽을 수도 있어." 내가 답했다. "책은 사는 것 자체가 읽은 거야. 내가 뭘 지향하는지 책 제목으로도 확인 가능해." 그러다 서점에 진열된 책 보면서 집에 있는 책, 어릴 때 본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갑자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 재밌냐고 묻네.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이동진 유튜브에서 본다고. 오호.. 취향 겹침.